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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고전14:6-19)

by 똑똑이채널 202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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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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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어떤 교회의 성도가 이야기한 간증입니다.

그분이 쌍둥이를 낳았는데 둘째 애가 밤에 잠을 자다가 깨면 밤새도록 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말을 겨우 배우기 시작했는데 더듬거리며 말하는 걸 들어보니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무서운 꿈을 꾸기 때문에 자다가 일어나서 새벽까지 벌벌 떨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것이었죠.

일단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해 봤는데 치료가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아이가 완전히 위축된 상태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어느 날 저녁에 아이가 또 일어나서 막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왜 이런 일이 우리 아이에게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아이의 사정을 아시니 제발 고쳐 주십시오”하고 말이죠.

그러면서 방언으로 기도를 했는데 한 시간쯤 지나니까 조용히 가라앉더니 잠을 잘 자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다시는 밤에 깨어 일어나서 우는 일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그것이 바로 방언의 유익함 아니겠습니까?

혹여라도 그런 일이 우리 주변에 자녀들에게 일어난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방언으로 기도해 보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꿈자리가 사납고 마음에 평안이 없을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그런데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너무 과식하면 몸에 해로운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은사가 방언인데 그것을 자기 우월의식으로 삼게 되면 문제가 되죠.

어느 교회에 집사님이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았는데 세상이 자기 것처럼 너무나도 기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보기에 담임목사님이 방언을 받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에게 방언이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많은 성도들이 봤는데, 과연 그 모습이 교회의 유익을 위한 길이겠습니까?

 

방언도 다른 모든 은사도 실은 질서와 품격이 필요한 법이죠.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혼자 방언으로 소리친다면 그것은 예배의 인격이 없는 것이죠.

다들 찬송하는데 혼자 방언을 한다면 그 또한 품격이 없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죠.

정말로 이성적인 예배자라면 모든 것을 질서있고 품위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배자요 기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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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린도전서 1장 1-9절은 도입부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문안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인사가 담겨 있습니다.

1장 10절부터 6장까지는 고린도교회의 현황문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분열과 다툼에 대해 훈계도 하고 책망도 하고 권면하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7장부터 15장까지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인 답변입니다.

 그 중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에 대한 목회적인 답변이었습니다.

8장과 9장과 10장은 우상에 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11장부터 15장까지는 공적 예배와 관련된 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서 11장은 예배 때 예배포를 쓰는 문제와 성찬식에 관한 질문에 대해 바울이 답변을 해줬습니다.

 

이제 12장부터 14장까지는 은사의 사용에 대한 목회적인 답변을 바울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각자 받은 은사를 가장 큰 것으로 여기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다룬 것이 방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방언이 최고 우월하다는 입장 말이죠.

 

거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공적 예배 시간에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문제였죠.

그런 차원이라면 누가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14장 1-15절까지 방언도 좋지만 예언의 유익한 점을 더 강조해서 밝혀줬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연장선상에서 하는 말인데 6-1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깨달음)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주님의 제자가 된 것이죠.

그런데 본문의 주어가 무엇입니까?

‘내가’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 지식을 헬라말로 하지 않고 만약에 방언으로 했다면 너희들 중에 누가 알아들었겠느냐, 하고 말이죠.

내가 누구보다도 방언을 잘 하는데, 그런 방언으로 너희에게 전했다면, 과연 고린도교회가 세워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관악기는 관악기마다 특징적인 소리가 있습니다.

현악기는 또 현악기 고유의 소리가 있죠.

그런데 내가 관악기인데 그 소리를 안 내고 현악기 소리를 내고자 한다면 그게 피리인지 거문고인지 알 수 있겠냐 하는 것이죠.

생명이 없는 악기도 그처럼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확한 소리를 내는데 어찌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것이죠.

 

2천년 전 나팔은 대부분 악기용이 아니라 전쟁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나팔은 전쟁과 관련해 부는 것이지 일상생활에서는 불 수가 없었죠.

그런데 그 나팔 소리가 진격할 때 부는 소리인지 퇴각할 때 부는 소리인지 분별치 못한다면 어떻게 바르게 대처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해)바울이 왜 그렇게 방언 이야기를 하고 악기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나팔 소리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방언을 말하면서 다투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죠.

