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나예) 작년과 올해 ‘동학개미’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주식에 대해 전국의 열풍이 불었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올라갈 사다리가 끊긴 청년들,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들까지도 주식투자로 돈을 벌고자 했습니다.
왜 그렇게 열풍일까, 과연 바람직한 투자현상일까,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죠.
그때 존리의 〈금융문맹탈출〉 〈파이프라인우화〉 〈실리콘밸리 투데이〉 〈나는 주식대신 달러를 산다〉는 책을 읽었죠.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 무엇보다도 제 자식들에게, 어떤 경제관을 갖고 살지 일깨워주고자 함이었죠.
그중 박성현 씨의 〈아빠의 첫 돈 공부〉는 흙수저 출신인 저와 제 아이들, 청년세대에게 맞는 경제원리를 말하고 있었죠.
이 땅의 흙수저와 같은 청년들,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을지라도, 세 가지 단계를 준비하도록 말합니다.
첫번째 단계로 사회초년병 시절에는 급여를 받든 자영업을 하든, 매월 현금흐름을 만들라고 말이죠.
직장에 들어가든지 창업을 하든지, 그 어떤 일을 해서라도, 현금을 모으라는 뜻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절약과 저축을 통해 종잣돈을 만들라는 것이었죠.
한 달에 200만원이든 300만원이든, 초봉을 받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예물 외에 기본생활비는 빼고 모두 저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 집에 산다면 생활비를 내고, 나머지를 모아 1년이면 천만원을 모아가라는 뜻이었죠.
20년 전, 5년간 5천만원을 종잣돈으로 모아, 1억을 대출받아 1억 5천짜리의 집을 사라는 거였습니다.
한달 대출 이자가 30만원일 경우, 물가 상승에 맞춰 집값도 올라가기 때문에 훨씬 이득이라는 것이었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에 비추면 5-10년간 매월 모은 종잣돈으로 집을 산 다음부터는 투자금을 모으라는 것이었죠.
그래야만 그 다음 단계인 투자를 통해 경제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깨달음)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단계와 같은 것이죠.
비행기는 지상활주–이륙–상승-또 상승-또 상승-최종 상승후-순항하며 창공을 난다고 하죠.
그와 같은 단계적 상승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대형 항공기인 보잉 747의 이륙 속력이 시속 320km라고 하죠.
자동차보다 3배나 빠른 속력으로 이륙하고 상승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엔진연료가 필요한 법이죠.
사회초년병 시절에 엔진연료를 모으듯, 전심으로 모으는데 쏟아붓는 길 밖에 길이 없다는 것이죠.
그 시절에 비싼 차를 굴리거나 쇼핑이나 여행을 다닌다면, 어찌 나중에 경제적인 자유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집을 마련하고 투자금을 마련하여 경제적인 순항기를 맞이하려면 그렇게 전심으로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부어 주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가 되기까지 자식 하나 없는 무자식이었죠.
당시에는 무자식이 상팔자가 아니라 가장 큰 수치요 실패작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 본토 친척 아비 집, 기대고 사는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만 보고 떠나라고 했죠.
그 말씀에 순종해서 가나안 땅에 왔지만 머무를 집도 전답을 없어 애굽으로 내려가는 불순종의 삶도 살았습니다.
더욱이 10년이 지나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하나님의 약속을f 기다리지 못한 채,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손은, 그 언약의 후손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이었죠.
드디어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때, 언약의 후손인 이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적어도 25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었습니다.
바로 그 기간이 비행기의 활주로를 달리는 과정이었습니다.
믿음의 기반을 쌓던 과정이요, 믿음의 단계적 상승을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전폭적으로 쏟아붇는 것이었죠.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의 나이 37살, 이삭의 30대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죠.
자기 분신이자 자기 소유와도 같은 아들을 바치라고 하실 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말씀을 주신 것은 그 후손의 순항을 위해, 창대와 번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조.
