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14:20-25)

by 똑똑이채널 2025. 1. 1.
728x90
반응형
SMALL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hwp
0.15MB

 

(설교열기)(예화)어떤 시골에서 부모님 인도로 신앙생활 하다가 결혼해 분가해서 도심의 만안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헌금 드리는 것에 시험이 들기도 하고 유아실에서 싸우는 아이들로 인해 교회를 그만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부였죠.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그 부부를 보는 담임목사님은 불안해서 수시로 심방가서 어루만져야 출석하는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가다가 차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그로 인해 아이가 조금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담임목사님은 그 동안에도 힘겹게 예배드렸는데 이제는 아주 낙심할 것 같아서 너무나도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들어가 그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그 부모를 위로해줬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쳤는데도 부부가 아무 말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아주 낙심했구나, 하고 말이죠.

 

그렇게 참담한 마음으로 병실을 나오는데 그 아이 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오면서 목사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 동안 우리가 너무도 엉터리로 살아서 하나님이 좀 깨달으라고 하시면서 이런 사고를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깨달음)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목사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생각했겠죠.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던 그 부두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장성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부가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버리고 장성한 신앙인이 된 것은 그 목사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된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계셔서 그 부부를 조금씩 변화시켰고 그 사고를 통해 더욱 큰 은혜의 변화를 몰고 오게 하신 것입니다.

 

(적용)2024년 한 해를 보내고 2025년 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 자신들도 작년보다 올 해 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고린도전서 11∼14장까지는 공적 예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목회적 답변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는 여자들이 쓰는 예배포와 성찬예식에 대한 답변이 나와 있었죠.

12∼14장까지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에서는 방언에 관해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었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을 통해서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은사는 방언 한가지가 있는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은사가 있는데 그것을 주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고 말이죠.

그런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개인의 유익도 있지만 교회 공동체를 유익이 훨씬 큰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모든 은사에 앞서는 사랑에 대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방언은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고 말이죠.

사랑이 없는 은사와 능력과 지식과 구제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nothing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모든 은사의 토대는 사랑을 기반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고린도교회에 가장 문제가 컸던 방언에 대해서 심도 있게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지난 시간에 1-19절까지 살펴봤죠.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방언의 은사를 받은 이들이 공중예배의 기도 시간에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통역이 없이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면 과연 다른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겠냐고 했죠.

그러니 그런 일만 마디 방언보다도 차라리 다섯 마디 가르치는 말이 훨씬 더 유익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방언보다도 실은 예언의 은사, 다시 말해 맡은 말씀으로 시대와 상황을 해석해서 성도를 바르게 이끌어주는 예언의 은사가 훨씬 더 유익하지 않겠냐고 한 것이었죠.

 

(전개)그래서 19절이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깨달음)왜 일만 마디 방언이 못하다는 것입니까?

일만 마디 방언은 남이 알아 듣지도 못하고 의사소통도 못하기 때문이죠.

공적예배 시간에 기도를 하는데 방언으로 한다면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뿐이죠.

자기 과시의 차원이죠.

그것으로는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그것보다도 깨닫는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게 훨씬 유익하지 않겠냐고 한 것입니다.

그런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일깨우고 상대방의 심령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본문)오늘 본문은 그 연장선상에서 일깨워주는 말씀인데 본문 2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원해)본문의 ‘지혜’는 헬라어로 ‘프흐렌’(φρήν)인데 ‘생각’ ‘마음’을 가키리는 말입니다.

어린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생각과 마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악에게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도 장성한 사람처럼 함부로 내뱉지 말고 상대방의 유익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마음을 품어보라는 뜻이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두를 유익하기 위해 주신 은사로 자기 자신을 과시한다면 그것은 지혜로워야 할 때 지혜롭지 못한 어린 아이와 똑같다는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 모두를 유익하게 하도록 주신 은사를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 자체가 악이 된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지닌 마음이 종의 마음이어야 한데 그 은사로 다른 사람을 신하처럼 삼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적용)우리가 정말로 범하기 쉬운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위에 서 있는 것이죠.

