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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폭설이 내렸다. 새벽녘 길이 빙판길이라 새벽기도회를 자율로 했다. 그래도 예배당 불은 환하게 켰다. 더욱이 빗자루를 들고 예배당 앞에 있는 눈들을 쓸어냈다. 누군가 그 새벽녘에 길목을 지나가다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에서다. 그 무렵 시내 먼 곳으로부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선가 교통사고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큰 사고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아침 8시 무렵이면 교우들에게 말씀 한 구절을 카톡으로 보낸다.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그날그날 읽은 말씀 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나누는 것이다. 그 말씀 한 구절로 그날의 양식을 삼도록 하기 위함에서다.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도록 돕고자 함이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과 다른 현장에 있는 분들과 하루하루 교감하기 위한 매개체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기보다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따뜻한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밥이라고 느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물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결코 밥도 물도 아니라고, 그 어떤 존재와도 끝끝내 섞이지 않을 가혹하고 단단한 물질이라고 느낀다.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 단어들뿐이다.”(p.59)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와 희랍어를 배우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과 함께 독일 이민자로 살던 마흔 살의 남자가 홀로 한국에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데 눈을 잃어간다. 여자는 원인도 없이 열일곱 살에 말을 잃었는데 불어 단어 하나로 입술을 달싹였고 결혼까지 했지만 아홉 살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긴 채 말을 잃다가 실어증을 극복하려고 선택한 게 희랍어를 배우는 거였다.
희랍어는 그 둘의 아픈 기억과 폐쇄된 현실을 끄집어내는 장치다. 사실 희랍어는 페니키아 문자에서 비롯된 고대 그리스인들의 언어다. 그들은 헬라인이라 칭했는데 그리스어가 자연스레 헬라어가 된 셈이다. 희랍어(希臘語)는 헬라어의 한자 음역이다. 알렉산더 대왕 통치 시절 널리 쓰였다. 물론 헬라어 문법은 까다롭다. 동사는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 이 소설도 헬라어를 닮아선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헬라어는 그리스철학과 의학과 신약성경에 쓰인 단어인데 작가가 왜 그걸 가져왔을까?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고, 소통과 공감을 일으키는 매개체로 사용코자 함이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8∼19)
우리말 ‘갈릴리’는 헬라어로 ‘갈릴라이아’(Γαλιλαία, גָּלִיל)다. ‘회로(Circuit) 곧 ‘고리’를 뜻한다. 전자회로, 식물의 순환원리를 연상케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많은 사역과 기적을 갈릴리에서 행하셨다. 갈릴리는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십자가 밀알로 죽으셨다가(요12:24) 부활승천하는 영생의 순환고리(빌2:6∼8)를 보여준 곳이다. C.S.루이스의 〈개인 기도〉에서도 그와 같은 순환고리를 말한다.
갈릴리의 호수는 남북이 21km 동서가 11km 둘레가 53km다. 평균 수심은 26m이고 가장 깊은 곳은 43m다. 해수면보다 209m 아래에 있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물의 30∼40%를 공급하는 수원지다. 갈릴리 호수는 여러 강대국들에게 짓밟히면서 긴네렛 게네사렛(막6:53) 디베랴(요21:1)로 불렸다. 예수님께서 그곳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질하는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신 것은 그들에게 하늘의 생명고리를 잇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리로 연결돼 있다. 혈연과 학연과 지연의 고리가 그렇다. 작가 한강도 두 남녀의 소통과 공감을 불러오고자 희랍어를 고리로 사용했다. 목회자와 성도는 예배와 말씀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서(마28:10) 부활의 생명고리를 잇도록 하셨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어떤 고리를 잇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쌓인 눈을 치우며 길을 내고, 마른 땅에 샘터가 되고, 승냥이가 눕는 곳에 풀과 갈대가 자라게 하고(사35:5∼10), 빛을 잃고 실어증 걸린 이들을 공감하고, 주렸을 때 먹을 걸 나눈다면(마25:36) 충분한 예수 생명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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