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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창세기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창8:1-22)

by 권또또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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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안에 놓여 있는 창문

 

본문 4-5절입니다.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을 때 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열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문 지 73일이 지난 101일이 되어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 기간 동안 노아는 무얼 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을까요? 노아와 그 가족은 방주 안에서 동물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들어야 했고, 각종 짐승이 싸는 배설물 냄새를 맡아야 했죠.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말이죠. 그런 뜻에 볼 때 방주 안에서의 삶은 멀쩡한 사람이라도 정신병에 걸리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죠. 그런데도 노아와 그 가족들이 멀쩡한 이유가 뭘까요? 방주 위쪽에 놓여 있는 창문 때문이죠. 그 창문을 통해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나님과 교제한 것이죠. 우리의 심령에 영혼의 창문이 있다면 아무리 칠흙같이 어둡고 답답해도 주님 안에서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죠.

노아가 그렇게 방주안에 머무르며 바다 위를 떠다니다가 그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야, 이제야 밖으로 나갈 때가 됐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고백했겠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아라랏 산에 방주가 머문지 73일이 지나서야 겨우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산봉우리가 보였다고 해서 당장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다시금 인내의 시간이 걸리는 모습이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 이래 40일이 지나서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고서 까마귀를 밖으로 내보내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물이 땅에서 마르지 않아 까마귀는 다시 방주로 돌아오죠. 그 다음 비둘기를 또 내보냅니다. 하지만 물이 마르지 않아 그 비둘기도 돌아옵니다. 노아는 다시금 칠일을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또 내보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그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오죠. 노아는 다시 칠일을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또 내보냈는데, 이번에는 그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죠.

왜 하필 7일 간격으로 내 보냈을까요? 6일 동안 노아는 방주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여전히 짐승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배설물 냄새를 맡고 또 치웠겠죠. 그런데 왜 하필 6일을 기다렸다가 7일째 내 보낸 걸까요? 하나님의 안식, 곧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신앙의 관점이 노아에게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죠.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지쳐도,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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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절입니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드디어 382일 만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땅을 밟는 모습입니다. 이때 방주에 있던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죠. 그것을 20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382일 동안 그 방주 안에서 살아온 노아가 꿈에도 그리던 방주 밖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맨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로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방주 안에서부터 시작돼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하겠죠. 평소 습관을 갖추면 특별한 일이 있어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기 때문이죠. 축구 선수가 프로 경기에서 골을 넣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도 습관이 돼 있을 때 가능하죠.

 

본문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드린 번제를 기뻐 받으셨죠. 그때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죠. 왜 그랬을까요? 인간을 공의의 관점으로만 대하시면 홍수와 같은 심판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자비의 관점, 은혜의 관점으로 세상과 사람을 품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 증거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묵상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도 실은 노아의 방주 안에 살아가는 자들과 같은 것 아닐까요?

이 세상이 온통 탐욕과 욕망으로 물들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거대한 욕망의 물결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죠.

하지만 노아는 그 방주 안에 놓여 있는 창문을 통해 숨을 쉬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았습니다.

더욱이 방주 안에서 나오자마자 맨 먼저 하나님께 번제를 올려드린 노아였죠.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혼탁할지라도 우리의 심령 속에도 영혼의 창문을 두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사에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자의 삶, 기도자의 삶을 사는 자는 그 습관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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