지금 우리나라가 계엄령으로 온통 복잡하고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국가 권력은 국민에게서 지도자에게 위임된 권력입니다.

그 권력은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국민이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쓴다면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사람이고 그 자체가 악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런 원리로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 지혜롭고 성숙한 어른의 마음을 지니며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상대방의 유익이 되고 교회 공동체의 덕이 되도록 말이죠.

 

(본문2)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성숙한 마음과 생각으로 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21절부터 설명을 해 줍니다.

본문 21-23절까지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깨달음)여기에 ‘율법’이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21절을 통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너희들과 다른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너희들을 지배할 것이다, 하고 말했는데 그들이 앗수르죠.

앗수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면서 말하지만 그 나라 말을 모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죠.

고린도교회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것과 똑같다는 뜻입니다

 

그런 방언은 소통은 없고 오히려 균열만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아무리 유창한 방언을 한다고 할지라도 믿지 않는 자들이 주님께 돌아오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에 온 교회에 훨씬 더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온 교회 성도들이 남이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을 해 댄다면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미쳤다고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해)여기서 ‘미쳤다’는 말은 헬라어로 ‘마이노마이’(μαίνομαι)인데 ‘미쳐가다’(to be mad) ‘발광하다’(to rave)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는데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듣기에 발광한다고 다들 여기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적용)그래서 바울은 24절에서 예언을 한다면 믿지 않는 자들이나 무식한 사람들조차 그 말씀 앞에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앞에 자신의 숨은 죄악이 드러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지 않겠냐 하는 것입니다.

 

왜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고 그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서 새롭게 하기 때문이죠.

그것은 2천년 전에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그때와 동일한 역사를 일으키는 분이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누구든 사람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시대와 상황을 해석하여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사람에게 적용하여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가 거꾸러지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욱 경외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변화된 것도 방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줄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것은 마찬가지죠.

믿는 자든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든 그 누구든지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에 역사하면 그 심령은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바울은 그와 같은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개인을 드러내는 방언만 강조하는 사람은 그야마롤 어린 아이에 불과할 뿐이고 다른 사람을 세우고 고치고 회복케 하는 예언은 타인과 공동체를 유익케 하는 장성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끼치도록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어린 아이의 신앙심을 버리고 장성한 분량의 신앙인으로 성숙하는 은혜를 부어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시골에서 올라온 부부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무슨 일만 생기면 시험을 받아 넘어지지 않았더냐

하지만 그런 부부가 아이의 교통 사고 앞에 오히려 성숙한 믿음을 보인 것은 방언기도 때문이 아니라 말씀 앞에 조금씩 변화된 것 아니더냐?”

지금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수준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장성한 지혜를 강조한 것 아니더냐?”

교회 공동체 예배의 기도 때 방언으로 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유치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임을 자처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지만 장성한 지혜의 신앙인은 타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예언의 말씀을 하는 이들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하는 것처럼 얼마든지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 기도가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이끌어주지 않겠느냐?”

하지만 공동체의 대표기도나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는 낯선 사람조차도 알아듣지 못한 채 미친 사람취급하지 않도록 타인이 알아듣는 기도가 좋지 않겠느냐?”

그 기도를 통해 누군가 마음에 깨달음이 일어나 회개하고 어긋난 길을 가던 사람이 바른 길로 들어선다면 그것이 공동체의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그또한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바도 예언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기도요 그런 기도를 통해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인도 점점 성숙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너의 하나님 여호와는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너와 타인과 공동체가 바로 서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된다면 더 유익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찬양)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인도 점점 성숙해지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2024년보다 2025년 한 해 더욱 성숙한 신앙인 되길 바라실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나를 드러내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했다면 올 해는 타인을 세우고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 초보 신앙부부도 한 해 한 해 말씀을 통해 성숙해지듯이, 저와 여러분들도 올 한 해 타인의 유익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며 더욱더 말씀과 격려로 사람을 세우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