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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유대인들은 주전 1세기부터 13살이 되면 ‘바 미츠바’(בר מצוה)라는 이름으로 성인식을 거행합니다.
‘바’는 히브리어로 ‘아들’을 뜻하고 ‘미츠바’는 계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계명을 지켰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종교적인 책임과 의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때부터 결혼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10세가 되면 성인으로 여깁니다.
우리나라는 성인이 되면 보통 꽃다발을 전해주고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면서 축하를 해주는 것이 다죠.
그런데 ‘바 미츠바’라는 성인식을 하는 유대인들은 사뭇 다릅니다.
성인식의 주인공이 된 유대인들은 그날 세 가지 선물을 받습니다.
성경 곧 모세오경의 ‘토라’가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시계’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축의금’입니다.
성인식의 주인공에게 토라 곧 성경을 주는 것은 말씀의 지침에 따라 모든 유대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라는 뜻이죠.
시계는 약속을 잘 지키고 시간을 소중히 아껴 쓰라는 의미로 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주는 ‘축의금’은 신분에 따라 액수가 차이나겠지만 3∼4천만원이 들어온다고 하죠.
그 돈은 부모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성인이 된 그 자녀의 통장에 직접 넣어 그 자녀가 직접 관리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 큰 돈을 성인식 때 받게 되면 그 자녀들은 부모님의 지시를 받지 않고 친구들과 의논을 해서 분산투자를 한다고 하죠.
경제가 활황기 때에는 주식의 비중을 높여 투자하고 불경기 때에는 채권 비중을 높여서 투자하는데 그를 위해 경제공부를 많이 한다고 하죠.
그래서 대학에 들어갈 때 즈음엔 취직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불린 돈으로 창업을 할 것인지 선택한다고 하죠.
유대인의 창업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깨달음)그런데 성인이 된 유대의 자녀들에게 토라와 시계와 축의금만 주는 걸로 끝낸다면 하나의 행사로 그칠 수 있겠죠.
그날 더욱 중요한 의미가 담긴 의식을 행하는데 바로 ‘테필린’을 이마에 붙이고 손목에 매게 하는 것입니다.
‘테필린’은 ‘기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인데 손과 미간과 관련된 성경말씀(출13:1-10,11-16,신6:4-9,11:13-21)이 기록된 양피지를 사각형 모양의 작은 가죽 상자에 담는 걸 말합니다.
머리에 줄로 묶는 테필린은 ‘쉘 로세’라 부르고 손목에 감는 테필린은 ‘쉘 야드’라고 합니다.
손목에 감는 테필린은 성경말씀이 하나 들어가 있어서 방이 하나이고 머리에 감는 테필린은 성경말씀을 4개 넣는 방으로 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테필린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할 때 착용하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3시에 기도하는데 그때마다 테필린을 착용하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테필린 기도의 습관을 성인식을 행하는 그때부터 죽을때까지 계속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붙이고 손목에 매도록 해서 말씀의 사람이 되고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유대인다운 유대인의 모습이요 유대인으로서 모든 종교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성인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적용)어떻습니까?
우리의 성인식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성인식과는 달리 영적인 성인식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부모님의 손에 붙잡혀 주님 앞에 나올 수도 있고 친구의 손길에 이끌려 예배당에 나올 수 있겠죠.
그러나 예배당에 나와 앉아 있는다고 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간주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는 알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체험하게 될 때 그때부터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죠.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 창조의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세례를 받고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죠.
그것은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언약식을 맺을 때와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백성을 애굽에서 견져내주셨습니다.
그 후에 홍해를 건너고 신 광야와 르비딤을 거쳐 시내광야 시내산에 당도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누군가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분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분이고 그 분이 홍해를 가르신 분이고 그 분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분이요 그 분이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해주시는 분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 백성들 개개인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창조의 말씀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시내산에 당도해서 언약식을 체결하는데 짐승을 잡아 그 피의 절반은 하나님의 제단에 뿌리고 절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뿌리죠.
그러면서 나는 너희들이 아버지가 되고 너희들은 나의 자녀가 되자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쌍방간에 언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답게 생명의 말씀이요 창조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세례의식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성인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성인식을 하는 자녀들처럼 우리도 말씀을 이마에 붙이고 손목에 매는 말씀의 사람이 되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말씀이라면 그 말씀대로 살 때 내게 생명의 길이 보이고 내게 창의성이 발동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어둠에서 빛된 길을 걸을 수 있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대체불가한 창조력을 발휘하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신명기는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1.5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를 향해 시내산에서 받은 레위기의 율법서를 재해석하면서 설교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모세가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 분의 율례와 법도를 잘 지켜 너희와 너희 후손이 행복하게 살라고 말이죠.