더욱이 그것은 그의 소유와도 같은 이삭만 드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자아까지 온전히 내어드리도록 하신 하나님의 원하심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그 모든 소유와 재물까지도, 그의 인격까지도 하나님께서 산 제물로 쏟아붓도록 말이죠.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모리아 산으로 가는 3일 길에도 흔들림 없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쏟아부어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숫양을 준비해 드리도록 했고, 그 후에 후손의 비상, 경제적인 비상을 할 수 있는 축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예화) 이동원 목사님의 〈 인생여행 〉에 나오는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의 간증입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멘소래담 로숀은 ‘멘소래담’ 창업자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가 창업자입니다.
그는 1889년 미국에 비처방 건강 관리 제품 회사인 맨소래담을 창업했습니다.
그 후에 제약업 이외에도 헬스케어와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을 했죠.
그때부터 멘소래담은 세계적인 헬스&뷰티케어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후에 미주 유럽 아시아 등 150여개국에서 100개 이상의 브랜드가 판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50년대 한국전쟁 도중 미국 선교사들과 주한미군에 의해 맨소레담 로션이 처음 보급되었습니다.
그런데 맨소레담 회사가 1929년부터 1939년까지 미국경제공항기에 부도를 맞았습니다.
그때 알렉산더 하이드는 그 당시 10만 달러, 지금의 1억보다 훨씬 더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는 여기저기서 돈을 다 끌어모아 빚을 갚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게 있었죠.
자기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십일조를 드리는 삶을 드리기로 결심한 것이었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당신 제정신이냐. 빚더미 위에 앉아 무슨 십일조냐?”하고 말이죠.
“나 제정신이네. 내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것이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멋지게 재기하도록 해 주셨고, 나중에는 10의 2, 3, 4조까지 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깨달음)아브라함도 알렉산더 하이드도 자기 소유권과 자기 자아를 온전히 쏟아부을 때 하나님께서 산제물로 받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그런 감동을 주셔서 우리가 산 제물로 드릴 때, 그와 같은 동일한 은혜의 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로마교회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세운 자생적인 교회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 제자들이 세계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의 방언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죠.
바로 그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로마에 돌아가 스스로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로마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었죠.
그런데 그 초신자들, 그 새신자들의 믿음이 어디에까지 전해지고 있었습니까?
바울이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고린도로 갔을 때, 바로 그곳까지 전해진 것이었죠.
그때 성령님께서는 바울의 심령을 움직이셔 펜을 들게 했을 때, 바울은 주님 앞에 산 제물이 되는 자세로 그 편지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로마서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 믿음의 이론편, 곧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써내려갔죠.
또 12-16장까지는 믿음의 실천편, 곧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써내려갔습니다.
바울은 그때 그 편지를 누구 편으로 보냈다고 했습니까?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고린도의 외항 겐그레아 출신인 여집사 뵈뵈에게 전달토록 했죠.
당시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직선거리 800km였는데, 배로 한달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여인의 몸으로 로마까지 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죠.
그런데도 그녀가 순종한 것은 인간 바울의 부름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인 줄 알고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본문) 바로 그런 상황으로 본문 1절을 읽을 때 ‘산 제물로 드리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죠?
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원해) 바울은 로마서 1-11장을 통해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다고 말하죠.
그런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인간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실 때 온전히 순종한 것처럼 말이죠.
중요한 것은 로마서 12-16장까지 믿음의 실천편을 써 내려가는 그 첫머리에서도 ‘산 제물로 드리라’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다면, 너희들도 주님을 본받아, 아브라함을 본받아, 알렉산더 하이드처럼,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몸’은 헬라어로 ‘소마’(σῶμα)입니다.
육체적인 외적인 몸 상태만이 아니라 인격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죠.
‘산 제물로 드리라’는 이 말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것과 같이 드리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짐승을 드렸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자기 몸을 드렸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온 인격 전체를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나의 주권, 나의 소유권, 나의 재물, 나의 모든 인격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짐승을 잡아드리는 그 제물은 모두가 거부감 없이 온전히 죽는 것처럼 말이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도 이삭도 온전히 쏟아드렸던 것처럼 말이죠.