그래서 서로 간에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해 대는 것은 실은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허공’이란 헬라어로 ‘아에르’(ἀήρ)인데 ‘공기’(the air)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소리치는 것은 단순한 공기의 진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쓸데 없는 짓이요 시간 낭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통령 탄핵을 비춰봐도 마찬가지죠.

모두가 텔레비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군대가 동원돼 국회를 폐쇄하고 정치인들을 잡아가려는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변호하려는 이들이 일종의 통치행위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공기의 진동에 불과한 소리이지 않겠습니까?

만약 헌법재판소 중 누구라도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는 이가 있다면 우리나라 역사를 후진국으로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말로 이것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과 같은 딴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 즉결심판으로 탄핵소추안을 인용해야 하는 게 마땅한 일이죠.

 

지금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도 꼭 그런 격입니다.

모두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면 이해가 가능한데 서로 잘 났고 서로가 옳다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더 분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말이죠.

그만큼 허공에다 소리치는 것처럼 쓸데 없는 시간 낭비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적용)그래서 바울은 좀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그 다음 구절에 들고 있습니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지만 결코 뜻 없는 소리가 없다고 말이죠.

아이의 울음소리는 똑같아 보여도 배고파서 그러는지 다쳐서 그러는지 똥이 나와서 그러는지 엄마는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만 해대면서 서로가 월등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었죠.

 

그래서 바울은 내가 말을 하는데 남아 알아 듣지 못한다면 상대방에게 내가 야만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로마제국이 지중해를 석권할 때 초기에는 라틴어보다도 헬라어가 세계 공용어였습니다.

그만큼 지중해 세계에서 헬라어를 하는 사람들이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만큼 헬라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어느 사람이든지 간에 야만인이 되었습니다.

 

야만이란 말 자체가 외국인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중심이고 중국 사람들은 변방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격이죠.

그래서 헬라 사람들은 자국의 말과 철학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타인이 방언을 하면 못 알아듣고 서로들 야만취급받는 셈이었죠.

그만큼 언어의 단절이 그런 불상사를 낳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유창한 방언을 하면서 자랑하는 이들은 그렇지 못한 성도들을 야만취급하게 되는 꼴과 같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온당한 모습이겠습니까?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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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본문 12-19절을 통해 왜 방언보다 예언이 중요한지 다시금 일깨워주는데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원해)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마음’은 헬라어로 ‘노우스’(νοῦς)인데 ‘마음’을 칭하지만 ‘이해’(the understanding) ‘이성’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죠.

이성으로 이해해야 사물을 인식하고 또 인격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아무리 방언으로 기도해도 인격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이성의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으로 기도하면서 이성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송하고 이성으로 찬송하라고 바울이 권면하는 것이죠.

영적으로 기도한만큼 내 이성의 성찰을 통해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라는 뜻입니다.

 

(깨달음)사실 바울도 누구보다도 방언으로 많이 기도했고 또 삼층천의 세계를 보고 온 사람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빛으로 만난 이후에 40일간 아라비아 광야를 거쳐 다메섹에서 3년을 보낸 후에 예루살렘에 왔죠.

그런데 누구 하나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유대교 사람들이 변절자로 여겨 죽이려고 할 때 고향 다소로 낙향하죠.

그때부터 7년간 칩거하면서 지낼 때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때 방언을 했고 신비로운 천상의 세계를 경험했죠.

 

그런데 그때는 신앙의 초기단계라 할 수 있죠.

만약 그 후에 안디옥교회의 공동담임목회라로 섬길때도 그런 방언만 말하고 공동기도때도 방언으로 한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방인들이 안디옥교회 들어와서 전혀 알아듣지 못한 방언을 해 댈 때 누가 그 교회에 남아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만큼 바울은 신앙의 초기에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영적인 긴밀함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했지만 공동체를 섬기면서는 오히려 예언 곧 성경말씀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적용)그래서 바울은 일만 마디 방언보다도 남을 가르치기 위해 하는 다섯 마디 예언의 말씀이 훨씬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고린도교회 성도 중에 지금 실의와 낙심에 빠져 있는 성도가 있는데 그 사람 앞에서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해 댄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전혀 위로나 새 힘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하지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권면해서 그가 알아듣고 소망을 품게 된다면 얼마나 더 유익된 일이겠습니까?

