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대하10:1-19)

by 똑똑이채널 2021. 10. 18.
728x90
반응형
SMALL

르호보암의 어긋난 모습

 

역대기는 패망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바르게 세울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쓴 역사실록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나온 통일왕국과 분열왕국의 역사를 토대로 했지만 실은 가장 왕성한 다윗 왕과 성전중심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했죠. 그래서 아담에서 사울 왕까지의 족보가 역대상 1-9장까지 담겨 있고, 역대상 10-29장 마지막까지는 다윗이 왕이 된 것과 성전건축에 관한 내용들을 밝혀주었고, 역대하 1-9장까지는 솔로몬이 왕이 되어 성전을 건축한 내용을 담고 있었음을 쭉 살펴봤습니다.

그렇듯 역대기상하서의 전체적인 중점내용은 다윗과 솔로몬과 다윗의 후대 왕조 역사를 중심을 차지하지만 더 깊은 중심은 성전건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역대기 기자, 보통 에스라로 알려져 있는 그 역대기기자가 성전전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패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길은 그 무엇보다도 성전중심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성전을 재건하듯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바르게 세울 때에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다시금 회복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었죠.

그래서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이 120년인데, 사울은 왕권 초기 2년은 겸손했지만, 그 후 38년 동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 왕권만 강화하던 불쌍한 인간이었죠.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신앙적으로 본받을 게 없는 사울 왕의 업적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죠.

 

 

[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www.aladin.co.kr

 

그렇다면 다윗과 솔로몬은 어떠했습니까? 배다른 7명의 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태어나 양치기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다윗은 10대 후반 곧 20대 초반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이후 8년간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다닌 도망자 신세의 삶을 살았고, 30대에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30대 후반에 난공불락의 성읍인 여부스 성읍을 점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덧입어 40세에 명실상부한 온 이스라엘의 왕다운 왕이 되었고, 자기 궁궐을 짓고 그곳으로 천도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법궤를 모시고 오고 또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죠? 그만큼 다윗은 성전중심, 곧 하나님 중심의 신앙심을 확고하게 갖고 살았죠.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시대에는 성전을 짓지 말도록 하자, 그 모든 뜻을 수용하죠. 대신에 그 하나님의 중심의 신앙심을 통해 그 모든 성전을 짓는 재료들을 전적으로 헌신하며 준비한 다윗이었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해 주셨고, 창대케 되는 은총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만큼 다윗이 성전 중심 곧 하나님의 중심의 신앙심을 먼저 갖추고 살 때 하나님께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시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셨던 것이죠.

그러나 문제는 그의 나이 50대에 접어들 때, 부와 명예와 권력과 승리의 최정점에 섰을 때, 더욱더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겼어야 할 다윗인데 그때 죄악을 범하지 않았습니까? 그로 인해 그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고, 몇몇 아들들마저 다 죽게 되었고, 그 사랑하던 압살롬도 죽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의 인생 후반기에 다시금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다시는 그와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고, 마지막 아름다운 삶으로 하나님 나라에 갔죠.

솔로몬도 바로 그런 삶의 패턴을 따랐습니다. 다윗의 19명의 공식적인 아들들 가운데 10번째 배다른 아들인 솔로몬은 왕이 될 자격도 하나 없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는 나단 선지자와 어머니 밧세바의 지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왕위에 올랐죠. 그런 그였으니 하나님께 감사의 번제물, 곧 일천마리의 번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었죠. 그런 순전한 마음,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심을 갖고 살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와 장수까지도 주겠다고 약속했죠. 그래서 그가 왕이 된지 4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고, 연인원 18만3천300명을 동원해 7년6개월간 걸쳐 성전을 완공했죠. 그리고 13년 동안에 걸쳐 자기 궁궐을 지었죠. 그렇게 20년 동안 성전을 짓고 궁궐을 짓는 동안에 나라안팎에 왜 잡음이 없었겠습니까? 역대하 8장에서도 살펴봤지만 다메섹의 동북 방향에 자리 잡고 있는 하맛소바 같은 나라가 이스라엘에 배반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는 일도 있었는데, 그때 솔로몬은 그들을 정벌하고 진압했죠. 바꿔 말해 나라 안팎의 잡음이 있었음에도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한 이유, 그 모두가 하나님께서 은총을 부어주신 결과였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해 그가 부귀영화를 누리며 창대와 번영의 복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성전중심, 곧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어진 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에도 더욱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았다면 그의 부귀영화 곧 창대와 번영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해 주셨을 텐데, 그는 그 후에 10년간 여러 국고성과 왕비를 위한 궁궐과 또 다른 성읍들을 짓는데 백성들의 세금을 쏟아붓게 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왕권의 강화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모습이 아니라 자기 과시, 자기 허세의 모습이었죠. 더욱이 그는 그 10여년 세월이 천명의 처첩을 거느리며 주지육림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고, 수많은 말과 마병을 거느리며 군사력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삶에 빠졌죠.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주신 창대와 번영의 포로가 돼버린 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타락한 삶을 살다가 50대 후반 곧 60세 초반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데,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게 사람의 마땅한 본분이라면서 자신의 어리석은 죄악들을 고백하며 하나님 나라에 부름을 받죠.

자, 그렇다면 솔로몬의 다음을 잇는 르호보람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했겠습니까? 적어도 아버지 솔로몬과 할아버지 다윗이 걸어갔던 하나님 중심의 삶을 뒤좇아 살아야만 나도 창대와 번영의 삶을 살 수 있겠구나, 내가 헛된 곳에 마음을 두고 살면 나도 신속히 패망하게 되겠구나, 하는 것들을 깨우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만 아니라 우리들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어떻게 하는가? 그는 하나님의 중심의 삶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욕망의 길을 고집할 뿐이죠. 4절에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르호보암에게 나와 아버지의 세금정책을 이제는 가볍게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그들의 요구에 대해 3일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늙은 원로대신들과 젊은 대신들의 의견을 함께 들어보죠. 그때 원로들의 의견보다 젊은 대신들의 의견 대로 더 무거운 세금정책을 밀어붙이고자 할 때, 나라가 남북의 분열되었음을 밝혀주죠.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내면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죠. 무엇보다도 그의 왕위 즉위과정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이나 다윗은 왕위에 오른 직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왕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 먼저 묻고 나아가는 자세를 취했는데, 르호보암은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세겜으로 나가 먼저 백성들을 상대하는 모습이죠. 또한 원로들의 의견을 좇아 세금감면정책을 펼치면 될 것을, 자기 살을 깎듯이 조금 부족한 듯 살면 될 것으로 그는 아버지가 최정점에 누렸던 사치와 방탕한 삶을 살고자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버렸죠.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감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게 있죠. 13절에 왕이 포악한 말로 대답할 새”, 15절에 왕이 이같이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백성들에게 포악한 말로 행한 그의 태도는 겸손하고 어진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지도자는 겸손한 성품을 갖춰야 하는데, 오직 독선으로 가득 찬 미숙한 왕이었던 것이죠. 신앙적인 관점에서 그 세가지 부분 때문에 결국 나라가 분열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르호보암의 반면교사를 통해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자녀들과 일터와 사업장과 우리교회가 잘 될 수 있는 길, 그것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 교만치 않고 사치하지 않는 자세, 그리고 인격과 성품이 온화한 모습을 갖출 때,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르호보암의 모습을 통해 반면교사로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무슨 영화로운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세를 취하게 하시고,

사치와 향략을 즐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겸손하며 인격과 성품을 온화하게 갖추며 살게 하시옵소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말씀은 2천년 전 아니 3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복된 말씀인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