예수님께서 십자가 제물로 드리도록 원하실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쏟아부은 것처럼 말이죠.
알렉산더 하이드에게 십일조를 드리도록 감동 주실 때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부어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예수님에게, 알렉산더 하이드에게 복을 내려주셨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산 제물로 부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을 별처럼 모래처럼 많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산 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만 왕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알렉산더 하이드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경제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남에게 나누는 선한 영향력까지 펼치게 해 주셨습니다.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주님께서는 산 제물로 자기 전 인격을 드리는 자들에게 경제적인 자유의 복을 부어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감동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 아들과 딸이 경제적인 자유의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지 않느냐?”
“사회 초년병이 되었을 때 네 자녀가 전심으로 쏟아부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비행기가 자유롭게 창공을 날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너는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아브라함이 창대와 번영의 복을 받기까지 무엇을 순종했는지 너는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만 왕의 왕으로 하늘에 승천하시까지 예수님의 무엇을 순종했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10만 달러나 빚지고 있던 알렉산더 이븐이 어떻게 살아갈 때 다시금 재도약하며 경제적인 자유를 누렸는지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자녀들과 사회 초년병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야 할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너의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께 먼저 쏟아붓도록 하고, 나머지 모든 것들을 경제적인 자유를 이루기까지 전심으로 모을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하지 않겠느냐?”
“자식 하나 없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그 귀한 것을 산 제물로 드리도록 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 소유권을 자기 것으로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께 내어드렸을 때, 더 많은 창대와 번영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않았더냐?”
“예수님께서도 인간을 위해 대속의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 앞에 순종했을 때, 만 왕의 왕으로 승천하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더냐?”
“맨소레담 창업자 알렉산더 이븐도 뒤늦게 십일조를 통해 소유권을 주님께 올려드리도록 할 때, 그가 빚진 상태 속에서도 전심으로 구별하여 드릴 때 베풀고도 남는 경제적인 자유의 복을 누릴 수 있지 않았더냐?”
(찬양)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예화) 제가 전주태평교회에 전도사로 섬기던 시절에 중고등부를 7년간 담당했습니다.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시골 교회 예배당을 밀려 수련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련회가 개최되기 전이면 한 달 전부터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교사들이 릴레이금식기도를 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물론 그때 교회에 한 두 번 나오던 친구들도 초청해서 수련회에 함께 데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수련회의 하이라이트는 저녁 집회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련회 말씀을 전하는 강사는 매번 바뀌기도 하고, 또 제가 강사로 섬길 때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사님이 말씀을 전하든 제가 말씀을 전하든, 말씀집회 이후의 기도 시간 인도는 제가 담당을 했죠.
그때 얼마나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는지, 모든 교사 선생님들은 갈망하고 또 갈망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부르짖고 기도하는 학생들에게 성령님은 역사해주셨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또 다른 학생들은 소리를 치면서 기도하면서 말이죠.
물론 그 중에는 그런 분위기를 낯설게 느끼는 학생들도 있어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끼리끼리 모여서 웃는 학생들도 없지 않았죠.
그런데 그때마다 저도 그렇고 선생님들도 찾아가 권면을 하면서 같이 기도하자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학생들 곁에 선생님이 찾아가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도록 했죠.
그때 성령님께서는 성령의 전이 곧 성령의 임파테이션처럼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님의 역사가 엘리사에게 임한 것과 같은 그런 전이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성운영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도 수련회 집회를 통해 또 기도회를 통해 일생일대에 부르짖고 기도해야 할 모든 기도를 그때 다 한 것 같다고 고백한 친구죠.
그때 기도를 하지 않을 때면 강제로라도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주여, 주여”하고 부르짖고 기도하게 하도록 요청했었죠.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중요한 것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기도에 불을 받고자 전심으로 쏟아붓는 학생들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학생에게 성령님이 임하실 때 그 옆 친구에게도 전이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원성)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9)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발췌)조태성 목사님의 〈십자가와 성령님에 의한 삶〉에 나오는 토미 테니 목사님의 이야기에요.
