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SundaySermon

영적 예배니라(롬12:1-3)

by 똑똑이채널 2021. 10. 1.
728x90
반응형
SMALL

(설교열기)(논지)지난 주에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특별히 임사체험을 통해 천국을 보고 온 이들이 있다고 했죠.

이븐 알렉산더 뇌과학 박사도 그렇고, 스웨덴의 이마누엘 스베덴보리, 우리나라의 신성종 목사도 그렇죠.

 

그만큼 이 세계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만 존재한 게 아니라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본받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 곧 천국의 가치를 본받아 살아야 한다고 했죠.

 

영적 예배니라.hwp
0.10MB

 

하지만 영적인 세계를 추구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주어진 삶을 죄악시하거나 하찮케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 땅에 두 발을 내딛고 사는 한 우리의 이성을 다해 지혜롭게 사는 사는 삶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성을 놓친 채 영적인 것만 추구하면 그 옛날 다미선교회나 최근의 신천지 사이비 집단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만큼 우리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이 땅에서 우리의 이성을 다해 분별하며 숙고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죠.

 

(발췌) 이재철 목사님의 사도행전 속으로에 나오는 내용을 재인용한 부분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700만 관중을 동원한 때가 2012년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화재를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시즌 막판에 넥센 히어로즈팀의 감독으로 임경엽 작전주루코치를 선임한 일이었죠.

그때 그의 나이 45살이었는데, 그 분은 선수 시절에 주목받는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었죠.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프런트로 일하다가 2007년에 코치 생활을 했는데 지도자로서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죠.

그러다가 201112월에 넥센 히어로즈의 작전 주루 코치로 자리를 옮긴 후에 2012년에는 팀 도루 1위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현역시절에 실패한 1할대 타자였습니다.

그분은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해서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10년간 통산 타율 0.019였습니다.

더욱이 1996년과 1997년에는 타율이 0이었습니다.

현역 시절 수비와 주류 센스는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았지만 왜 타율은 매번 바닥이었을까요?

 

그에게 타격 소질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그랬다면 프로야구 선수로 뽑히질 못했겠죠.

고려대학 재학 시절에 그는 팀의 4번 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스스로 재능을 믿고 프로구단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결과였을까요?

하지만 그는 프로 구단에서도 매일 천 개가 넘는 스윙을 하면서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1할 대밖에 못 치니까 코치들이 염 선수에게 각각 다른 타격 자세를 주문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 코치 저 코치들의 말에 따라 계속 타격 자세를 바꿨던 것이죠.

바로 그것이 그를 악순환의 타자로 몰아넣은 꼴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었지만, 생각을 수반하지 않는 주체적이지 못한 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던 염 감독은 그래서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훈련도 생각이 없이 하면 노동이다하고 말이죠.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야구 선수가 하루에 천 개의 방망이를 휘두를지라도, 왜 휘두르는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생각없이 휘두르면 체력 소모 외에 유익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에 몇시간씩 공부를 해도, 왜 하는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생각 없이 하면, 시간만 축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예배를 드려도, 왜 예배를 드리고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 내 이성으로 생각하여 드리지 않으면 깨달음 없는 감정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것은 진리를 알게 하시는 내 이성으로 예배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뜻이죠.

 

(적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의 거울과 같은 말씀을 주신 이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을 통해 나의 어긋난 삶을 살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좇아 살도록 하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영성의 세계와 이성의 세계는 다른 차원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통합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써 보낸 편지라고 지난 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소아시아 남부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인 바울은 10대 후반에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었죠.

유대인들의 율법을 배워서 산헤드린 의원이 되는 것, 당시의 정치경제종교문화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게 그의 꿈이었죠.

바로 그 꿈을 이루고자 20대 후반에 결혼을 한 그는 그 당시의 기독교인들을 색출해 감옥에 처넣는 선봉장 역할을 했죠.

 

그런 그가 34살의 나이에, 그 날도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체포하고자 길을 가는데, 그때 주님을 만났죠.

정오의 태양빛보다 더 찬란한 그 빛, 진리와 생명의 빛, 그 영적인 빛에 의해 거꾸러졌고, 눈은 떴지만 앞을 보지 못했죠.

그래서 주변 동료들의 손길에 이끌려 다메섹의 성읍에 들어가 3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보낸 아나니아의 안수에 의해 두 눈을 뜨게 되었죠.

