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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대하18:1-34)

by 똑똑이채널 202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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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양을 잡아 그 피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죠. 그 피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재앙 곧 사망의 심판을 넘어가게 해 주셨고, 그 피가 없는 애굽 전역에는 죽음의 재앙 곧 사망의 심판이 임해 온갖 통곡이 들끓었죠. 그것은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곧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죠.

그런데 그렇게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출애굽을 해야 했죠. 애굽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약속의 땅, 곧 가나안 땅으로 가야 했죠. 그 과정 속에서 맨 처음 겪은 일이 홍해였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으로 홍해를 마른 땅처럼 통과하게 해 주셨죠. 그리고 그들이 홍해를 다 통과했을 때 갈라졌던 물은 다시금 합쳐져 애굽 군대가 몰살당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그 홍해를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죠.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그 모습을 일컬어 세례의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 그 물 속에서 너희들도 함께 이전의 애굽의 습성들, 애굽의 본성들도 다 죽었으니, 너희들도 그 물속에서 실은 죽은 자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죠.

물론 그들이 홍해를 통과해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곧장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건 아니죠. 그들이 홍해에서 옛 습성과 옛 욕망들을 다 죽였다 해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거듭난 생명,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잇는 길을 제시한 게 있죠. 그게 바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주신 게 바로 그것이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는 그 언약백성의 의식을 맺고서, 율례와 법도를 주셨는데 그걸 압축한 게 십계명이고, 그것을 풀어놓은 게 레위기의 말씀이고, 그것을 모세가 광야 40년을 회고하면서 설교한 게 바로 신명기 말씀이죠.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일까요? 어제 살펴 본 말씀 때문이죠. 남왕국 유다의 네 번째 왕, 다시 말해 르호보암에 이어 아들 아비야, 그 아들 아사, 그리고 여호사밧이 35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아버지 아사의 선한 모습을 보였던 그 시절처럼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 왕조의 뿌리와도 같은 다윗이 행한 길, 곧 하나님 신앙을 추구해 나갔죠.

그것이 어떤 길이었나요? 우선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하던 그 산당들을 제거했고, 가나안의 민간 신앙인 아세라 목상도 다 제거했죠. 그러나 그것만으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게 아님을 여호사밧은 알고 있었죠. 그래서 시행한 게 바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동원해 각 성읍에 가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강론하고 가르치게 한 것이었죠. 그 일은 이전의 어떤 왕도 행하지 않았던 일이요, 아버지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아버지도 그 일만은 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서두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는 세례의식을 거쳤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심령 속에 심고 살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시절에는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면서 그들의 지침이 되셨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한 뒤부터는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로 삶의 지침을 삼으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여호사밧 왕이 3년에 걸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각 성읍에 보내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가르치게 한 것은 너무나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죠. 이전의 이방 신상들과 풍요와 번영의 신 곧 아세라와 바알 신상들을 각 성읍에서 완전히 제거하게 했다면, 그래서 그들의 심령을 옥토로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들의 옥토같은 심령에 생명과 진리의 씨앗인 말씀을 심도록 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 일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호사밧이 그처럼 아름답고 선한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해 주셨는가? 그의 시대의 평안함은 물론이요, 이방 나라들까지 조공을 바치게 했고, 엄청난 군사력까지 보유한 왕국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거기까지가 어제 살펴본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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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모습을 보여주죠. 본문 1-2절입니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

‘2년 후에다시 말해 그가 왕이 된지 5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 시절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온갖 부귀영화를 크게 떨친 왕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시점, 5년이 지나던 그 해, 부귀영화의 최정점에 섰을 때, 그는 아합 가문 곧 북왕국 이스라엘의 7번째 왕인 아합 왕과 정략결혼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합이 아람 나라와 맞서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는데, 당신도 함께 나와 함께 전투에 참전하자고 요청하죠. 그때 여호사밧은 본문 3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하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하고 대답하죠. 그야말로 아합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여호사밧은 과연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4절에서 밝혀주죠. 그러자 5절에서 아합 왕이 선지자 400명을 모아 묻는데, 다들 올라가 싸우라고 말하죠. 그때 여호사밧이 다른 선지자가 없는지 묻자, 아합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가 있다 7절에서 말하죠. 다만 그는 좋은 예언이 아닌 나쁜 예언만 한다고 강조하죠. 그래도 미가야를 초청했고, 이제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 미가야는 20절을 통해 확고하게 말하죠. 지금 400명의 선지자들은 모두 거짓 영에 꾀여서 두 왕을 전쟁에 참전케 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러자 그 400명 중의 한 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너야 말로 거짓말쟁이다하고 다그치죠. 아합은 화가 나서 미가야를 골방에 가둬버리게 하죠.

그런데 이 결론이 어떻게 납니까? 본문 28-34절을 보면, 그렇게 400명의 선지자들이 말한 예언을 믿고 참전한 아합의 군대, 그 아합과 긴밀히 협력하기 위해 참전한 여호사밧의 군대는 모두 아람 군대에 대패하고 말죠. 그때 여호사밧이 아합 왕으로 변장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목숨은 건져주셨고, 대신에 일반 병사로 변장한 아합은 그 전투에서 적이 무심코쏜 화살에 맞아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왜 여호사밧 왕이 이런 화를 당하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아합 왕과 정략적인 결혼을 행한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죠. 아합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죠. 그녀는 바로 바알 신앙을 북이스라엘에 퍼트렸던 장본인이기도 하죠. 최초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황금송아지 신전을 남쪽 벧엘과 북쪽 단에 세워 백성들로 하여금 숭배케 했고, 그런 우상숭배는 아들 나답도, 또 바아사와 엘라와 시므리도 마찬가지였고, 오므리가 왕권을 잡고 그 아들 아합이 왕권을 물려받을 때 바로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 전역에 퍼트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을 아합이 벌였던 것이죠. 그런 아합과 손을 맞잡았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여호사밧을 가만히 놔두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가 죽지 않고 화를 당한 것만 생각해도 감사할 일이죠.

여호사밧이 그 전투에서 화를 당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죠.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보다 400명의 거짓 선지자의 꾀임에 넘어간 것이죠. 왜 그가 거짓 선지자의 말을 분별치 못했을까요? 근묵자흑이라고 했듯이, 바알신앙에 물든 아합과 관계를 맺고 교류한 까닭이죠.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종교개혁을 하며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가르치게 했던 그 영적인 초심을 늘 간직하는 것이죠. 부귀영화의 최정점에 달할 때도 흐트러지지 않는 초심 말입니다. 더 나아가 우상숭배자와 교제하면 나도 그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그렇기에 진정한 신앙인들과 교제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온갖 신상들과 우상을 척결하여 그 심령을 옥토로 만들게 했고,

옥토의 심령에 말씀의 씨앗을 심게 한 여호사밧처럼,

그의 영적 초심을 늘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가 우상숭배에 빠져든 아합과 교제할 때 그의 영적분별력을 상실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희들은 세상에 우상숭배에 물든 이들과 교제하기보다

영적으로 깊은 신앙인들과 참된 교제를 펼쳐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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