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왕으로 재임한 40년 기간 중에 20년을 성전건축과 자기 궁궐을 짓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성전건축은 7년6개월 걸렸고, 자기 궁궐은 13년이 걸렸죠. 물론 열왕기 기자도 그렇지만 역대기 기자도 솔로몬이 건축한 궁궐에 대해서는 한 줄로 요약할 뿐입니다. 모든 초점을 성전건축에 맞추고 있습니다. 그만큼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 나라에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는 부분이죠.
그래서 본문 1절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을 이십 년 동안 건축하기를 마치고.”라고 나와 있습니다. 솔로몬의 통치 4년에 접어든 B.C. 966년에 성전건축과 궁궐 건축을 시작하여 성전은 B.C. 959년 8월에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한 것이고, 그의 궁궐은 그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 B.C. 946년에 끝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궁궐은 이렇게 한 줄로 언급할 뿐 여태껏 그 모든 초점을 성전건축, 곧 하나님의 나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후람이 솔로몬에게 되돌려 준 성읍들을 솔로몬이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거기에 거주하게 하니라.” 열왕기상 9장 11-14절을 보면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이 감사의 사례로 두로 왕 후람에게 갈릴리 성읍 20곳을 선물로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두로 왕 후람이 그 성읍들의 상태가 나쁘다고 하면서 ‘가불’이라 부르고 다시 솔로몬에게 되돌려 줬었죠. 본문은 그에 관한 말씀인데, 솔로몬은 두로 왕 후람이 되돌려 준 성읍을 재정비하고 증개축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살도록 했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3절은 솔로몬이 ‘하맛소바(Hamath-Zobah)’를 쳐서 점령했다고 밝혀줍니다. ‘하맛소바’는 소바 땅에 있는 하맛 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소바 왕국에 인접한 하맛 왕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소바(Zobah)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다메섹의 동북 방향에 자리 잡고 있는 왕국이고, 하맛(Hamath)은 아람 사람들이 사는 왕국의 하나인데, 다윗 때에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이래 계속 조공을 바쳐 온 나라였습니다. 각기 다른 두 왕국을 하나로 부른 것은 역대기 기자 곧 에스라 시대 때 두 지역을 페르시아가 통치하면서부터 그렇게 하나로 합쳐 부른 것이죠. 그래서 솔로몬이 하맛과 소바를 쳤다는 것은 다윗 왕 때까지 바쳤던 공물을 솔로몬 시대에 거부하고 반역을 꾀하니까 솔로몬이 그 나라들을 쳤는데, 솔로몬이 그만큼 평화롭게만 산 게 아니었죠. 크고 작은 대외전쟁을 치렀던 것이죠. 그런데도 40년간 태평성대할 수 있었던 것,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본문 4-10절까지는 솔로몬이 국고성을 각 거점 지역에 건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의 ‘다드몰’은 바벨론으로 가는 교역로에 있는 국고성이고, 5절의 벧호론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성읍이고, 6절의 ‘바알랏’은 단 지파의 성읍으로 블레셋을 막기 위한 국고성읍입니다. 그런데 7절 이하를 보면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국고성을 각 지역에 건축할 때 누구를 동원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동족이 아닌,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이방인들과 전쟁에서 사로잡아 온 노예들을 동원해서 그 성읍을 건설했다는 점이죠. 이유인 즉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9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지휘관의 우두머리들과 그의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들이 됨이라.” 솔로몬이 노예로 삼은 사람들은 이방인들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노예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지휘관과 우두머리로 삼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실은 성전건축에도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미 역대하 2장에서 성전건축에 투입된 사람들의 수가 18만3천300명이었음을 밝혀줬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인 남자수가 15만3천600명, 적어도 3만 명 가량은 두로 왕 히람이 보낸 일꾼들도 있겠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지도자와 관리자로 참여한 사람이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성전건축이든 오늘 본문의 국고성읍을 건설하는 일이든지, 지휘자와 관리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했고, 나머지는 다 이방인들을 동원해서 일을 하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 당시에는, 솔로몬이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그 시점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타락하여 쇠락기를 맞이할 무렵엔 상황이 달랐습니다. 성전이야 다윗이 준비한 모든 금은동과 재료들을 동원해 지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솔로몬의 궁궐과 모든 국고성을 건설할 때에는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죠. 바로 그것 때문에 솔로몬이 죽었을 때 그 아들 르호보암에게 많은 대신들이 찾아와 세금을 감면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죠. 물론 그 르호보암은 나이든 원로 대신들의 말보다 젊은 대신들의 말만 듣고서 무거운 세금 정책을 펼쳤죠. 그 일로 인해 여로보암이 반란의 주동자로 나서서 후에 북이스라엘의 통치자로 나섰던 것이죠.
물론 그와 같은 강압적인 세금 정책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과 솔로몬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것은 일부러 감추고자 한 게 아니라 패망한 이스라엘을 다시금 세우고자 하는데 괜히 않 좋은 점을 드러내봤자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면은 본문 11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 이른바 솔로몬의 아내, 곧 애굽의 바로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녀를 위한 궁궐을 말하는 것이죠. 열왕기상 9장 24절에 보면 솔로몬이 그녀를 위해 궁궐을 지어줬는데, 그 역시 백성들 앞에서 보자면 올바른 일은 아니었죠.
그런데 그 일을 본문에서 어떻게 처리하는가?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하고 정리하죠. 이른바 애굽 왕 바로의 딸은 이방 여인이기 때문에, 비록 솔로몬의 아내가 되었지만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그 예루살렘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궁궐을 지어준 것처럼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솔로몬의 실수를 감추고 장점만을 부각하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문 12-5절까지는 솔로몬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들 곧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을 잘 준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레위인들 가운데 제사장을 도와 성전의 직무를 감당했던 자들, 또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지휘 아래 성전의 찬양과 뮤지선을 담당했던 자들, 또 성전의 문지기로서 성전 제사에 참여한 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들을 맡았던 자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15절에서는 그들이 “무슨 일이든지 왕의 명령한 바를 전혀 어기지 아니하였더라.” 바꿔 말해 ‘다 준행했다’는 뜻입니다.
이게 과연 무엇을 정리해 주는 뜻이겠습니까? 솔로몬이 다윗이 준비한 재료들을 동원해 7년 6개월간 성전을 건축하고, 이제 13년에 걸쳐 자기 궁궐과 자기 아내를 위한 궁궐을 짓고, 더 나아가 여러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고 물자들을 보관하기 위해 국고성을 짓지 않았습니까? 그런 과정들은 총 40년 재위 가운데 20년 동안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런 상황가운데 적들의 침략도 없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그 일을 모두 순탄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덮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주시는 성령님의 메시지는 그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면 그 모든 일들을 순탄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적어도 이 때에는 하나님의 바른 관계, 곧 성령충만한 상태 속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도 매일매일 성령충만함 속에 살면 그런 은총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솔로몬이 성전건축은 물론 자기 궁궐과 왕비의 궁궐과 여러 국고성 성읍들을 건축했습니다.
40년 재위 가운데 20년 동안 그렇게 건축물에 쏟아 부었고, 백성들의 세금으로 충당했습니다.
더욱이 그 속에서도 적들의 배반과 침략도 없지 않았고 그 모든 것들을 맞서 싸워나갔던 솔로몬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면 그 모든 문제들을 지혜롭게 잘 풀어나갈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런 은총을 저희들을 덮어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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