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7장에 처음 등장한 유다 왕 여호사밧에 대해 성경은 그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였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셨다.”(17:3-5절)하고 말이죠. 그만큼 왕정 초창기의 여호사밧은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왕이었죠.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부귀와 영광을 허락하셨고, 나라를 굳건하게 세워주셨죠. 하지만 18장에서 보여준 여호사밧의 모습은 변했죠. 북왕국 이스라엘의 7번째 왕인 아합 가문과 정략적 결혼을 맺었고, 더 나아가 아람 나라를 치는데 군사적인 동맹관계까지 맺은 여호사밧이었죠. 그러니 그가 하나님의 진실된 선지자 미가야와 400명의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상실했고, 그로 인해 아람 왕과 전투를 벌였지만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패할 수밖에 없었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은 죽게 되었지만 남왕국 유다의 여호사밧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죠. 그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된 여호바삿은 그래서 19장에서 자기 정체성을 다시금 새롭게 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여호사밧의 모습이 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지 않습니까? 1960-70년대에 가난하고 의지할 것 없던 시절에 하나님을 찾고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도우심을 맛보았죠.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갔는데, 뭔가 나라가 회복이 되고 가정이 안정되는 1900년대 이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합니까? 예전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간구하지만 그만큼 절실하거나 간절하지가 않죠.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 더 중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때서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길에서 돌아서게 되죠. 그렇게 회복의 길을 걸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은총을 부어주시죠. 이것이 비단 여호사밧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점이죠.
그렇듯 하나님 앞에서 회복의 길을 걷고자 애쓰는 여호사밧의 모습을 19장에서 살펴봤다면, 오늘 읽은 역대하 20장에서는 그에게 또 다른 위기 상황이 닥쳐옵니다.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마온 사람들이 연합하여 여호사밧의 유다 땅을 치러 오는 상황이 그것입니다. 2절에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이른바 전령이 보고한 모압과 암몬 자손의 연합군대가 진을 친 곳은 유대 왕국의 바깥 쪽이 아니라 유대 땅 안 마당까지 쳐들온 상황입니다. 사해 바다를 건넌 모압과 암몬 사람의 연합군이 이미 유대 땅 안으로 진격해 엔게디 지역에 진을 친 것이죠.
이런 위기 가운데 여호사밧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임을 직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본문 3-4절에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여호사밧이 온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왕이 공식적으로 공포한 최초의 금식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급박한 재난이 있을 때나 특별한 회개가 요청될 때 백성들을 모아 금식을 선포한 적이 있었죠. 그때는 왕정시대 이전의 사사들이 행했거나 왕정 시대 다윗이 개인적으로 금식한 경우였죠. 여호사밧이 온 백성들, 남녀노소를 불러 모아 함께 금식하도록 선포한 경우는 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니 더 아름답고 선한 모습이 아닐 수 없죠.
오늘 우리도 뭔가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 신속한 응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한나도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닫았을 때 그녀가 금식하며 서원기도를 올렸고, 또 서원예물을 들렸을 때 신속히 응답해 주신 적이 있었죠. 한 개인의 금식과 서원기도에 그렇게 신속하게 응답해 주신다면 어찌 온 백성들이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데, 그 은총을 베풀어주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백성들과 함께 금식을 선포한 여호사밧이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그 기도 내용이 6-12절로 이어지죠. 특별히 12절에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절박한 기도를 드린 것이죠. 그만큼 여호사밧은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아버지 아사가 초창기 선한 길을 좇을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와 흡사하죠. 구스 왕 세라가 군사 100만 명과 병거 300대를 동원해 아사 왕을 치려고 공격해 들어올 때 아사 왕은 58만의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우면서, 하나님께 그런 신앙고백의 기도를 드렸죠.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이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대하14:11)하고 말이죠. 여호사밧도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모습이죠.
여호사밧이 하나님께서 온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며 매달릴 때 어떻게 하십니까? 결코 외면치 않으시죠.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하셔서 말씀하시죠. 15-17절에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과 유대 백성들이 치러야 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시켜 주시죠. 이 전쟁은 ‘너희들이 싸워서 취할 전쟁이 아니라 내가 승리를 가져다 줄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맞서 나가되, 내가 하는 일을 보라는 것이죠.
그때 여호사밧이 어떻게 전투를 치릅니까? 18-21절을 보면 그 전투에 참전한 군병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명령하고, 찬양대원을 꾸려 찬양을 울러 퍼지게 하죠. 그리고 복병을 통해 그 모든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까지 완전 도륙내죠. 그로 인해 25절에서는 그 전쟁의 전리품들을 사흘 동안 거둬들였고, 27절에서는 전쟁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그들이 맨 먼저 향하는 곳은 여호와의 전 곧 성전이었죠. 그만큼 하나님께 먼저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죠. 그로 인해 30절에서는 그 나라가 태평했고, 사방 대적으로부터 평강을 주셨다고 기록하죠.
그런데 그렇게 끝날 것 같은 그의 임기 말년은 엉뚱한 모습으로 흘러가죠. 본문 35절에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와 교제했다고 밝혀줍니다. 그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라고 증언하죠. 아하시야가 누굽니까? 아합 왕의 아들로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8번째 왕입니다. 그가 심히 악을 행했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그의 아버지 아합의 길을 좇아 바알과 아세라를 온 백성들이 숭배케 했는데, 열왕기하 1장에 보면 그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심한 병을 앓다가 죽을 지경이 되죠. 그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기보다 블레셋의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의지하려고 하죠. 그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네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하고 경고하게 하죠. 그래도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죠. 그것은 이른바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는 모습인데, 결국 그런 악행을 좇다가 그는 2년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죽죠. 바로 그런 아하시야와 교제했다는 뜻인데, 그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모습입니까?
과연 성령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일깨우고자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뭔가 어려움에 빠지면 기도하고, 더 중대한 문제 앞에선 금식기도하며 매달리는데, 그러다가 일이 풀리면 또다시 나태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 우리들은 그런 여호사밧과는 달리, 어려울 때나 잘 될 때나, 힘들 때나 승승장구할때나, 한결같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 주님을 높이고 의지하는 그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문제 중대한 문제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 신속히 그 문제를 풀어주신다는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우리가 여호사밧과 유대 백성들처럼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
내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할 때,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찬양하며 금식할 때 신속히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길 원합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뿐만 아니라 중한 문제 앞에서뿐만 아니라,
일이 잘 풀리고 형통한 날에도 더욱더 기도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저희들이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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