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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밤 보령에 다녀왔어요. 나를 포함해 7명이 모임을 갖고자 함이었죠. 그런데 목요일까지만 해도 통화했던 55살의 서울 친구가 급작스레 패혈증에 걸려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어요. 그 일로 함께 내려오기로 했던 부천의 다른 친구도 올 수 없었고요. 감기로 시작된 패혈증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저승을 넘나들듯 희생한 까닭에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 게 원인이지 않나 싶어요. 그날 밤 보령수양관에 모인 일행은 친구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죠.
3일 아침엔 웅천읍 정미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생태탕을 먹었어요. 식사 뒤엔 대창 8리 임도정 공장을 들여다봤고요. 놀랍게도 그 공장 안에는 쌀과 고춧가루를 빻는 기계가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어요. 대부분 종합처리장처럼 자동화된 현대시설이 들어서고 있지만 그곳은 100년 역사의 간직한 임도정이었죠. 모두가 디지털화 세계로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지만 그곳은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아날로그 방식이었어요. 풍요 속에 빈곤처럼 보일지라도 그곳 주인은 동네 사람들을 보듬어 안는 방앗간의 제사장이자 그 기계 속에 자신을 바치고 있는 어린 양이었죠.
“이런 상황은 연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벌어진다. 과도하게 자신의 자리를 사회적으로 형성된 캐릭터에게 내주고 그 역할을 이유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흔해 보인다. 나도 가끔 가면의 도움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233쪽)
화가로 변신한 배우 박신양과 예술에서 철학적 가치를 읽어주는 인문학자 김동훈의 그림 이야기를 담은 〈제4의 벽〉에 나온 내용이에요. 누구나 연기자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감당하지만 그게 안 맞는 옷처럼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겠죠. 이 책은 박신양이 러시아 유학 때부터 화가가 되기까지 겪은 고난과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가 여태 그린 그림 중에 131점을 삽입했고 김동훈의 인문학적인 해설로 풀어주고 있죠.
‘제4의 벽’이란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이라고 해요. 벽이란 실체는 현실엔 없고 상상 속에만 있는데도 배우와 관객 모두가 현실에도 있는 것처럼 여긴다는 거죠. 사실 박신양도 그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림은 그런 벽조차 제한치 않는다고 해요. 연극과 영화는 3인칭 시점이 가능하지만 그림은 오로지 1인칭이고요. 그만큼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벗고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설 수 있다고 하죠.
뼈만 남은 듯한 ‘피나 바우쉬’의 앙상한 몸짓이 그에게 투사처럼 다가온 것도 그런 연유였겠죠. 그녀의 몸짓처럼 자신의 작품도 사람들 눈에 닿고 사람들의 영혼에 더 깊이 닿기를 바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자신이 길을 잃을 때마다 종이 팔레트는 길 안내자 같은 좋은 교과서였다고 해요. 그만큼 작가는 언어와 표현이 궁핍한 시대에 저승을 향해 나가는 제사장이자 제단에 바친 양과 같은 존재라고 하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뒷발질하면서도 몸부림 친 당나귀처럼 지난 10년을 그가 살아왔던 것이겠죠.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역대기서 읽고 묵상하기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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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4)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의 이름을 두 번 불렀어요. 아브라함과 야곱과 사무엘과 베드로와 마르다와 바울(창22:11,창46:2,삼상3:10,눅22:31,눅10:41,행9:4)처럼요. 삶의 전환을 원할 때 그렇게 불렀죠.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한 지도자로 삼고자 부른 거예요. 그때 모세는 아브라함과 야곱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대답했는데 히브리어 ‘הִנֵּה’(히네)는 ‘보라’(behold,창1:29,민14:10)는 조사에요.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벗고 순수함으로 서 있는 자신이라는 것이죠. 자아를 벗어던지고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반응이고요.
세상이 급변하고 맡은 역할도 자주 바뀌고 있어요. 그러다 힘들면 나아갈 방향도 잃고 몸과 마음도 지치게 되죠. 패혈증으로 입원한 그 친구도 저승을 넘나들듯 자기 역할에 너무 많은 희생을 했어요. 100년 역사를 간직한 웅천의 임도정 주인도 그곳의 제사장이자 기계 속에 자기 몸을 바칠 양이었죠. 작가 박신양도 제4의 벽을 걷어낸 채 1인칭 모습 보여주려는 제사장이자 종이 팔레트 앞에 자신을 바칠 어린 양과 같았고요. 모세도 앞날이 불투명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아가는 제사장이자 그 길에 자기 생을 바칠 어린 양이었죠. 그를 위해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벗고 순수함으로 하나님 앞에 지금 반응하고 있는 것이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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