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교인들을 초대하면 아버지는 바깥에서 고기를 구우셨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즐기는 것 같아요.”
〈강주은이 소통하는 법〉에 나오는 이야기다. 홈쇼핑 ‘굿라이프’를 시작하고부터 매해 두 번씩 스태프 모두를 자기 집으로 초청해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런 섬김은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몸소 배우게 됐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섬김의 삶은 ‘굿라이프’를 맡을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울 외국인학교의 대외협력이사와 부총감으로 13년간 근무할 때도 그렇고, 포르셰 클럽을 만들어 기부문화를 주도할 때나 캐나다 상공회의소에서 일할 때도 매번 그랬다고 한다.
한 번은 그녀가 남편 최민수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떤 여성분에게 안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그 여성분의 딸이 취직이 됐는지를 물었단다. 그러자 남편 최민수가 깜짝 놀라면서 누군데 그런 대화를 나누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그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고민까지 인지할 정도라고 한다. 리더로서 지녀야 할 성품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바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여러 더미를 이루었는데 셋째 달에 그 더미들을 쌓기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친지라”(대하31:6-8)
남왕국 유다의 12번째 왕 히스기야와 그 백성들에 관한 내용이다. 25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굳게 닫아버린 성전의 문을 열었고 성전의 제단을 청결케 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속죄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백성들도 번제를 드리도록 했다(대하29장).
곧이어 히스기야는 백성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고자 했다. 다만 히스기야는 남왕국 유다 백성들과 함께 북왕국 이스라엘 땅에 사는 백성들까지 함께 하도록 파발꾼을 보냈다. 그러자 히스기야를 향해 비웃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북쪽에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올라와 유월절을 지킨 이들이 있었다. 물론 남북이 분열된 지 200년이 넘은 상황에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된 상황이라 북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유월절 규례를 잊어버린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때 히스기야는 그들을 꾸짖거나 책망치 않고 오히려 그들을 따뜻하게 품으며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다(대하30장).
마지막으로 히스기야는 아사 왕이나 여호사밧 왕도 행치 못한 ‘산당’들을 제거하며 첫 소산과 십일조 규례를 시행토록 했다. 온 백성들로 하여금 곡물과 짐승의 첫 소산과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도록 한 것이다. 그것으로 레위인들이 제사직무는 물론 찬양과 성전의 문지기와 일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들을 성실히 감당토록 하게 했다(대하31장).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십일조 규례를 지키도록 명령할 때 백성들이 어떻게 그대로 준행했을까? 남북분열 왕국 이후 200년 가까이 흐지부지된 십일조의 규례라면 백성들이 무시할 법도 한데 말이다. 그것은 왕이 솔선수범한 그 본을 보인 데 있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가 본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강주은이 서울 외국인학교에서 대외협력이사로 일할 때도 그랬다.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먹을 때도 부족한 게 있으면 직접 그녀가 서빙을 했다고 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굿라이프’에서도 직접 자신이 제품을 구입해 작가나 PD에게 맛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단다.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선한 그녀에게도 아픔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말이 서투른 첫째 아들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에 들어가서도 공황증세 때문에 입대 후 4일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감출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세상에 오픈한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덕목임을 깨닫게 된다.
히스기야도 마찬가지였다. 앗수르의 산헤립 대왕이 18만 5천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쳐들어올 때 백성들은 벌벌 떨었다. 그때 서기관 셉나처럼 히스기야를 배반한 채 앗수르에 가담한 자들도 있었다.1) 하지만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자기 스스로는 방어할 힘이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백성들 앞에 솔직하게 보여줌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토록 한 것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천군과 천사를 보내 그 군대를 모두 물리치게 해 주셨다(대하32장).
하나님의 자녀인 나는 가정이나 일터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팀장이나 리더의 위치에 있을 때 솔선수범하여 나누고 베푸는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더욱이 자기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든든한 지지를 받고 있는지 말이다. 리더로서 지녀야 할 덕목 중에 섬김과 솔직함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에 있을까 싶기도 하다.
1)https://www.chabad.org/library/article_cdo/aid/112337/jewish/The-End-of-Sennacherib.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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