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 유다의 3번째 왕 아사는 왕이 되자 종교개혁을 단행했죠. 그의 아버지 아비야의 3년 치세, 그의 할아버지 17년 치세, 그리고 그의 증조할아버지 솔로몬의 40년 치세 가운데 20년, 그렇게 근 40년 동안 이방 신상들과 아세라 목상들을 섬겨온 것들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준행하게 했죠. 그것이 그의 왕위 40년 가운데 10년 동안에 행한 일이었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의 시대에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스 왕 세라가 100만명의 군사와 300대의 병거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 때 아사는 58만의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웠는데, 그때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죠.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군과 천사를 통해 이방 세력들을 다 궤멸시켜주셨죠.
그런데 그렇게 승승장구할 무렵,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오뎃의 아들 아사랴를 하나님을 찾으라고 다그쳤죠. 그러자 아사는 자기 과시나 자기허세에 빠지지 않고 유다 땅과 베냐민 땅은 물론이요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가증한 것들, 곧 우상과 이방 신상들을 다 제거하면서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무릎을 꿇고 번제를 드리며 겸비했죠.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듯이 온 백성들이 그렇게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아사의 어머니는 아세라 목상을 세우며 우상숭배에 빠져들었죠. 그때 아사는 자기 어머니의 태후 자리까지 폐위시키며 더욱더 온전한 모습을 보였고, 자신이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들을 하나님께 바칠 정도로 헌신했죠. 그런 아사의 마음과 자세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통치 25년을 태평성대로 이끌어 주셨죠.
그런데 그의 인생 말년이 어떻게 되었는가? 아사의 왕정 40년 가운데 최초 10년도 그렇고, 나머지 25년도 종교개혁을 단행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 중심으로 철저히 ‘구별된 삶’을 살았고, 자신의 은금보석들까지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헌신된 삶을 살았는데, 그의 마지막 임기 5년 동안은 씁쓸한 길을 걷고 말았죠. 그의 통치 36년에 접어들었을 때 북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 그러니까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에 이어 바아사가 왕이 되자, 남왕국 유다를 치려고 그가 성읍을 건축했는데, 그때 아사는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이는 하나님밖에 없다며 하나님을 의지하던 그 신앙을 버리고 아람 왕에게 원조를 청하죠. 그래서 성전 곳간과 왕궁의 곳간에 있는 온갖 금은보석들을 다 갖다 주고 말죠. 어디 그 뿐입니까? 그의 통치 39년에 접어들어 그의 발바닥에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거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오직 의원만을 찾는 모습이었죠. 이른바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버린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던 그런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인의 모습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할 때가 언제인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 귀한 것들을 심고 드릴 때 하나님께 마음 껏 복을 주시는데, 그런 창대와 번영 속에서도 자기 과시나 자기 허세에 빠져들지 않고 그 모든 것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며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 신앙인의 모습,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선한 신앙인의 모습이죠. 초지일관하는 그 순전한 자세를 갖추는 신앙인들이 되도록 아사의 모습을 오늘 우리들에게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오늘은 그 아사의 다음 왕 곧 남왕국 유다의 네 번째 여호사밧 왕에 관한 모습입니다. 아사 왕에 관한 기록이 열왕기 15장 한 장으로 짧게 통으로 기록돼 있는데 반해 역대하에서는 14-16장까지 곧 3장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네 번째 왕인 여호사밧에 관한 모습도 열왕기상 22장 한 장으로 짧게 언급하고 있는데 반해 역대하에서는 17-20장까지 즉 4장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호사밧이 35세에 왕이 되어 25년간 다스린 기간은 열왕기나 역대기가 똑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은 여호사밧이 왕위에 올랐을 때 행한 처음 모습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사밧은 왕이 되자마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여,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의 ‘처음 길’은 그의 아버지 아사가 마지막 인생 길에 보인 모습과는 대조되는 ‘처음 길’이죠. 더욱이 그의 ‘처음 길’은 그의 할아버지 아비야나 그의 증조 할아버지 르호보암이 걸어갔던 자기 욕망의 길과는 완연히 다른 ‘처음 길’입니다. 그야말로 이새의 아들 다윗으로부터 뿌리를 내린 ‘처음 길’, 곧 하나님을 향한 중심어린 길을 걷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풍요와 번영의 신 바알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지켜나갔던 것이죠. 여호사밧은 그만큼 역사적인 안목을 갖고 있던 왕이었습니다. 이전의 선왕들이 어떤 길을 걸었을 때 나라가 평안하고 안전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꿰뚫어 봤던 것이고, 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이 곧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길이었죠.
그런데 2절에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라고 밝혀주는, 이 말씀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영문’이 뭔가 봤더니 영어로는 ‘게리슨’(garrison) 곧 수비대나 주둔군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의로운 길을 택한다 해도, 내가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일들을 완전히 놔둬 버린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아사도 마찬가지였죠. 아사가 40년 통치 가운데 35년간은 선하고 의로운 종교개혁들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때 구스 왕 세라가 군사 100만 명과 병거 300대를 동원해 아사 왕을 치려고 달려들었을 때 아사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다고 했습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신앙고백과 더불어 그도 군사 58만을 준비하고 전투에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 내 팽개친 채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사밧이 바로 그런 책임과 의무를 감당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여호사밧이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길을 걸었는가? 그것이 6-9절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우선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했는데 그 산당들을 제거하도록 했고, 가나안 땅의 풍요의 신 곧 백성들의 민간 신인 아세라 목상들까지도 다 제거하도록 했던 것이죠.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일이 있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유다 왕국의 각 성읍에 보내 일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가서 가르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다가 놀란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무엘서나 열왕기서를 읽을 때 어떤 왕도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데, 느헤미야나 에스라 시대에 가서야 여호와의 율법책을 강독하고 가르쳤을 뿐인데, 오늘 본문의 여호사밧 왕이 백성들에게 그걸 가르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열왕기서에 나오는 여호사밧의 모습에는 이게 없습니다.
여호사밧이 이토록 선한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책임져 주시는가? 본문 10-19절 말씀을 통해 그의 시대의 평안함은 물론이요 이방 나라들까지 조공을 바치게 하고, 엄청난 군사력까지 보유한 모습을 보여주죠.
그렇기에 오늘 역대기 기자가 강조하고자 한 것, 그 역대기 기자를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2-13)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은 종이 문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저희들에게는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후대가 창대하길 원한다면,
진정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종교개혁보다도 더 아름다운 종교개혁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종교개혁의 삶은 종교개혁주일에만 해야 할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돼야 할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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