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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갈릴리 해변에(마4:18-22)_2025년 2월 9일 주일설교문

by 똑똑이채널 202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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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 현대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끈입니다.

끈은 뭔가를 연결하며 사는 것이고 때로는 그 끈이 인생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5가지 끈이 있다고 농담말로 하죠.

첫 번째는 ‘매끈’이 있습니다.

까칠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뭐든 밝게 웃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매너있게 행동해야 하는 모습이죠.

두 번째는 ‘발끈’이 있습니다.

실패가 있거나 어려움이 있어도 용기를 내서 발끈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화끈’이 있습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하는 모습이죠.

어차피 할 일이라면 남들 눈치 보지 말고 화끈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네 번째는 ‘질끈’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나 결점이 보여도 눈을 질끈 감고 살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는 ‘따끈’입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을 말하죠.

바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인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깨달음)매사에 그와 같은 다섯 가지 끈을 갖고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과 연결하여 사는 생명의 끈이 가장 중요한 줄 믿습니다.

그 끈이 없으면 진짜로 끈 떨어진 신세 곧 지옥불에 떨어지는 신세로 전락할 것입니다.

 

(적용)그런 의미에서 우리모두는 저마다의 끈, 저마다의 고리를 연결하며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혈연 학연 지연의 고리가 그렇습니다.

맨 처음 부모와 형제자매의 핏줄 고리로 세상을 출발합니다.

그 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각자의 학연 고리로 성공과 출세의 발판을 삼기도 합니다.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는 사람들은 저마다 지역 고리를 이용하기도 하죠.

 

그 모든 끈, 그 모든 고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이나 숲 속에 들어가 나 혼자 살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고리를 연결하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고리 가운데 생명의 고리, 영생의 고리로 연결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한 알의 밀알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생명의 고리를 잇고자 오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의 고리, 그 생명의 고리를 먼저 이어주신 것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가며 살라고 부르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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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고 6개월 먼저 광야에서 회개의 복음을 외친 선지자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고 낙타 털옷을 입고 청빈한 삶을 살았죠.

그런 그가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정치지도자들 곧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서 그렇게 외쳤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살아라”(마3:7-8)

 

얼마나 당당한 외침이요 모두가 주눅이 들 정도로 선포한 것 아닙니까?

그 까닭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갈릴리 사람들조차도 세례 요한을 랍비 곧 스승으로 모시던 사람들이 많았죠.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의 제자가 되고 싶은 이들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에 찾아오셨죠.

그리고 죄 없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은 자신을 스승으로 따르던 이들 앞에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더욱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때 하늘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봤던 세례 요한이라 그렇게 외쳤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봤으니 저 분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요1:34)하고 말이죠.

한 마디로 말해 예수님은 메시아요 구원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 중에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당장 형에게 찾아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죠.

그때 예수님은 네가 귀가 얇고 성격도 울그락불그락 하니 ‘시몬’이지만 앞으로는 반석처럼 흔들리지 말라는 뜻으로 게바 곧 베드로라 부를 것이다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속내를 정확히 꿰뚫었다고 해서 그 한 마디 말해 베드로가 동생 안드레를 데리고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늘 그랬듯이 고기잡이에 나섰고 특별히 그 날은 밤새도록 그물질 했지만 한 마디로 잡지 못한 날이었죠.

그때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한 이후에 베드로가 그물질하는 곳에 찾아와 말씀하셨죠.
그물을 깊은 데 던져보라고 말이죠.

그러자 베드로는 그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그때도 자기 속내를 꿰뚫어 본 분이라고 그 분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죠.

그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고기를 잡았고 인근에 있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의 배를 불러 가득 채웠죠.

그러면서 베드로는 여태것 그물질에 이력날 정도로 모든 뱃사람의 경험이 풍부한데도 그날 그 바닷가를 다스리는 분이 주님인 줄 알고 무릎을 꿇면서 말했죠.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 같은 사람은 주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눅5:8)

그러자 주님은 그때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깨달음)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 말씀할 때 따라오라는 헬라어 ‘듀테’(δεῦτε)는 구약의 히브리어로 ‘야라크’(יָלַךְ,창12:5)라고 했습니다.

그 단어는 목자가 지팡이로 양을 이끄는 형국을 의미한다고 했죠.

다윗도 사울의 칼날을 피해 10년간 도망자로 살 때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하고 말이죠.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의 목자임을 알기에 광야의 이슬을 맞아가며 살지라도 끝까지 자기 인생을 의탁하며 순종한 것이었죠.

 

그것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데라를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옮겨와 살았지만 여전히 실패작 인생이었고 6년 어간에 아버지도 죽어버렸죠.

그야말로 기댈 게 없고 의지할 게 없던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내가 내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복을 삼을 것이고 너를 창대케 할 것이다’하고 말이죠.

그러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죠’

그 단어가 ‘야라크’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따라간 것은 그분이 자기 인생에 영원한 목자임을 알았기 때문에 따라 나선 것이죠.

 

(적용)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도 오직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목자인 줄 믿습니다.