 

그와 같은 영적인 체험, 그 신비로운 체험은 바울의 일생 일대에 처음으로 겪은 획기적인 체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체험이 그때 한 번 뿐이었습니까?

아니죠.

그 후에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경건훈련을 거쳐 다메섹으로, 또 예루살렘으로 왔지만 누구 하나 자신이 변화된 걸 인정해주지 않았죠.

그때 바나바가 바울을 고향 다소로 보내줬는데, 바로 그곳에서 7년 넘게 지내면서 기도와 묵상 가운데 살았죠.

바로 그 무렵에 그는 영적인 언어의 기도 곧 방언으로 된 기도를 했고, 3층천의 세계 곧 천국을 보고 온 체험을 했죠.

 

그렇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이후에 그는 이 세상의 삶이 필요없다고, 이 세상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신비주의에 휩쌓여 살았습니까?

마치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대화를 나눈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지 말고 그냥 산에서 살자고 한 것처럼, 신비주의에 몰입한 바울이었습니까?

아니죠.

바울은 그 후에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교회 공동담임목회자로 3년간을 섬겼습니다.

그때 수많은 헬라인들이 안디옥교회에 들어오자 그는 이성적인 말씀으로 분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섬겼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성령님께서 강권하실 때 그의 이성으로 분별하여 성령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1, 2, 3차 전도여행에 나섰죠.

1차 전도여행 때 선교지를 이탈한 바나바의 조카도 있었고 바울도 풍토병에 걸린 일도 있었지만, 온 이성과 의지를 다해 터기 남부 지역 곧 갈라디아 지역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는 바나바와 갈라져 떠났는데, 드로아 항구에서 잠을 잘 무렵에 유럽 대륙 사람들이 도와달라는 환상을 봤죠.

그때 바울은 자기 일행과 함께 그 환상이 성령의 인도하심인지 온 이성으로 분별했고, 급기야 배를 타고 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했죠.

그때 세운 교회가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고 고린도교회였습니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을 떠나 소아시아 서남부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2차때 세운 고린도교회의 여러 문제점을 듣게 되었죠.

 

그렇다면, 만약 여러분이 바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린도교회에 음행, 제사음식, 방언과 은사 문제, 파벌문제 등, 여러 문제가 터져나왔는데, 가만히 내려버두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해결해주실거야, 하면서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기에, 이성의 거울과 같은 말씀을 가지고 바울이 두 차례나 방문했죠.

그래도 안 되자 디모데를 보냈고, 그래도 안 되자 디도를 보냈는데, 그는 이성적인 말씀의 기반 위에 해결하고 돌아왔죠.그때 바울도 에베소에 문제가 터져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고린도로 건너가서 성도들을 위로하며 3개월간 머무르게 되었죠.

 

그런데 그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소식이 들려오죠.

로마에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너무나 진실하고 신실하다는 그 소식이 바울이 있던 고린도에까지 전해오는 것이었죠.

그때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로마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잘 성숙하도록 이끌어주실 거야, 하면서 내버려뒀습니까?

아니죠.

바울은 오순절날 구원의 은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로마 사람들이 로마에 돌아가 교회를 세운, 그 자생적인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죠.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로마서입니다.

 

바울은 그때 왜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로마서를 편지를 써 보냈겠습니까?

자생적으로 세워진 로마교회 성도들이 구원과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이성적으로 잘 분별하여 믿을 수 있도록 써 보낸 것이죠.

그것이 로마서 1-11장까지 내용이죠.

뿐만 아니라 구원과 믿음에 대해 이성적으로 분별하여 믿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그 삶을 살도록 12-16장까지 써 보냈습니다.

바로 이 편지를 고린도의 외항 겐그레아에 살고있는 젊은 여집사 뵈뵈 편으로 고린도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는 보낸 것이었죠.

직선거리로는 800km지만 그 당시 화물선과 선박을 갈아타고 갔다면 족히 한 달 이상은 걸리는 로마였는데도 기꺼이 보냈죠.

 

(본문) 그렇기에 오늘 본문 1절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우리는 충분히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본문 1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원해) 바울은 구원과 믿음의 도에 대해서 로마서1-11장까지 써 보냈고, 12-16장까지 구원받은 자가 살아야 할 삶에 대해서 써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받은 자는 그 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너희들이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하는 것이죠.

