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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고린도전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린도와 사도 바울의 관계는 2차 선교여행 때 맺어졌죠. 이미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6-18장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그때 바울은 아시아 지역 곧 에베소로 가려고 했었죠. 실라를 데리고 1차 선교여행지였던 수리아 안디옥, 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 더베, 루스드라로 향했고, 루스드라에서 젊은 제자 디모데를 만나 할례를 행한 후에 선교팀에 합류케 했죠. 이후 이고니온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왼쪽 ‘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비두니아로 갈 계획이었죠.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무시아의 서쪽 항구인 ‘드로아’에 갔을 때 밤에 환상을 보여주셨죠. 마게도냐 사람들 곧 유럽 사람들이 나타나 바울에게 도와달라고 말이죠. 바울은 그것이 성령님의 지시인줄 알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갔죠. 물론 그 전에 선교팀에 합류한 사람이 있었죠. 의원 누가였죠. 그는 버가모의 의과대학을 나와 무시아 지역에서 의원으로 일하고 있다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바울의 주치의로 선교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 곧 실라와 디모데와 의사 누가가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유럽 대륙의 첫 관문인 ‘마게도냐’의 ‘네압볼리’ 지역인 ‘빌립보’에 당도했죠. 그곳 빌립보 성에서 자주색 옷감 장사, 곧 자주색 포목 사장인 ‘루디아’라는 여사장에게 복음을 전해 그녀의 온 집안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죠. 이후 바울은 점치는 여종의 귀신을 쫓아낸 일로 감옥에 붙잡히게 되는데, 그때 바울과 실라는 옥문에 열리는 사건을 겪는데 바울은 빠져나가지 않고 그 간수장에게 복음을 전했고, 온 집안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죠.
이후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빠져나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마게도냐의 수도인 ‘데살로니가’에 당도했죠.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회당에 들어가 세 번의 안식일에 걸쳐 복음을 전했는데,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을 못마땅히 여겼죠. 바울 일행이 머물고 있는 야손의 집에 쳐들어갔고, 야손과 몇몇 성도들을 끌고 관리들에게 넘기는 일이 벌어졌죠.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빠져나와 서남쪽으로 96km 떨어진 베뢰아로 가죠.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좇아와 유대인들을 선동하면서 성읍을 소란케 한 일이 발생했죠.
그 일로 바울 일행은 더 이상 머물 수 없었고,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실라와 디모데를 남겨 놓은 채 홀로 ‘아덴’ 곧 아테네로 배를 타고 떠나오게 되었죠, 서양 민주주의와 철학의 발상지인 아테네요,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이기도 한 아테네였지만 바울에게는 한낱 우상의 도시일 뿐이었죠. 바울은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와 논쟁을 벌이며 복음을 전했고, 이후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더 차분에게 더 논리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떠나온 곳이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절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바울은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80km 떨어진 고린도 시로 옮겨온 것이죠. 고린도는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좁고 잘록한 땅의 서쪽 끝부분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런데 고린도는 남북과 동서를 이어주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라 막대한 부를 누렸고, 거기에 걸맞은 향락과 사치가 만연한 도시였죠. 더욱이 해발 575m에 ‘아크로폴리스’ 성채가 세워져 있는데, 그 중심에 ‘아프로디테’ 곧 비너스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서 섬기는 여사제의 수가 1천여명에 달했는데, 낮에는 신전에서 봉사하고 밤에는 고린도 시내려 내려와 매음을 했죠. 그만큼 고린도는 잡신과 우상과 음행과 타락과 사치가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바울 당시의 고린도는 로마의 속주 중에서 ‘아가야’라는 로마 행정구역의 수도였고, 그 지역 총독의 거주지였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는 아테네보다 더 큰 로마 제국의 네 번째 큰 도시로서 사실상 그리스의 중심지였죠. 당시 인구는 약 60만 명을 헤아리는 거대한 상업중심의 도시였죠. 바울은 그런 고린도에 2차 전도여행 기간 중에 들어가서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교회를 세웠던 것이죠. 특별히 사도행전 18장 7절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태동은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가정교회로부터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린도전서는 언제 쓴 것일까요? 이 편지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기간 중에 에베소에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그곳 에베소에서 3개월간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죠. 그런데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훼방꾼 노릇을 했죠. 그래서 바울은 주님의 제자들을 따로 세워 ‘티란노스’라는 사람의 ‘스콜레’를 빌려 점심시간에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했죠. 그것도 무려 2년 넘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무렵에 고린도교회의 좋지 못한 소식들을 바울이 듣게 된 것입니다. 이른바 고린도교회 내의 음행의 문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하는 파벌의 문제, 또 네가 받은 은사가 크냐 내가 받은 은사가 크냐 하는 은사에 대한 어린 아이의 수준을 보이고 있는 문제들, 그리고 비너스 신전 앞에 드려진 음식을 시장에 내다파는데 그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는냐 하는 제사 음식에 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곳 에베소에서 네 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두 개의 편지 밖에 남아 있지 않죠.
바울은 첫 번째 편지를 통해 고린도교회를 직접 방문할 계획을 알립니다(고후1:15-17).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편지는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죠. 그 뒤 바울은 젊지만 온순한 디모데를 파송해서(고전4:17)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통의 편지를 곧바로 써서 보내는데, 그 편지가 오늘날의 고린도전서가 된 것입니다. 물론 그 편지도, 그리고 디모데도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을 알게 된 바울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정리하고자 하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전격적으로 방문 하는데(고후2:1-2), 문제는 바울이 눈물로 호소를 하고 권면을 해도 성도들은 외면해 버린다는 것이죠. 그러자 어떻겠습니까? 바울은 괴로운 심정으로 에베소에 돌아옵니다. 그래도 다시금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 번째 편지를 쓰죠. 그 편지를 디도 편으로 발송(고후2:3-5)하는데, 그것 역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고 강단있는 성격의 소유자인 디도가 고린도교회에 가서 그 문제를 잘 매듭을 짓고 돌아오는 것이죠.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이 어떻겠습니까? 너무도 기쁜 나머지 네 번째 편지를 쓰게 되죠. 그 편지가 바로 오늘날의 고린도후서가 된 것이죠. 그 편지를 보낸 바울은 정말로 교회의 문제가 잘 매듭되었는지 여부를 확인코자 그리고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다시금 고린도 교회를 직접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3개월을 머물면서(행20:1-3), 고린도교회도 굳게 세웠고, 동시에 로마서까지 그곳에서 써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장 1-9절은 인사말에 해당하고, 1장 10절에서 6장 20절까지는 교회의 분란의 문제들에 대해서, 7장1절에서 16장 12절까지는 결혼과 제사음식과 경배와 주님의 만찬과 부활에 관한 바울의 견해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 16장 13-24절까지는 권고의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고린도전서의 첫 부분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잠시 보시기 바랍니다. 1장 1-3절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그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단순히 ‘교회’라고 부른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그 거대한 상업도시 속에 이 편지를 받는 ‘유스도의 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조그마한 집입니다. 고린도의 성벽 안쪽의 도시 둘레만해도 10km에 달합니다. 그 거대한 도시 속에 그들이 앉아 있는 공간은 눈에 띄지도 않는 공간이죠. 그런데 바울은 그곳을 향해 하나님의 교회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도시나 국가보다도 더 크신 분이기 때문이죠. 우리의 믿음도 바로 그런 마음의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그 크신 하나님,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세계를 향해 떠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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