그 분만이 생사화복의 주관자요 그 분만이 영원한 생명의 주관자로서 내 인생에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당신이 생명의 목자임을 깨닫게 하셔서 부르시고 당신을 목자로 따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와 같은 부르심의 현장이 어디인지를 일깨워주는데 본문 1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원해)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게 그물질하는 그곳에 예수님께서 찾아와 부르신 곳은 갈릴리 해변입니다.

우리말 ‘갈릴리’는 헬라어로 ‘갈릴라이아’(Γαλιλαία גָּלִיל)입니다.

‘회로(Circuit) 곧 ‘고리’를 뜻하는 말이죠.

전기전자의 회로, 식물의 순환원리를 연상케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많은 사역과 기적을 갈릴리에서 행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을 갈릴리로 보내면서 다시금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갈릴리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주님께서 십자가 밀알로 죽으셨다가(요12:24) 부활승천하는 영생의 순환고리(빌2:6∼8)를 연상케 하는 곳입니다.

 

(깨달음)보통 사람들은 갈릴리를 바다라고 부르지만 실은 호수입니다.

바다의 짠 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북쪽 헬몬산의 눈이 녹으면서 계곡을 타고 그곳까지 스며들어 모이는 담수호이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릴리 호수를 갈릴리 바다로 부르는 것은 웨만한 호수보다도 바다처럼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죠.

 

갈릴리의 호수는 남북이 21km 동서가 11km 둘레가 53km입니다.

평균 수심은 26m이고 가장 깊은 곳은 43m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보다 209m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그 면적은 166km²가량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 갈릴리 호수가 이스라엘의 식수 30∼40%를 공급하는 수원지라는 점입니다.

목포 시민의 생수는 무안의 달산수원지에서 끌어오듯이 이스라엘 시민의 생수도 갈릴리 호수에서 끌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호수는 하프 모양으로 생긴 바다라고 해서 ‘긴네렛’(민34:11) 바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 북쪽에 게네사렛 평야가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갈릴리 호수를 ‘게네사렛 바다’(막6:53)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갈릴리 지역은 이방 민족의 침입이 잦았습니다.

최초 갈릴리 지역은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아셀과 납달리 지파에게 할당된 땅이었습니다.

그 후에 앗수르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멸망한 뒤 히브리인들을 추방하고 페니키아인들을 이주해 살도록 했습니다.

그 후 유대인들이 독립을 이루고 유대인들이 다시금 정착했지만 로마가 정복한 뒤엔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디베랴 바다’(요21:1)로 불렸습니다.

 

(적용)그만큼 갈릴리 바다, 그 갈릴리 호수도 우여곡절이 많은 곳 아니겠습니까?

그런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수년 동안 고기잡이 삶을 살았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갈릴리 호수에는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의 탯줄이 묻혀 있는 곳이고 혈연과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들에게 주님께서 당신의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관자임을 알게 하셨고 당신을 목자로 따라 나서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하늘의 주관자로서 하늘의 생명고리를 자신들과 연결시켜주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들 그곳 갈릴리 해변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의 고리를 잇고자 했지만 예수님만은 참 생명의 목자로 하늘의 생명고리를 엮어주는 분임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떤 고리를 엮어나가고 있는지 주님께서 돌아보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매끈 발끈 화끈 질끈 따끈, 그런 고리 말고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한 알의 밀알로 죽으셨는데 우리에게 생명의 고리를 잇고자 함이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고리를 이어주셨다면, 우리도 삶 속에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그런 고리를 이어나가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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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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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그 고리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5-36)

 

(원성2)구약성경에서는 또 그렇게 말씀한 바도 있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35:5-7)

 

(깨달음)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늘의 생명고리를 이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린 자에게 먹을 걸 나눌 수 있고 목마른 소자에게 냉수를 줄 수 있고, 옷이 없는 자에게 입던 옷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병들었을 때 돌볼 수 있고 감옥에 갇힌 자에게 찾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내 혈육이든 일터의 동료든 혈연학연지연으로 연결된 고리속에 있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요즘같이 폭설이 내렸다면 동네 앞에 눈을 쓸어 길을 낼 수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수원지는 못 될지라도 누군가 목마른 자에게 생수 한 병 쯤은 건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마른 땅에 샘터가 되고, 빛을 잃고 실어증 걸린 이들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생명의 고리를 이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부르신 현장에 생명의 고리를 잇는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신다는 거죠.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갈릴리 호수 현장에 주님께서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신 것은 목자로서 부르신 것 아니었겠느냐?”

그때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주님을 따라 나선 것은 주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의 주관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않았더냐.”

그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삶의 현장이 갈릴리였지 않더냐?”

그들의 탯줄이 묻혀 있고 혈연과 학연과 지연으로 엮어 있는 그 삶의 현장 말이다.”

그곳에서 하늘의 생명고리를 잇고자 그들을 친히 부르신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지금 관계 맺고 있는 고리들이 어떤 고리들인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갸?”

혈연과 학연과 지연의 고리는 이 땅에 자연스레 맺는 고리지만 그 너머에 탐욕과 죄악의 고리가 도사리고 있다면 진정으로 끊어내야 하지 않겠느냐?”