만약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동성애와 같은 문화나 우상을 섬기는 종교에 빠져든다면 하나님께는 너희를 저주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유혹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산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서 세세토록 너희가 복을 누리며 살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총 34장으로 구성된 이 신명기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4장은 지나온 광야 40년의 삶을 회고하는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5-26장은 율법을 재해석하면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7-33장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받게 될 생사화복의 말씀들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34장은 모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신명기를 통해 모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지 말라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신명기에 16번 이상(4:15-40, 5:7, 7:16-26, 9:12-17, 12:1-3, 12:29-32, 13:1-10, 16:21-22, 17:1-7, 18:9-14, 20:18, 27:15, 29:14-29, 30:17-18, 31:14-18, 32:16-17) 나온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처음 본문을 대할 때 모세가 강조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쉐마 이스라엘’(שָׁמַע)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야 그 말씀대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에 ‘들으라’하고 그 백성들을 향해 선포한 것이었죠.
그러면서 모세는 왜 ‘쉐마 이스라엘’ 해야 하는지를 선포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다’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유일한’이란 히브리어 ‘에하드’(אֶחָד)는 우리말로 ‘하나’ 또 ‘첫 번째’인데 창조주 하나님께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했죠.
그런데도 그 단어를 쓴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표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역개정판에 ‘유일한 하나님’ 다시 말해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아주 좋은 표현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분이고 그 하나님만이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는 물론이고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해주신 분이기 때문이죠.
그 하나님만이 고통의 땅에서 건져내주시는 분이요 그 하나님만이 죽음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요 그 하나님만이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의 해결자라는 뜻입니다.
만약 그 하나님 외에 달리 구원의 길가 생명의 길과 복의 길이 있다면 애굽의 만가지 신을 섬기도록 하셨겠죠.
만약 그 하나님 외에 새로운 창조력의 길이 있다면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와 우상종교를 숭배하도록 하셨겠죠.
하지만 인간을 구원하시고 이 땅에 복을 주시는 분은 유직 유일무이하신 하나님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는 것을 모세가 선포한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 곧 지난 주에 살펴본 말씀은 그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분의 말씀을 자녀들의 마음에 담고 가르치라는 것 말이죠.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힘들때나 기쁠 때나, 기도 응답을 받을 때나 받지 못할 때나, 그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이죠.
‘가르치다’는 히브리어 ‘샤난’(שָׁנַן)은 ‘날카롭게 하다’(to sharpen) ‘자극을 주다’(whet)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얼마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살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녹슬고 무뎌지지 않겠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날카롭게 새기도로 하고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극을 줘야 그 말씀을 지키며 복을 누릴 수 있지 않겠냐 하는 것이죠.
(깨달음)어떻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쉐마’하면서 집중하여 듣고 계십니까?
그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구원의 주님임을, 그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한 생명과 복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계십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에 날카롭게 새기며 녹슬지 않도록 자극을 받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쉐마’하면서 집중하여 듣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직 구원은 유일무이하신 하나님께만 있기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길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창조력의 말씀이기에 그 분의 말씀으로 우리 심령을 날카롭게 새기며 녹슬지 않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본문)오늘 읽은 본문 8-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원해)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도록 하고 ‘기호’를 삼도록 하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도록 하라는 명령입니다.
8절 말씀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직역하면 그런 의미가 됩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묶어 기호로 삼고 눈 사이에 묶어 상징으로 삼아라”
우리말 ‘미간’은 히브리어로 ‘베인 아인’(בֵּין עַיִן)으로 ‘눈썹과 눈썹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마’를 뜻하는 것이고 더 깊은 의미로는 ‘머리’를 가리키는 것이죠.
(깨달음)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여 기호와 상징으로 삼으라는 명령은 과연 무슨 뜻이겠습니까?
5-7절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내적인 순종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8-9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도록 하는 외적인 노력과 의지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손목’과 ‘미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기관입니다.
‘손’은 신체적 노동과 관련이 돼 있습니다.
‘미간’은 ‘머리’를 뜻하는 곳으로 지적인 활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손이 보이는 활동을 말한다면 머리는 보이지 않는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새겨야 하고 머리에 새긴 말씀을 손과 발로 순종하며 살라는 뜻이죠.
(원성)하나님 말씀을 신체 부위에 ‘매라’는 하는 표현은 출애굽기와 잠언서에도 등장합니다.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출13:9)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잠3:3)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6:21)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잠7:3)
(깨달음)출애굽기와 잠언의 말씀들은 문자적으로 매고 다니라는 것보다는 선생의 가르침을 제자가 따라야 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체 부위에 문신을 하거나 이마에 특별한 표시를 새긴 띠를 부착하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렇기에 이마에 띠를 부착하는 것은 자신이 섬기는 신을 항상 기억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장들도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긴 금장식의 관을 쓰고 다녔습니다(출28:36-38).
