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분열왕국의 첫 번째 유다 왕이 됩니다. 그는 솔로몬 다음으로 통일왕국의 네 번째 왕이 될 위치에 있었죠. 하지만 그는 통일왕국의 네 번째 왕이 못 되었고, 분열왕국의 첫 번째 유다 왕이 될 뿐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겉으로 보면 백성들의 민심에 흡족한 응답을 해 주지 못한 데 있었죠. 이른바 백성의 지도자들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와 아버지 솔로몬이 추구했던 세금정책에 감면을 해 주도록 했는데, 르호보암은 그를 거절한 것이었죠. 원로대신들은 그때 백성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요구한 대로 들어줄 것을 청했지만, 젊은 대신들은 이전의 솔로몬 왕이 추구했던 세금정책보다 더욱 무거운 세금정책을 펼치도록 원했죠. 그러자 르호보암은 원로 대신들의 요구보다 젊은 대신들의 뜻을 좇아 무거운 세금정책을 펼쳤는데, 바로 그것이 나라가 돌로 나뉘게 된 표면적인 이유였죠.
하지만 그 모든 사건에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 이면적인 이유, 곧 내면적인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 드러난 원인보다 그 속에서 일어난 원인이 훨씬 더 크죠. 르보호암이 다스리던 그 시기에 나라가 돌로 나뉘게 된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영적인 원인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왕이 되었을 때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 오히려 백성들 앞에 나아가는 자세를 취할 뿐이었죠. 그의 아버지 솔로몬이나 그 할아버지 다윗은 모두 왕이 되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세를 취했었죠. 하지만 르호보암은 그런 하나님 중심의 신앙, 곧 신앙중심의 모습을 전혀 갖추지 않았던 것이죠.
두 번째 영적인 원인은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취한 무거운 세금정책은 단순한 세금 정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쾌락과 욕망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채찍이 아닌 전갈을 들어 백성들을 징치하고 다스리기 위해 세금을 거둔다는 것은 핑계요, 그는 그 세금을 통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 증거가 본문 21절에 나오고 있죠? 르호보암의 아내가 18명, 첩이 60명, 아들이 28명 딸이 60명입니다. 그토록 그는 많은 세금을 통해 온통 사치와 방탕에 빠져들어가는 데 사용했던 것이죠. 그만큼 그는 하나님께서 원한 율례와 법도에서 멀어졌던 것입니다.
그의 시대에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된 세 번째 영적인 이유는 그 때문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의 경솔함, 곧 다듬어지지 않은 그의 성품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 앞에 르호보암은 포악한 말로 대답했죠. 그만큼 그는 지도자가 지녀야 할 성품과는 거리가 먼 성품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죠.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1:19-20), 또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그런 말씀처럼 르호보암이 아무리 화가 나고 자신의 주권에 도전해 온다고 해도, 정말로 온화한 인품으로 백성들을 대했다면, 결코 백성들이 등을 돌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 그의 인품은 그만큼 얕았기에 하나님의 대의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르보호암이 자신을 배반한 북이스라엘의 10개 연합 지파를 향해 전쟁을 벌이려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막으셨고, 그 후에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고 방어태세를 갖추기 위해 여러 성읍들을 요새화하는 모습, 맨 마지막 부분에는 하나님 앞에 다시금 바로 서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은 르호보암의 영적인 실수와 허물로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등을 돌리자 그들을 진압하려고 군사를 일으킨 모습을 보여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말씀하시죠.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르남북이 분열된 것,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이라고 천명하십니다. 이유인 즉 솔로몬 때부터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등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둘로 나누신 것이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기에 그렇게 둘로 나누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그들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치러간다 한들, 결코 이겨낼 길이 없고, 오히려 동족끼리 피만 흘릴 뿐임을 말씀하신 것이죠. 한 마디로 르호보암이 그 전쟁을 통해 북이스라엘을 쓰러버리고 자존심을 회복시키고자 했지만 더 큰 화만 자초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자기 성읍을 돌아왔죠. 그리곤 무엇을 합니까? 르호보암은 북 북이스라엘 왕국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성벽을 쌓습니다. 그것이 본문 5-12절에 나오는데, 특별히 11-12절 말씀이 이렇죠. “르호보암이 그 방비하는 성읍들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지휘관들을 그 가운데에 두고 양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저축하고 모든 성읍에 방패와 창을 두어 매우 강하게 하니라 유다와 베냐민이 르호보암에게 속하였더라”
사실 솔로몬의 시대에도 이방 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국고성을 지키고, 여러 성읍들을 세로 세우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에 나라가 평안하고 안전했죠. 하지만 솔로몬의 화려한 통치시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르호보암의 시대에 접어들어 나라가 위기를 맞이한 것 아닙니까? 그것도 외환에 휩싸인 게 아니라 같은 동족끼리의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 말입니다. 그에 대해 대비하고자 그렇게 성벽을 쌓은 것이죠.
성경은 이렇게 르호보암의 영적 어리석음과 그 위기에 대비하게 위해 밝혀줍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으로 끝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13-17절을 보면 비록 르호보암이 하나님 앞에 영적인 어리석음으로 인해 나라가 둘로 나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그 시절에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북쪽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제사장들 곧 레위인들을 위협했고, 하나님을 대신해 황금송아지를 숭배했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3대 절기마저 자기 입맛에 맞게 다 바꿔버린 모습이 횡행했죠. 바로 그런 과정들을 통해 북쪽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 있던 수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북이스라엘 땅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그들이 유다 나라에 크나큰 영향력을 펼쳤던 것이죠. 이른바 그들이 중심이 되어 르호보암의 길을 다시금 바로 잡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17절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년 동안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점이 있지 않습니까? 비록 르호보암이 왕정 초기에 영적으로 큰 실수를 범하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을 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셔서, 막판에 그가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 그래서 나라도 다시금 바로 잡아주시는 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죠. 더욱이 르호보암이 하나님께 순종하자, 그 나라를 회복시키시고, 강성하게 하시며, 또한 많은 자녀를 허락하여 복을 주시죠. 23절에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그렇기에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수하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감싸주시고, 사람들을 통해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일깨워줍니다. 그 속에서 순종하여 돌이키면 더 큰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난은 때로 우리에게 영적인 유익함을 주신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말씀하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사랑하는 주님.
살다보면 우리는 실수할 때가 있고, 옳다고 생각한 길에서 잘못된 방향을 좇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품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심 감사드립니다.
그런 고난의 자리에서 더욱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크신 은총의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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