한 마디로 말하면 산 제물로 드리는 것영적 예배는 동의반복어 곧 같은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제물이 양이나 염소는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하고 죽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라는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우리의 삶 자체가 제물처럼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죠.

 

그렇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제물이 되는 것영적 예배가 어떻게 동급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말 영적으로 번역된 헬라어 로기코스’(λογικς)분별력을 지닌이성적인’(reasonable)이란 말입니다.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까?

예배당 안에서 주님께 산 제물로 드린 나의 예배가 삶 속에서 이성적인 거울과 같은 말씀으로 분별하여 살라는 뜻이죠.

바로 그것이 영적 예배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배를 통해 주신 말씀을 내 심령에 잘 새길 뿐만 아니라 그 말씀으로 한 주간의 삶속에서 살 실천하여 사는 것, 그것이 영적 예배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으로 충만한 삶, 성령으로 충만한 삶, 영감으로 충만한 삶은 이성이 마비된 삶을 뜻하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죠.

이성은 온데 간데 없고 감성만 충만하면 다미선교회나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집단에 빠져들고 말죠.

영적으로 충만한 예배,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란 나의 온 이성과 지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렇다고 내 이성이 주인이 돼서 좋은 말씀은 취하고 안 좋은 말씀은 빼버리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산 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거울과 같은 말씀으로 내 삶을 조명해 주실 때, 어떤 말씀이든지 잘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삶의 예배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예배당에 나와 나를 드리는 것은 예배의 시작이요, 진정한 예배의 완성은 예배당 밖 1주간의 삶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바로 그것이 산 제물이 되는 시간이자, 바로 그것이 삶 속에 영적인 예배자로 사는 길임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주님은 예배당 안에서 우리가 산제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주신 말씀을 좇아 예배당 밖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영적 예배자로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으로 그렇게 격려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영성과 이성은 분리된 게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너는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천국을 보고 온 알렉산더도, 스베덴보리도, 신성종 목사도 신비주의에 갇힌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더욱 치열하게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만난 주님을 본 제자들이 변화산에 머물고자 할 때 주님께서 산 아래로 가자고 한 것처럼 말이다.”

바울도 진리와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뵈었고, 3층천의 천국을 보고왔지만, 신비주의 세계에 갇힌 게 아니라 오히려 이 땅에서 진리와 생명의 삶을 경주하며 살지 않았더냐?”

넥센 히어로즈팀의 임경엽 감독이 선수 시절 하루 천 개의 방망이를 생각하지 않고 휘두를 땐 체력의 소모로 끝난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예배당에 나와 주님께 예배를 드릴 때 산 제물로 온 이성을 다해 드리고, 예배당 밖에서는 그 말씀으로 한 주간 신실하게 살아가는 영적 예배자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바울이 천국을 보고, 유럽대륙 사람들이 도와달라는 환상을 봤을지라도, 그와 동료들의 이성으로 분별하여 순종한 것처럼 말이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 로마교회 성도들의 소식 앞에 내버려두지 않고 구원이 무엇인지 구원받은 자의 삶이 무엇인지 온 이성을 다해 그 편지를 써내려갔던 것도 그렇지 않겠느냐?”

네가 영적인 세계가 열릴 때 신비주의자로 갇히지 말고, 이 땅에서 신실한 주님의 자녀로 살도록 너의 이성을 분별하고 순종하여 살면 좋겠구나.”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자의 모습 아니겠느냐?”

기도를 할 때도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힘들고 낙심되면 절망하기보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온 이성을 다해 기도하는 것을 놓치지 말도록 해라.”

 

(찬양)기도를 멈추지 마라 눈앞의 상황이 마음을 눌러도

원망치 마라 너의 입을 지켜라 저들은 너의 입을 보고 있다

마음을 뺏기지 마라 내가 널 도우지 않는단 소리에

너의 모든게 모든게 불리해도 너는 기도를 계속해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니

바로 역전되리라

 

(예화) 건강 제약품 멘소래담으로 백만장자가 된 앨버트 알렉산더 하이드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국의 경제공황 시절에 10만 달러의 빚을 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빚잔치를 한 후에 새롭게 결심하고 시작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생명처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주변 동료들과 사업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비난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당신 제정신이냐. 빚더미 위에 앉아서 무슨 십일조를 한다고 그래? 빚이나 다 갚고 하든지 하지.”하고 말이죠.

