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르호보암의 나이 41세에 왕이 되어 17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밝혀주고 있죠. 그가 왕이 되어 맨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 솔로몬이나 할아버지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번제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왕정을 펼친 게 아니었죠. 그는 왕이 되자마자 세상 방백들 앞에 나아갔죠. 이른바 자기 과시, 자기 명예심을 더 고취시킨 모습이죠. 더욱이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세금을 감면해 달라고 했지만, 그는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말해 인위적인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더욱 무거운 세금 정책을 취했고, 세금감면을 청하는 그들의 요구 앞에 포악한 말로 화를 내며 응대했죠. 결코 온유하지 못한 그의 모습이었죠. 그와 같은 영적인 면과 인격적인 면 때문에 그의 시대에 나라가 둘로 쪼개져버렸습니다. 이른바 남유다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합쳐 유다 왕국을 형성하여 르호보암이 통치하게 되고, 북이스라엘은 북쪽 10개 지파가 하나로 연합하여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 왕국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어제 살펴 본 내용은 그런 르호보암이 그 포악한 성질 그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북이스라엘을 쓰러버리고자 군사를 일으켰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그들을 치러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너의 나라가 둘로 나뉜 것이 내가 한 일이라, 바꿔 말해 아무리 네가 그들을 치고자 할지라도 내가 막고 있으면 칠 수가 없고, 오히려 너만 화를 당할 것이다, 그러니 치러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그 때 그가 취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북쪽 10개 지파가 연합한 북왕국 이스라엘이 자신이 이끄는 남유다 왕국을 쳐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 성벽을 방비하고, 지휘관들을 곳곳의 수비대에 배치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 즈음에 북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역대기는 다윗의 왕조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을 뿐 북이스라엘의 왕조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의 왕국을 통치하는 여로보암에 대한 활약상은 거의 알 수가 없죠. 하지만 이미 살펴본 열왕기상 12장을 보면 솔로몬의 군대장관이었던 여로보암이 갑자기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돼 한 일이 나와 있죠. 그때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마자 남쪽 벧엘과 북쪽의 단 지역에 각각 황금송아지 신전을 세우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숭배하게 만들었고, 그 신전 앞에 섬기는 제사장들마저도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을 앉혔고, 심지어 이스라엘의 절기 곧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 같은 절기들도 자기 멋대로 날짜까지 바꿔 버렸죠 이유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자기 왕권을 강화할 목적이었죠. 만일 북왕국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그대로 내버려뒀다가는 그들의 마음이 남쪽 예루살렘 성전에 쏠릴 것이고, 절기마저 그대로 놔 뒀다가는 매년 세 번씩 그곳으로 내려갈 게 뻔하고 그렇다면 백성들의 민심이 남유다 왕국으로 쏠리지 않겠는가, 그런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황금송아지 신전을 만들어 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풍요와 번영을 맹신하게 만들었던 것이죠.
여로보암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분열왕국 전에 북쪽 땅에 흩어져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며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세를 거둬들였던 레위인들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위치가 급작스레 박탈당하자 모든 짐들을 싸서 남쪽 유다 땅으로 내려오게 되었죠.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온 레위인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도 드렸고, 이 나라 곧 르호보암이 통치하는 유다 왕국을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겨달라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바로 그 모습을 바라 본 남유다 왕 르호보암도 다시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아가죠. 그래서 레위인들의 회개운동과 기도운동을 통해, 왕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다윗과 솔로몬이 길어갔던 하나님의 길을 걷게 되죠. 그러자 그토록 강퍅한 르호보암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죠. 그래서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백성들을 통치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어제 읽은 말씀이었다면, 오늘 읽은 말씀은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본문 1절입니다.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 5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무엇을 일깨워주는지 알 수 있죠. 그가 영적으로 아둔하고 인격적으로 모나고, 또 인위적인 방법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일 때 나라가 두 쪽이 났는데, 그때 북쪽에서 내려온 레위인들이 회개운동을 벌일 때 그도 덩달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바른 길을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셨죠. 그 속에서 나라가 다시금 견고해지고 복을 받게 되는데, 문제는 그 정점에 그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버렸다는 것이죠.
이것이 실은 신앙인들이 경계해야 할 부분이죠. 하나님께서 창대와 번영의 복을 주시면 더욱더 겸손하게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면 패망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꺾으시기 위해 애굽 왕 시삭의 군대를 예루살렘 땅에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또 재밌는 광경이 등장합니다. 애굽 왕 시삭이 군대를 이끌고 침략해 올 때 르호보암이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본문 6절에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하나님께 큰 실수와 허물을 범했나이다, 하면서 회개하는 자세를 겸비한 것이죠. 그 모습 앞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조금 손 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죠. 그래서 9절에 보면 그 애굽의 시삭이 군대를 몰고 와 예루살렘을 치고, 또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까지도 모두 빼앗아가는 모습이죠. 그런 과정에 르호보암이 하나님 앞에 더더욱 겸비하자,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멸하시지 않게 하셨죠.
이것이 르보호암이 왕으로 펼친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의 나이 41세에 와이 되어 17년간 유다 왕국을 다스렸는데, 그가 58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으로 자기 사명을 다하게 되죠. 그가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 중심, 신앙중심으로 나가지 않고 자기 왕권 강화와 부귀영화에만 목을 매단 채, 나라가 분열되자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된 모습, 그 후에 평안케 되고 왕정이 잘 풀릴 때 또다시 교만하여 하나님의 법을 떠나게 되고, 그때 하나님께서 애굽 왕 시삭의 군대를 보내 무기력하게 당하는 르호보암의 인생, 그게 17년간의 왕정이죠. 그것이 역대하 10-12장에 나오는 르호보암의 전 인생이죠.
그런데 이미 읽은 열왕기상 14장에서는 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나요? 그가 하나님 앞에 겸비한다거나, 하나님의 법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서는 모습들은 없습니다. 바꿔 말해 신앙심을 다시 고취시켰다, 다시 타락했다, 다시금 하나님 앞에 겸비한 그런 모습들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백성들이 산과 나무 아래서 산당과 우상을 섬기며 남색하는 자들을 다 허용하는 왕의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그 때문에 르보호암의 통치 5년 때에 애굽 왕 시삭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모두 빼앗아갔다고 밝혀주고 있죠.
그렇다면 열왕기상에서는 그가 하나님께 전적인 죄악을 범했다고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역대하 10-12장을 통해, 왜 그가 악을 행했다가 다시금 겸비했다고 밝혀주는 일까요? 이른바 패망한 이스라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르호보암처럼 스스로 겸비하면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은총을 덧입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15절 마지막 부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하는 말씀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북왕국 여로보암과 르보호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는 것, 바로 그런 ‘긴장관계’ 때문에라도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영적으로 민감할 수 있고, 바르게 세워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희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온유한 삶의 모습을 갖출 때 창대와 번영케 하시는 복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처럼 인위적인 복을 만들고자 할 때,
그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을 때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때 다시금 겸비하게 하시옵소서.
그렇기에 뭔가 바쁘고 항상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것,
그것으로 인해 내 영혼이 매일 긴장하고 바르게 설수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서 만지시는 복임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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