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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창세기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12:1-5)

by 권또또 2021.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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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이것은 아브라함이 의지하고 기대며 살았던 삶의 환경으로부터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떠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일깨워주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때까지 의지하고 기대며 산 삶의 환경은 어떠했을까요? 어제 읽은 창세기 1131절이 이렇죠.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이 말씀은 셈의 후손인 데라의 족보를 밝혀주는 말씀인데 뭐라고 나와 있었나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 곧 티그리스 유프라테스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했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하란 땅에 도착해서 그곳에 그냥 눌러 앉아버린 것이죠. 그리고는 1132절에서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하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는데 중간에 하란 땅에 눌러 앉아 산 것일까요? 성학자들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비교적 쉬운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960km라고 하니,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500km니까 왕복 거리 정도 되는 셈이죠. 그런데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640km라고 하죠.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보다 하란에서 가나안까지가 훨씬 더 가깝죠. 그런데도 데라가 곧장 가나안 땅으로 가지 못한 것은 광야가 있어서 선뜻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은 데라가 아들 아브라함과 함께 산 기간이 6년은 족히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죠. 그 정도면 비록 아버지 데라는 죽었지만 아브라함이 그 땅에 뭔가 기대고 의지하면서 뿌리내릴만한 것들이 충분하지 않았겠습니까?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찾아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게 있죠?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복을 주어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시겠다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죠. 아버지 데라를 따라 하란 땅에 와서 6년을 살았는데, 여전히 자식 하나 없던 실패작 인생을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약속입니까?

 

이때 아브라함이 보인 반응을 4절에서 보여주죠.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이 부분을 읽으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장 말씀을 따라갔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아브라함이라고 왜 데라와 같은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광야라는 걸 알고 있고, 그 길목에 도적떼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죠.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게 붙잡아 주신 것이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나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강한 심령으로 굳게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여기서 강조하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마침내라는 단어죠. 아브라함이 하란 땅을 떠났는데 곧바로 당도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도적들이 들끓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담대함 속에서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는데, 마침내 가나안 땅에 당도했다는 말씀이죠.

그 길로 나아가는 동안 아브라함이라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였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아내 사라와 조카 롯, 그에게 딸린 종들과 가축 떼도 많았죠. 슈퍼 하나만 운영해도, 사업체 하나만 운영해도 얼마나 벅하고 힘든 일입니까? 지금 아브라함은 그 당시 족장 사회의 리더였습니다. 그만큼 책임질 식솔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하란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길목은 그 누구와의 싸움도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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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인간은 그토록 연약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출중하고 완벽한 사람이라서 어떤 흔들림도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구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죠.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찾아와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도록 했을 때도 그에게 인간적인 연약함이 있었죠.

아브라함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왜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하란 땅에 눌러앉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 길이 도적들이 출몰하는 광야길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었죠.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간다고 해도 중간에 포기하고픈 마음이 왜 들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아브라함을 당신의 손길을 품어주시고 붙잡아주셔서 그 길목을 인도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출발점은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달려 있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갈 때 하나님께서 오늘도 당신의 자녀들을 그렇게 붙잡아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와 같은 은혜로 주님께서 친히 붙잡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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