(적용)바로 이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기 위해 오늘날 유대인들은 성인식 때 테필린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말씀이 담긴 가죽 상자를 머리와 손목에 매고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말이죠.
그 만큼 너희들이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제는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의식적으로 자립인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를 위해 토라도 주고 시계도 주고 축의금도 주지만 그 모든 토대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그 말씀을 너희 머리에 붙이라는 것은 그 말씀으로 너희들의 인생 지침을 삼도록 하라는 뜻이죠.
그 말씀을 너희 손목에 매도록 하라는 것은 그 말씀으로 너희들의 삶에 손과 발이 되도록 순종하라는 뜻이죠.
그러면 너희 인생에 참된 길을 보이고, 너희 인생이 빛이 되게 할 것이고, 너희들을 살리는 말씀이 될 것이란 뜻입니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삼하7:2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19:7)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119:25)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50)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말씀이요 내 영혼을 소성케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지혜를 주시고 어둔 인생에 등불이자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좇아 살면 고난 중에서도 위로를 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이마와 손목에 매어 참된 성인으로 복을 누리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유대인들은 13살 성인식 때 토라를 주고 시계를 주고 4천만원 가량의 축의금을 주는데 얼마나 지혜로운 모습이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성인식이 행사로 끝나지 않고 평생의 의식이 되도록 이마와 손목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이며 기도하는 테필린을 행하지 않더냐?”
“영적인 자립인 의식의 자립인 경제적인 자립인이 되는 길은 그 무엇보다도 말씀을 근간으로 삼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지 않더냐?”
“지금도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할 때 이마와 손목에 테필린을 묶고 기도하면서 말씀으로 자신들의 삶의 조명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주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주님의 자녀로 살겠다고 세례를 받을 때 너도 영적인 성인식이 필요한 것 아니었더냐?”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다는 언약식을 체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 않았더냐?”
“성인식을 행하는 유대인들이 말씀을 이마와 손목에 붙이고 매듯이 너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 말씀을 푯대 삼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씀이 너에게 생명의 말씀이요 그 말씀이 너에게 창의력을 주는 말씀이요 그 말씀이 너의 영혼을 소성케 하는 말씀이니 말이다.”
“네가 유일무이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손과 발로 순종할 때 어찌 축복의 통로로 너를 사용하지 않겠느냐?”
(찬양)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발췌)어떤 부자 집 처녀가 애인을 인사시키려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처녀의 부친과 청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장래 계획은 뭔가?”
“예, 저는 성경학자가 되려고 합니다.”
“좋지, 존경받고. 하지만 내 딸을 좋은 환경에서 살도록 할 수 있겠나?”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결혼반지는 어떻게 마련할건가?”
“제 연구에 온 힘을 바치다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애들은 어떻게 먹여 살릴 건가?”
“그것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청년이 돌아간 뒤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그 청년 어떤 것 같아요?”
그러자 남편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업도 없고, 계획도 없어. 한 가지 더 알아낸 거라면... 저 놈이 나를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는 거야.”
(깨달음)우리도 집을 보고 돈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생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고 믿는 것이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와 손목에 매면서 말씀을 좇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집도 돈도 주시는 축복의 통로를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예화)오스트리아 출신의 하이든은 <천지창조>와 같은 오라토리오 <종교적 아극>를 발표한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언젠가 그의 교회음악이 어쩌면 그렇게 감동적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면 풍성한 기쁨으로 인해 곡조들이 춤추듯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나는 펜을 움직여 용서받은 기쁨과 감사하는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음악을 작곡합니다”
(깨달음)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와 손목에 매듯이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길 때,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영감을 불어넣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에 뭔가 꽉 막혀 있을 때, 앞길이 답답하고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을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와 손목에 다시금 매고 붙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새 길을 열어주시고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그 청년이 성경학자가 된다고 할 때 장인은 사위와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집이 생기는 것도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오늘 저희에게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이든이 천지창조와 같은 놀라운 곡을 쓰게 된 것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와 손목에 붙이고 매듯이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머리와 손목에 말씀을 붙이고 매듯이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그때 집을 주시고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고 심지 않은 과실을 먹게 하시는 복된 길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게 준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웃에게 전하여라
그러면 네가 짓지 않은 큰 집을 주리라 네가 심지 않은 과실을 먹게 하리라
그러나 한 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들이 13살 때 성인식을 할 때 토라를 주고 시계를 주고 축의금을 주는 것은 자립인이 되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이 진정한 자립인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를 위해 말씀이 담긴 가죽 상자를 이마와 손목에 붙이고 매면서 기도하는 습관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영적인 자립으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이 통로로 삼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소성케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적인 영감과 창의력을 불어넣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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