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15장까지 보면 남왕국 유다의 왕 르호보암과 그 아들 아비야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기록에서는 르호보암도 그렇고 아비야도 그렇지만 둘 다 하나님 앞에 옳게 행한 게 하나도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죠. 오히려 아세라 신과 같은 풍요와 번영을 신, 곧 우상을 좇거나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우상을 좇을 때 다 허용하는 왕들이었죠. 그만큼 다윗이 걸어갔던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서 먼 왕들이었죠.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그들 두 왕에 대해 좀 더 아름답고 선하게 그려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르호보암도 초기에는 세상 중심으로 나갔다가 다시금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중심의 삶을 살았고, 그런 모습이 그의 통치 17년 가운데 계속 되풀이 된 것으로 그려주고 있죠. 더욱이 ‘항상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그려줌으로써 영적인 긴장상태를 끝가지 놓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죠.
그런가 하면 그 아들 아비야는 어떻습니까? 비록 3년밖에 통치하지 못했지만 열왕기서에서는 하나님 앞에 잘 한 게 하나도 없고 오직 다윗과의 언약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복된 길로 인도해 주셨다고 평가하지만, 역대기에서는 그가 4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여로보암 왕이 이끄는 북이스라엘의 군사 80만명과 맞설 때, 오직 다윗과 언약을 베푸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며,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그 전투에서 승리하고, 더 나아가 벧엘 곧 황금송아지 신전이 놓여 있는 그곳의 여러 동네들까지도 정복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죠. 끝내 여로보암 왕은 그 전투에서 패하여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 채 병에 걸려 죽게 되었고, 대신에 아비야는 3년간 강성대국을 이뤘다고 역대기 기자가 증언하고 있죠.
그렇다면 왜 그렇게 르호보암과 아비야의 통치모습을 아름답고 선하게 써 내려가고 있는 걸까요? 실제 역사 속에서는 오히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왕들인데 말이죠. 실제로 북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이야 모두 악한 왕들이었고, 남왕국 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8명만 선한 왕이었음을 우리가 배운 바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그 8명의 왕들에 끼지 못한 초대 르호보암이나 2대 아비야에 대해서 왜 그토록 역대기 기자가 선하고 아름답게 그려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까? 단순히 그 두 왕을 띄워주기 위함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더욱이 바벨론 나라에 패망하고 포로생활 70년을 겪은 유다 백성들은, 그 두 왕이 하나님을 올곧게 섬긴 왕들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 기자가 두 선왕에 대해 선한 행적을 그리고자 한 이유가 있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고자 한 백성들을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으고자 한 까닭입니다.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이 나라를 다시금 세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바르게 세워줄 것이라는 소망 때문에, 그래서 다윗과의 언약을 바르게 지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살면, 기필코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강성한 나라로 세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써 내려간 것이죠. 이른바 나무의 본 뿌리가 튼튼하고 선한 뿌리라면 그 줄기나 가지에서 나는 것들이 비록 메마르고 앙상한 것들도 없지 않겠지만, 그 뿌리를 튼튼히 세워가면 언젠가 더 선하고 튼실한 가지가 나오고 열매를 맺는다는 그런 이치를 전하고자 함이죠. 그 뿌리가 바로 다윗의 뿌리요, 다윗의 뿌리로부터 20명의 유다 왕들이 나왔고, 그 중에서는 메마르고 앙상한 가지와 같은 왕들도 없지 않았지만 또 선한 8명의 왕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런 12명의 악한 왕들조차도 그 속에 흐르는 다윗의 언약 속에 있다, 다윗의 뿌리 속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죠.
오늘 읽은 본문은 남왕국 유다의 3번째 왕 아사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사 왕에 대한 내용은 사실 오늘 읽은 14장에서부터 16장까지 계속됩니다. 아사 왕에 대한 행적은 열왕기상 15장 9-24절에 기록돼 있는데, 그는 20명의 유다 왕들 가운데 선한 8명의 왕들 가운데 한 왕으로 꼽힙니다. 물론 열왕기에서는 아사 왕의 통치 41년 생애를 통으로 함축해서 기록하고 있지만, 오늘 읽은 역대기하에서는 39년의 통치로 밝혀주고 있고, 그것도 3장에 걸쳐서, 시대별로 나눠서, 보다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는 그가 통치하기 시작한 10년의 상황들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온 말씀인데, 본문 2-5절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기에 나오는 이방 제단과 산당은 과연 어느 때에 영향을 받아 세운 것들이겠습니까? 또 풍요와 번영의 신을 상징하는 아세라 상은 과연 누가 세운 것들입니까? 이방 신상과 제단들은 실은 솔로몬의 처첩들이 가져온 것들이죠. 솔로몬이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중심으로 성전건축에 온 힘을 쏟을 때 하나님께서 창대와 번영의 복을 주셨죠. 그런데 그 창대와 번영의 최정점에 달했을 때 그만 타락하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때 그가 700명의 처와 300명의 첩을 이방 나라들에서 데려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는데도, 솔로몬은 그렇게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서 나라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죠. 바로 그때 그 이방 여인들이 이방 신상들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신상들이 바로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왕하23:13)이었죠. 그런 신상들이 솔로로몬을 거쳐 아들 르보호암과 손자 아비야 시대까지 계속 내려왔던 것이죠.
바로 그런 이방 신상들을 아사 왕이 다 찍고 불태우게 했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온 백성들이 준행하도록 명령한 것이죠. 이른바 예수님의 시대의 상황에 빗댄다면 성전정화작업을 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죠.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까?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하나님께서 아사의 시대 10년 동안 평안함을 주셨다고 밝혀주고 있죠. 아사는 그만큼 왕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고, 이 나라가 평안케 될지를 내다본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기가 국가경제나 국방력이나 외교력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정신과 삶 속에서 자취를 감춘 하나님 신앙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죠. 그 신앙중심의 삶을 다시금 불러 일으켰던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다윗의 시대에 부어주셨던 평안을 내려주신 것이죠.
물론 아사가 그런 마음과 자세로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 중심, 신앙중심의 모습을 겸비하자, 하나님께서는 나라의 평안만 주신 게 아니라, 이방 대적들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본문 8-15절 마지막 부분의 내용이 그것이죠. 구스 왕 세라가 군사 100만명과 병거 300대를 동원해 예루살렘을 치려고 오는데, 아사는 58만의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우죠. 그때 아사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11절에 나오죠.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아무리 군사력과 무기력이 강할지라도, 아무리 그 군사력과 무기력이 약해도,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고백이죠. 이토록 약한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만 승리할 수 있다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아사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아사의 왕정 40년 기간 중, 초기 10년간의 일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마당이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먼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사랑하시는 주님.
세상의 일들도 실은 영적인 전투와 같습니다.
큰 일을 앞에 두고 있든지 작은 일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 중심 신앙중심의 자세를 펼쳐보이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영적인 전투와도 같은 세상의 일에서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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