그때 그는 거울과도 같은 주님의 말씀으로 비춰주시는 그의 이성의 깨달음으로 그렇게 결단하며 말했습니다.

나 제정신이네. 내가 이성으로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것이네

 

물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멋지게 재기를 했습니다.

그 후엔 101조를 넘어 십의23조와 4조까지 드렸고, 나중에는 109까지 드리고도 남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습니다.

 

(깨달음)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은 후에 유혹해 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를 멈추지 않고 주님의 은혜 안에 굳게 기도한 다음에 유혹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 대한 걱정들이죠.

 

그러나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염려한다고 해서, 우리의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내 인생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의 거울로 내 심령과 내 삶을 비출 때 우리의 이성과 의지를 다해 순종할 때,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바로 그것이 영적 예배자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예화2)고든 맥도날드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자기 직업에 대해 불평하는 뉴욕의 버스 기사들에게 버스를 성소로 생각해 보라고 격려했습니다.

뉴욕의 아침 출근시간과 저녁 퇴근시간은 엄청나게 붐비는 곳이라 버스를 몬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는 일이라고 하죠.

더욱이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로 모든 인종이 다 모여 사는 인종의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뉴욕의 버스 기사들이 모는 그 버스에는 별의별 손님들이 다 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찰리라는 이름의 기사가 맥도날드의 그 도전, 버스를 성소로 생각해 보라는, 그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버스에 올라 큰 소리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부터 여덟 시간 동안 이 버스를 성소로 선포한다.”

이 버스에 타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을 선포한다.”

 

버스 운전 기사 찰리는 뉴욕 시내를 운전하면서 그렇게 매일 같이 선포하며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손님들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그는 그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여전히 믿음의 기도로 선포하며 나아갔습니다.

나는 버스가 아니라 성소를 운전하는 하나님의 자녀다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의 삶이 변하고 버스의 분위기가 변해갔습니다.

그가 모는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고, 서로 웃는 모습으로, 그 승객들의 일상이 변화되는 것을 그가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내일부터 당장 그렇게 선포하며 하루의 일상을 맞이하지 않으시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가게를, 이 사무실을, 이 집무실을, 이 집을, 이 차를, 성소로 선포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가 거하는 이곳을 거룩한 성소로 삼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자다.”

 

그렇게 한 달, 세 달, 1년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변화돼 있을지, 저와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린 우리가 삶 속에서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리는 영적 예배자가 되는 길인 줄 믿습니다.

 

(내음성)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주님. 예배당 안에서 산 제물로 드리는 저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영적 예배로 드리겠습니다.”

내가 일하는 일터를, 나를 보내신 가게를, 사무실을, 집을, 차 안을, 주님의 성소로 선포하며 살겠습니다.”

나를 대하는 손님들이 비록 진상과 같은 분들이 있을지라도, 뉴욕의 버스 기사 찰리처럼 주님을 대하듯 섬기겠어요.”

주님께서 예배 시간에 거울과도 같은 말씀으로 나를 비춰주실 때 온 이성과 의지를 다해 순종하게 해 주세요

내게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터치하실 때 내일의 삶을 걱정하기보다 모든 주권을 주님께 순종하여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게 해 주세요.”

나의 이성과 의지를 흔들어대는 영적 세력들이 있을 때 결코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를 멈추지 말고 주님께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찬양) 기도를 멈추지 마라 눈앞의 상황이 마음을 눌러도

원망치 마라 너의 입을 지켜라 저들은 너의 입을 보고 있다

마음을 뺏기지 마라 내가 널 도우지 않는단 소리에

너의 모든게 모든게 불리해도 너는 기도를 계속해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니

바로 역전되리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신앙이 영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며 주님 안에서 통합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배당에서 주님께 드리는 산 제물된 나의 모습이 예배당 밖 삶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 예배자가 되길 바라시는 주님이시죠.

임사체험으로 천국을 보고, 기도와 환상 가운데 천국을 보고 왔을지라도, 이 세상에 주어진 일을 신실하게 순종하는 영적 예배자 말입니다.

 

나의 이성을 비추시는 거울과 같은 말씀 앞에 내가 기도를 하고 결단을 해도 내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밀려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기도를 멈추지 마시고, 내가 머문 운전대 안을, 내가 일하는 가게 안을, 내가 만나는 그 곳곳을 현장의 성소로 선포하며 섬길 수 있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나의 온 이성을 다해 순종하는 삶 속에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의 주인공들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