토미 테니 목사님이란 분이 친구 목사님의 초청으로 예배 인도차 그 교회 예배당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1부 예배를 드리러 왔는데,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곧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예배당 입구에서 강대상을 향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하나님께서 그 영광으로 교회 전체를 가득 채우는 것 같았죠.
그때 친구 목사님은 어찌할지 몰라서 토미 테니 목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강대상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역대하 7장 14절의 말씀이었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러면서 설교 말씀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잘못되었다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을 때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그 분의 혜택을 구하는 일을 그만 두고 그 자신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분의 손이 아니라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데, 그때 성도들은 앞다투어 강대상으로 뛰쳐나와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모두가 울부짖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배는 오전 8시 30분부터 시작되었지만 11시 2부 예배에 들어오는 성도들조차도 예배당 안에서 통곡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배는 찬양과 기도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임재, 성령님의 임재가 그 예배를 그들의 기도를 주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지금도 우리 주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만족함을 주시는 주님 아시십니까?
주님은 갈급한 자에게 성령의 생수를 부어주시는 분 아닙니까?
경제적인 자유를 갈급하는 자에게도, 영혼의 갈급을 사모하는 자에게도, 주님은 당신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쏟아붓는 자들에게 역사해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내음성)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에게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 사모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청소년기에 주님을 만고자 간절히 부르짖고 원했던 학생들에게 임해주셨고, 그 주변 학생들에게까지 전이되게 하신 성령님.”
“오늘 저도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구하고 찾고 두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토미 테니 목사님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고자 할 때 그곳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부어주신 주님.”
“오늘 저에게도 그런 강력한 은혜의 임재를 내려주시옵소서.”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내 영혼이 주님을 먼저 만나고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 주세요.”
“주님 앞에 내 영혼과 내 인격과 맡기신 물질을 산 제물로 드릴때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경제적인 은총을 누리게 해 주시옵소서.”
(찬양) 우리 모인 이곳에 주님 함께 계시네 누리네 아버지 은혜
적은 떡과 물고기 내 모든 걸 드릴 때 모두 고백해 여호와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제물 삼기까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경제적인 상황에 자유를 누리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위해 우리 자녀들에게, 사회 초년병들에게, 아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영혼이 잘 되길 원한다면 영혼에 대한 갈급함과 사모함을 가지고 전심으로 쏟아부으라고 말이죠.
성령님께서는 그렇게 사모하고 찾고 간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만나주시고 만져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경제적인 상황에서도 자유를 누리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길 원하는 분이십니다.
그를 위해 사회초년병 시절부터받는 월급 중에 십일조와 예물을 구별하여 그 소유권을 주님께 쏟아붓는 산 제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외 생활비 고정지출 이외의 월급은 철저하게 모아 살 집을 먼저 마련하고 그 후에 투자를 통해 경제적인 창공을 날 수 있는 지혜로운 준비를 하라고 성령의 감동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런 말씀과 감동을 주실 때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산 제물로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멘소래담’ 창업자 알렉산더 하이드에게 그런 말씀과 감동을 주셨을 때 그가 전 인격을 드리는 십일조를 산 제물로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경제적인 자유의 창공을 나는 부와 선한 영향력을 누리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중고등부 시절에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성운영이도 사회 초년병시절부터 그렇게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크신 복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사회초년병을 준비하는 자녀들에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은총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일설교SundaySerm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롬12:3-5) (0) | 2021.10.16 |
---|---|
[동영상]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롬12:1-3) (0) | 2021.10.10 |
[동영상] 영적 예배니라(롬12:1-3)_20211003주일예배 (0) | 2021.10.03 |
영적 예배니라(롬12:1-3) (0) | 2021.10.01 |
[동영상]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1-3)_20210926주일설교 (0) | 2021.09.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