 

그만큼 남아 알아듣지 못하는 유창한 방언은 오히려 분열과 대립만 낳지만 깨달은 다섯마디 말로 위로하고 권면한다면 그 사람에게 훨씬 큰 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방언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골방에서 깊이 기도할 때 하고, 공동체의 예배나 대표기도 때는 말씀으로 기도하여 모두에게 유익이 되게 하는 게 백배 낫다는 뜻이죠.

방언으로 기도하면 결코 그 사람의 이성이나 깨달음에 역사할 수 없지만 말씀으로 하면 그 사람에게 성령님이 감동감화를 주셔서 새롭게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말로 제가 설교할 때 주구장창 방언만 해 댄다면 누가 알아듣고 누가 깨닫고 그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습니까?

하지만 시대와 상황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사람에게 이해가 되고 그 사람에게 성령님이 역사하면 능히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바울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성)로마서 12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원해)여기에 ‘영적’이란 말이 헬라어로 ‘로기코스’(λογικός)인데 그게 이성적 혹은 논리적(reason or logic)이란 뜻입니다.

무엇이 영적인 예배라는 것입니까?

우리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죠.

내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삶 속에 인격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 그것이 이성적인 예배요 영적인 예배라는 것입니다.

 

이방 신전에서 하듯이 맹목적으로 괴성을 지르듯 소리치고 방언을 해 대는 예배라면 어찌 이성이 작용할 수 있고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겠냐는 뜻입니다.

로고스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신 만큼 그 이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변화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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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개인의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예언의 말씀으로 서로가 위로하고 권면하여 덕을 세우는 은혜 안에 거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방언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또 아픈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너무나도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그 방언의 은사로 자기 우월감에 도취된 채 담임목사를 위해 방언기도가 임도록 기도한다면 공동예빼 찬양하는데 혼자 방언을 한다면 온전한 이성을 다해 예배하는 모습이요 참으로 질서 있는 모습이겠느냐?”

바울도 그래서 방언은 개인의 유익함을 위한 기도요 예언은 맡은 말씀으로 상대방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유익케 하는 것임을 밝힌 것 아니겠느냐?”

아무리 좋은 은사라도 너무 과하면 과유불급처럼 아니한 만 못하는 것이니 모든 것을 질서있게 해야 하고 상대방의 덕을 위해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받은 은사로 상대방을 짓누르거나 위축시켜 이방인 취급한다면 그 사람이 상처받는 일이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은 상대의 유익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 아니겠느냐?”

바울도 그래서 남아 알아듣지 못한 일만 마디 방언보다 한 영혼이라도 위로하고 바로 세울 수 있는 예언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는 게 훨씬 유익된 일임을 말한 것 아니겠느냐?”

아무쪼록 너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그 은사를 상대를 위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질서있고 겸손하게 사용하는 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질서와 인격의 하나님이듯이 아무리 유창한 방언이 할지라도 담임목사를 흔들거나 공적 예배의 찬양 때 홀로 방언하는 것은 예배를 어지럽히는 모습이지 않겠느냐?”

네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과 더욱 깊어지겠지만 그때 너의 이성이 깨닫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더욱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어떤 은사든지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그 말씀으로 상대방을 유익하게 한다면 그것이 제일로 존중받을 일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찬양)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억눌린 자 갇힌 자 자유함이 없는 자 피난처가 되시네 성령님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 자유가 있다네 진리의 영 되신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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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신앙 경륜과 성품에 따라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요 사랑을 따라 갖가지 은사를 사용하되 상대방을 유익하게 하고 공동체의 덕을 위해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사 중에 가장 많이 받는 게 방언의 은사 아니겠습니까?

내가 아프거나 아이가 아플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주시고 또 하나님과 깊이 있는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방언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특권의식이나 우월의식에 빠져 목회자를 흔들어대려 하거나 예배나 찬양때 홀로 방언으로 한다면 그야말로 뜻없는 허공의 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예배자로서 말씀으로 자기 삶을 돌아보며 인격적인 변화를 꾀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시고 더 깊은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그런 은총이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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