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이 남유다 왕국의 네 번째 왕이 되었죠. 그는 왕이 되자 아버지 아사가 말년에 걸어갔던 길, 다시 말해 마침표를 잘못 찍었던 그 인생의 길과는 달리 다윗 왕이 걸어갔던 처음 길을 잘 좇아갔죠. 그래서 유다와 베냐민 땅은 물론 에브라임 산지에 널브러져 있던 온갖 우상들을 다 무너뜨리게 했죠. 그리고 더욱 위대한 일을 행한 것은 그렇게 우상들을 몰아내고, 백성들의 심령을 옥토로 바꾼 후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서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고 심어준 것이었죠. 그것은 이전의 어떤 왕도, 이후에 어떤 왕도 행하지 않는 모습으로 정말로 위대한 일을 행한 것이었죠. 그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바르고 선한 길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의 시대의 평안함은 물론이요 이방 나라들이 조공을 바치게 했고, 엄청난 장수들과 군사력을 보유하게 해 주셨죠.
문제는 그의 통치 5년에 접어드는 시점이었죠. 그는 북이스라엘의 7번째 왕이자, 시돈의 엣 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은 아합 왕, 바로 그 아합 가문과 정략적인 결혼을 맺었죠.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격노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시돈의 신 바알을 북이스라엘 땅에 끌여 들었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읍에 바알 신전을 세워 온 백성들로 하여금 그 바알을 숭배하게 했기 때문이죠. 더욱이 그 이세벨이 키운 바알 선지자들이 450명이요, 아세라 선지자가 400명이 될 정도였기에 북이스라엘은 그야말로 바알과 아세라 신이 주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런 그 땅의 지도자 아합과 정략적인 결혼을 맺었으니, 어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었겠습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아합이 북이스라엘의 북쪽 아람 나라와 전쟁을 치르는데 당신 여호사밧 왕도 군대를 동원해 함께 치러 가자고 이야기할 때에도 하나님께 묻거나 기도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함께 전투에 참전하겠다고 약속해 버렸죠.
물론 그 전투에서 승리할 것인지, 패할 것인지, 선지자에게 물어보자고 여호사밧 왕이 아합 왕에게 의견을 내죠. 하지만 궁중의 지원을 받고 있던 400명의 선지자, 곧 바알 신을 지지하는 어용 선지자들은 그 전투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는 신실한 선지자 미가야는 그 400명의 선지자들이 다 거짓 영에 꾀임을 받아 예언한 것이요, 이 전투에서 당신들은 분명코 패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죠. 그러나 아합의 마음은 물론이요 여호사밧의 마음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데, 제 아무리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을 선포해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그렇듯 최초 다윗의 길을 좇아 ‘처음 길’ 곧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길을 좇아 온갖 우상과 이방 신상들을 깨부수록 했고 그들의 심령을 옥토로 만든 뒤에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고 심도록 했던 그 여호사밧이 5년이 지날 무렵 태평성대의 복, 이방 나라들이 조공을 바치는 그 복, 그의 군사력과 무기력이 월등히 많아질 바로 그 무렵에 그는 기고만장한 자기 과시와 허세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버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합과 정략적인 결혼을 행하고, 아합의 군대와 함께 전투에 참전하겠다고 했고, 하나님의 선한 선지자 미가야가 그 전투에 가면 패한다고 말해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참전한 그 전투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합은 그 전투에서 죽었죠. 처음에 여호사밧이 아합의 갑옷을 입고 출전했지만 적들이 아합이 아닌 다른 사람임을 알아보고 그를 추격하지 않았죠. 대신에 ‘우연히’ 적의 병사가 쏜 화살에 아합이 맞아, 결국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게 되었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렇게 ‘우연히’ 되는 것 같지만 그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아합이 죽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합이 통치할 때 북이스라엘의 온 땅에 바알 우상을 퍼트린 장본이었고, 그 아합과 아내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키운 꼴이었고, 그 아합이 선한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고 싶었는데, 그걸 못하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 성읍의 난봉꾼 곧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나봇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왕을 모독했는 죄목을 들먹여 성밖에서 그 나봇을 돌로 쳐죽이고 곧바로 이세벨이 자기 남편 아합에게 그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게 한 그 모든 죄악을 행한 장본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열왕기상 21장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나봇의 포도원에 가서 아합 왕에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죠.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그래서 그가 아람 나라와 전쟁을 치르다 죽은 아합의 시체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는데, 그 나봇의 피를 핥은 개들이 아합 와의 시신의 피를 핥았다고 열왕기상 22장 38절에서 전해주고 있죠.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데, 그 전투에 함께 참전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죽고, 대신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본문 1절에서 이렇게 전해주죠.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그야말로 그 죽음의 사지에서 여호사밧은 평안히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온 격이죠. 과연 그때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내가 분명히 죽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신 것 아닌가? 바로 그런 생각이 들어겠죠.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와 같은 말씀을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후에게 가서 말하도록 하죠. 그것이 본문 2-3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여호사밧아,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내가 미워하는 일들을 마치 사랑하듯이 했다, 그래서 내가 진노를 일으켜 아람 나라와 연합전쟁을 펼칠 때 패하게 한 것이고, 아합 왕의 목숨을 데려간 것이다, 분명코 너도 그런 위치에 있었다는 걸 네가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너를 살려 둔 것은 그나마 네가 나 보기에 아름답고 선한 일들을 행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네 생명을 보류하고 기회를 준 것이다.’ 하는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회를 주시자, 여호사밧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본문 4-11절의 말씀은 여호사밧이 다시금 하나님 앞에 겸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4-6절이 이렇습니다.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또 유다 온 나라의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읍마다 있게 하고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그만큼 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또 백성들이 바르고 공의롭게 살도록 재판관들을 두어서 거짓됨 없이 살아가게 하는 모습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게 있죠.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다스리고 레위 사람들은 너희 앞에 관리가 되리라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 ‘여호와께 속한 일’과 ‘왕에게 속한 일’을 구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 즉 영적인 일은 대제사장의 치리에 맡기게 했고, ‘왕에게 속한 일’, 즉 행정적인 일은 유다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의 치리에 맡기게 한 것입니다.
무엇을 일깨워주는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교만한 자리를 스스로 차단한 채 신앙의 순수함을 유지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곧 왕으로서의 마침표 인생을 잘 찍고자 하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첫 사랑, 그 사랑의 길에 아름답게 반응하는 저희들이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여호사밧이 중간에 웅뚱한 욕망에 미혹당한 모습을 봅니다.
저희들은 항상 말씀과 기도로 저희의 심령을 경계하게 하시옵소서.
그럴지라도 선한 옛 추억을 아름답게 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회를 주셨고,
아름답게 마침표 인생을 찍으려고 합니다.
저희들도 언제 어떤 모습 속에 살아가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고 선한 마침표 인생을 잘 찍어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골고다 언덕길에서 십자가에 위에 당신의 몸을 찢고 살을 내 주고 피를 쏟으신
그 마침표 인생을 저희들도 올곧게 좇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새벽묵상DewSermon > 역대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대하21:1-20) (0) | 2021.10.30 |
---|---|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대하20:1-37) (0) | 2021.10.30 |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대하18:1-34) (0) | 2021.10.27 |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더라(대하17:1-19) (0) | 2021.10.26 |
병이 있을 때 그가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16:1-14) (0) | 2021.10.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