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휴먼스(Humans)에는 ‘아니타’라는 로봇 가사 도우미가 등장한다. 인간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지식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강화학습 기반의 인공지능이다. 아니타는 가사도, 아이들의 학교 숙제도 척척 해내며 가족들의 사랑과 신뢰를 독차지한다. 이런 아니타를 보며 엄마 로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뿐이랴. 큰 딸은 아니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아들은 인공지능 아티나를 이성으로 착각한다.”
이주희의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만큼 인공지능이 우리들의 삶에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속도라면 머잖아 병도 노화도 없는 시대, 어쩌면 지금보다 더 끔찍한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사람과 정을 나누고 경쟁하던 지금 이 시대를 더욱 그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노인이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았는데 개구리가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키스를 해 주시면 저는 예쁜 공주로 변할 거예요.” 그런데 노인은 키스는커녕 개구리를 재빨리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놀란 개구리는 “키스를 하면 예쁜 공주와 살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죠?”하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자네도 내 나이가 되어 보게. 공주보다 재잘대는 개구리가 더 좋다는 걸 알게 될 거야.”하고 대답했다.
노인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오십이 넘어서면서부터 인생의 깊은 묘미를 알게 된 것이다. 아무리 멋진 여성이 유혹해 올지라도 여태껏 자신을 잘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친구와 수다를 떨며 남은 인생을 사는 게 낫다는 것 말이다. 그런 친구는 서로 의견이 갈릴 때 어디쯤 멈춰서야 하는지도 알고, 대충 옷을 입고 나서도 부끄럽지 않고, 형편없는 음식점에서도 음식 탓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이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하9:31)
솔로몬은 다윗의 공식적인 19명의 아들 중에 배다른 10번째 아들이다. 더욱이 그는 다윗이 50대에 저지른 불륜 이후에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다. 자랑스런 인생 출발이 아니었으니 왕궁 안팎의 눈총이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다윗도 배다른 8번째 아들로 태어나 홀로 목동의 삶을 산 것처럼 그도 힘든 처지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여디다아’ 곧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 품어주셨다. 그의 나이 20대 초반에1)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삼으셨다. 솔로몬은 문무백관을 데리고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일천 마리 번제물을 잡아 드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당신의 율례와 법도를 떠나지 말도록 말씀하셨다. 왕권보다 크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후 솔로몬은 요압과 아비아달과 시므이는 처단하고, 브나야와 사독에게는 상급을 내렸다. 군사령관과 행정관과 제사장과 서기관들까지 새로 임명했다.
솔로몬은 통치 4년에 성전건축을 시작했다. 길이30m 너비10m 높이15m 건물에다 맨 앞에 19m의 놋기둥 두 개 곧 '야긴'과 '보아스'를 세웠다. 그 기둥 앞에 번제단을 설치했고, 제사장들이 씻는 놋바다 곧 물통을 두었다. 낭설 곧 현관으로 들어가면 성소의 정중앙 앞에 분향단을 세웠고, 성소의 좌우 벽에 금촛대와 진설병을 세웠다. 그 분향단 앞의 휘장문을 지나면 지성소가 나오는데 맨 앞에 법궤를 모셨다. 그 성전과 기물을 짓는데 역군 3만명 짐꾼 7만명 석공 8만명 감독관 3천3백명, 연인원 18만3천300명을 동원한 7년 6개월의 대형국책공사였다.
그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480년이 지난 시점에 완공됐다. B.C.966년 2월에 기공해 B.C.959년 8월에 끝마친 셈이다. 그때 솔로몬은 번제단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펴서 하나님께 봉헌식 기도를 올렸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 말씀해 주셨다. 성전보다 크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떠나지 말도록, 건물로서의 성전뿐만 아니라 솔로몬 자신을 성전으로 가꾸도록 말이다. 그와 같은 성전봉헌식 이후 솔로몬은 13년에 걸쳐 자기 궁궐을 짓기 시작했다. 그 궁궐은 B.C.959년에 기공해 B.C.946년에 마쳤다. 궁궐을 짓는 기록은 열왕기서나 역대기서 단 한 줄로 끝맺고 있다.
그처럼 솔로몬은 40년 통치 기간에 성전과 궁궐을 짓는데 20년을 쏟아부었다. 그렇다면 남은 20년은 무엇을 했을까? 그는 애굽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왕비와 후궁을 들였다.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 이스라엘의 안정을 꾀하려는 속셈도 있었고, 여인의 치마폭에 빠져든 탐욕도 있었다. 그런 왕비들을 위해 후궁도 지었고, 밀로성과 하솔성과 므깃도성과 게셀성 등 여러 국고성을 세웠다. 심지어 홍해 앞 에시온게벨에서 선박도 축조했다(대하8장, 왕상9장).
역대하 9장은 지금의 남예멘 지역인 스바(Sheba)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한 모습과 솔로몬의 최후 기록이 담겨 있다. 역대기만 읽으면 솔로몬은 60세에 죽기까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열왕기서는 그의 중년에 천명이나 되는 이방 여인을 처첩으로 삼는 모습을 보여준다(왕상11장).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서 떠난 죄의 원흉(신17:16-17)이다. 그가 장수하지 못한 원인이요 그의 사후(死後)에 이스라엘이 분열된 이유다. 물론 그가 죽기 직전에, 모든 게 헛되다고 탄식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이라고(전12:13), 회개하며 하나님 품에 안겼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타락의 길을 걸어갈 때 침묵만 하셨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마리 번제물을 잡아 드릴 때도, 성전건축을 끝마치고 봉헌기도를 드릴 때도 직접 나타나 말씀해주셨다. 어디 그뿐이랴? 그의 인생 절정기에 달한 40대 초반에 이방 여인을 처첩으로 삼고 그녀들이 섬기는 이방 신상을 예루살렘에 세우고자 할 때도 두 번씩이나 나타나(왕상11:9-10) 돌이키게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당신의 말씀으로 가까이서 지도해주고자 하신 것이었다.
인공지능 로봇이 집과 사무실과 차 안에까지 밀려들고 있다. 그만큼 우리 곁에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모든 것을 좌우할 시대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미모의 여인이나 근육남으로 우리 곁에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50대를 지난 그 노인이 예쁜 공주보다도 자기 곁에 있는 개구리를 더 좋아한 것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가까이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다.
솔로몬이 자기 곁에 ‘가까이에 있는 말씀’(신30:14)을 따랐다면 그 인생은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등불과도 같은 말씀’(시119:105)에 순종했다면 그 인생을 성전으로 가꿨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지식도 좋지만 우리의 심령을 일깨우시는 ‘영생의 말씀’(요6:68)을 새겨야 한다. 온갖 유혹의 모습으로 다가올 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시는 말씀’(딤후3:16)을 따라야 한다. 오래된 친구처럼, 오래 산 부부처럼, 그 말씀을 가까이하는 게 진정한 복이다.
1)https://hermeneutics.stackexchange.com/questions/51218/how-old-was-solomon-when-he-became-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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