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지성(知性)이자 작가요 기독교변증가가 있다. C.S. 루이스가 그다. 그는 본래 기독교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무신론자가 됐다. 하지만 조지 맥도날드의 〈판타스테스〉라는 동화를 통해 그의 상상력이 회심했고, G. K. 체스스턴의 〈영원한 사람〉을 통해 그의 이성이 회심했고, 톨킨(J.R.R.Tolkien)을 비롯한 몇몇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앙의 회심에 이르렀다.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나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성경의 내용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톨킨은 그 작품을 쓰다가 포기할 뻔했는데 루이스의 격려와 지도를 통해 힘을 얻어 완성했다. 급기야 그 작품은 세 편의 영화로까지 나왔다. 그중 두 번째 작품이 ‘두 개의 탑’인데 인간 세상을 궤멸하려는 어마어마한 악의 세력과 싸우는 장면이 펼쳐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인간 세상을 상징하는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까지 몰린다. 하지만 먼동이 틀 무렵 간달프가 장수와 지원군을 데리고 돌아와 악의 세력을 쓸어버린다.
영화 속 간달프는 우리 주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런데 프로도는 약속보다 너무 늦은 간달프에게 “당신은 너무 늦었어요”하고 말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장 절실하게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 왜 나타나지 않았냐는 뜻이다. 하지만 간달프는 명확하게 답을 한다. “나는 절대 늦지 않는다. 항상 정확한 때에 내가 의미하던 그때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대하26:21)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생명답게 요아스(יוֹאָשׁ, given by the Lord)는 우여곡절 속에 살아남았다. 페니키아 출신 아달랴가 스스로 남왕국 유다의 여왕이 되고자 모든 왕족을 처단할 때였다. 그때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숨겼고 6년간 지성소 방에다 키웠다. 7살 때 무렵에는 그를 왕으로 세우면서 아달랴를 처단했다. 그 후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했고 하나님 중심으로 왕정을 섬겼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그는 하나님께 등을 돌린 채 우상을 숭배했다. 왜였을까? 유대 전승은 그렇게 전한다. 여호야다가 죽자 그전까지 숨죽여 있던 바알 제사장과 교활한 귀족들이 슬그머니 기어 나와 요아스를 흔들어댔다는 것이다. 그들이 왕의 탐욕을 부추겨 그의 상투를 잡고 돌려대자 그들에게 놀아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도 돌이키지 않았고 오히려 성전 뜰에서 그를 처단토록 했던 것이다.1)
그 무렵 아람 왕 하사엘은 유다 백성들이 분열하는 틈을 타서 쳐들어왔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약탈했고 예루살렘 성문까지 무너뜨렸다. 그때 요아스는 아람 군대를 돌려보내고자 성전금고를 훔쳐 온갖 보화를 갖다 바쳤다. 그러자 목숨을 걸고 성전을 지키던 사람들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가 병에 걸렸을 때는 그의 신하들조차 그를 암살하는 데 가담했다.
그 후 ‘여호와는 전능하시다’는 이름의 ‘아마샤’(אֲמַצְיָה, Jehovah is mighty)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요아스의 아들답게 아버지를 암살한 자들을 처단했다. 다만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그 후손들은 살려줬다. 그 뒤 군사를 모집해 자기 나라에 등을 돌린 에돔 족속을 치고자 했다. 그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군대를 고용코자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중단토록 했다. 그때서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담력을 통해 에돔을 정복했다.
그런데 승전보를 날리며 돌아올 때 그는 에돔의 신상을 가져와 예루살렘에 세우고 숭배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전능하신 하나님을 외면하냐며 호되게 책망했다. 유대 전승은 그 선지자가 이사야 선지자의 아버지이자 아마샤 왕의 사촌 아모스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했고 에돔의 승리에 도취된 채 그 여세를 몰아 북왕국 이스라엘까지 치러갔다. 하지만 벧세메스에서 패해 포로로 잡혀갔다가 나중에 풀려났다. 다만 유다 백성들의 원성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라기스에 도피했는데 결국 15년만에 암살당하고 말았다.2)
그 후 ‘나의 힘은 여호와이시다’는 뜻의 웃시야(עֻזִּיָה, my strength is Jehovah)가 남왕국 유다의 10번째 왕이 되었다. 그는 아마샤의 아들답게 라기스에서 살해된 아버지의 시신을 왕실 묘에 안장했다. 자기 기반을 강화하는 뜻이기도 했다. 더욱이 그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다. 그만큼 하나님 중심으로 왕정을 받들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블레셋과 암몬을 정복토록 해 주셨고 애굽 변방까지 영토를 확장케 해 주셨다.
하지만 통치 말년에 그는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왜였을까? 그의 통치력이 극에 달하자 교만에 사로잡힌 채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이 분향하는 향로를 빼앗아 직접 분향코자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문둥병으로 치신 것이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통제하려다 그렇게 심판당한 꼴이었다.
이상이 요즘 새벽에 묵상한 역대하 23-26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 마지막 부분이 웃시야 왕의 모습이다. 그 말씀을 통해 깨닫는 바가 무엇일까? 요아스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답게 끝까지 살아야 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끝까지 좇아야 했다. 웃시야는 자기 힘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끝까지 붙들어야 했다. 하지만 다들 자기 머리가 커가면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잊은 채 무신론자처럼 변질된 것이다.
어렸을 때는 하나님을 믿다가도 머리가 커가면서 신앙 세계를 떠난 이들이 많다. 대학생과 청년기를 거치면서 다들 상상력을 잃고 이성의 세계과 자기 능력만을 전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거나 예배하는 모습도,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듣는 시간조차도 무용지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의식의 세계가 무의식에 비하면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하며 티끌과 같다는 걸 알 때가 있다. 인간의 이성이나 건강조차 한없이 연약하다는 걸 주님께서 찾아와 깨닫게 하실 때가 있다. 그때라도 주님께 돌아오는 게 인생의 복이다. 하지만 머리가 커가고 자기 힘이 있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게 복된 인생이다.
1)https://www.chabad.org/library/article_cdo/aid/112315/jewish/Joash-King-of-Judea.htm
2)https://www.chabad.org/library/article_cdo/aid/464016/jewish/Amaziah.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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