주님께서 너와 맺은 고리가 하늘의 생명고리이듯이 너도 일터의 현장 속에 있는 동료에게 그런 고리를 잇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나눠주고 힘들어 하는 이에게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위로하고 공감하는 그런 고리 말이다.”

네가 주님의 생명을 잇는 그런 고리로 살 때 하늘의 생명 고리는 더욱 단단하고 축복의 고리도 더욱 넘쳐나지 않겠느냐?”

 

(찬양)갈릴리 호숫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주님은 여인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여인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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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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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지난 주 화요일날 제74회기 전남서지방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지방회가 은혜롭게 잘 끝났고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다른 두 분의 목사님이 저희 교회 차를 탔는데 한 분은 목포 근처의 집으로 또 한 분은 섬으로 들어가는 분이라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려고 했습니다.

한 분은 앞 좌석에 잘 탔는데, 다른 한 분이 뒷좌석에 타려고 문을 여는데 열리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제가 내려서 다시 문을 여는데 잘 열리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조금 세게 열려고 했는데 그만큼 슬라이딩도어 문고리가 끊어졌습니다.

그 수요일 오후에 영흥공업사에 갔는데 부품이 없어서 주문만 해 놓고 목요일 오후에 수리를 했습니다.

 

그때 그 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것은 얼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오래돼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요. 오래되면 교체할 게 많겠네요.”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까?

자동차 슬라이딩도어 문고리도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야 하듯이 나와 주님의 연결고리고 너무 오래되 낡아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지 않습니까?

주님과 나의 생명의 고리가, 은혜의 고리가 너무 낡아 헐거워 있다면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새롭게 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나예2)목요닐 오전에 지방회 몇 몇 목사님들이 독서모임을 갖는데 그날 발제자로 나섰습니다.

그 모임의 회장님이 그날 강의는 ‘저자 직강’이라고 소개를 해 줬습니다.

제가 쓴 〈바울의 일생과 편지〉를 가지고 제가 발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강의가 끝나고 잠깐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어떤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당신이 섬기는 교회에 안수집사님 한 분이 예배 시간에 늦는 분들에게 함부로 무한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목사님이 나서서 지혜롭게 훈계해야 하는데 그 분이 나서서 설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깨달음)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교회에 그런 분이 한 두 분 정도는 있기 마련이죠.

우리 교회는 제가 그렇게 회초리 역할을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런 분들에게 필요한 게 ‘매끈’과 ‘따끈’의 고리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를 대하는 태도가 까칠한 모습이 아니라 매너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말입니다.

매번 늦게 오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따뜻한 사람의 태도 말이죠.

 

(적용)실은 예수님께서도 그런 인격의 고리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식을 할 때 친히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스승이라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분이셨다면 결코 그런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주님은 인격의 끈을 갖고 제자들을 품으신 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보혈이라는 끈으로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분들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내 마음에 차지 않고 맨 날 늦게 오는 분들이 있을지라도 그 안수집사님처럼 지적질만 해 댄다면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듣기 싫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우리가 취할 자세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끈, 섬김의 고리입니다.

 

그렇게 매끈매끈하고 때로는 질끈 눈을 감고 따끈따근하게 다정다감하게 공감하고 이해한다면 주님의 은혜 안에 새롭게 될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랄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낡은 슬라이딩도어 문짝을 새롭게 교체하듯이 주님과 오래된 관계의 끊을 새롭게 엮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안수집사님은 자신이 악역을 맡은 자로 나서지만 매번 그런 소리를 해 댄다면 다들 싫어할 겄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성만찬의 예수님처럼 섬김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주세요.”

교회 안에 다양한 사람을 상대할 때 때로는 매끈매끈하게, 때로는 질끈 눈을 감고, 때로는 따끈따끈하게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살게 해 주세요.”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보혈이라는 끈으로 하나된 이들이니 더욱더 섬김의 끈을 엮어나게 해 주세요.”

그때 성도를 섬기는 그 끈이 주님께서 복을 부어주시는 축복의 끈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찬양)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후렴>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 할수 없는 이 마음을 주님께 맡긴 채로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 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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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식수 30∼40%를 공급하는 수원지이자 많은 고기가 있는 어장입니다.

그곳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주님께서는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의 생명을 잇는 고리로 잇고자 함이요 또 다른 누군가에 그런 고리로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죽은 뜻한 씨앗이 밀알로 땅에 떨어져 싹이 나듯이 주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는 그 모습이 갈릴리의 참 뜻입니다.

그 생명의 고리를 우리에게까지 이어주시고자 갈릴리에 나타나신 것이고,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각자 그 고리를 잇도록 부르셨습니다.

혹여라도 주님과의 그 고리가 낡았다면 새롭게 엮어나가시길 축복합니다.

삶의 현장에 생수를 나누고, 먹을 것과 커피도 나누고, 아픔을 지닌 동료에게 공감하며 산다면 주님께서 생명의 고리처럼 기쁨의 고리 축복의 고리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고리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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