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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존 웨슬레(John Wesley)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존 웨슬레가 주님과 교통하며 기도하다가 깊이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서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런 복음 운동인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깜짝 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인들이 다 천국에 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는 한참을 뒤져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은 대단한 실수였나 보군요. 그러면 천주교인들이 다 온 모양인데 그들은 얼마나 들어와 있습니까?”
이번에도 천사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그러자 웨슬레는 천사의 대답에 큰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입니까?”
천사는 방긋이 웃으면서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으로 성령으로 인친 그리스도인들만이 와 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까?
천국은 웨슬리가 주창한 감리교의 교리나 칼빈이 주창한 장로교의 교리나 가톨릭의 교리로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신학사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녀들이 들어가는 곳이란 뜻입니다.
아무리 신학사상이 뛰어나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다면 무신론적인 사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학사상이 허술해보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중심에 두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구원의 길을 제시한 것 아니겠습니까?
(예화2)2000년 10월부터 KBS에서 도올 김용옥의 논어 강의가 진행됐습니다.
동양고전 중의 하나가 논어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방송을 시청했습니다.
도올 김용옥은 한국신학대학을 나온 분이기도 하고 모든 종교를 섭렵한 분이고 지식이 엄청난 분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한 번은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해서 대담식으로 그 시간을 진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 중의 한 사람인 추기경을 내세워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하고자 했던 것이었죠.
그때 논어를 쓴 공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도올이 믿는다는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추기경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도 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신이 인격신(人格神)이라는 점에서는 회의적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도올이 김수환 추기경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숨의 의도가 깔린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예전에 한신대를 다닐 정도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인격신에 대해서 회의적이라는 말은 유일하신 하나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이고, 신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신성만 있을 뿐이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때 김수환 추기경이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추기경은 기독교에서 원하는 인간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공자의 천인합일사상 다시 말해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은 기독교와 연결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하나가 되는 길은 기독교에서 사랑이라고 했고 유교에서는 인으로 보기 때문에 서로 통한다고 대답을 했죠.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런 말을 추기경이 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 주신다”
(깨달음)이 부분을 두고 개신교 내에서 극명하게 갈린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인간의 의로운 행위만 다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냐?”
“그런 말은 종교다원주의에 해당되는 것이니 않느냐?”
또 다른 개신교인들은 그렇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추기경이 대답한 것은 신학자 칼 라너가 말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의 사상이 깔린 말이다”하고 말이죠.
표면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삶의 내용으로 예수를 믿는 이들은 누구든지 익명의 그리스도인 될 수 있고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적용)여러분들은 어떤 관점을 지니시겠습니까?
저는 김수환 추기경을 종교다원주의자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상을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신학자의 시선으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중심에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신학적인 지식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말씀하신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신명기는 모세가 자기 죽음을 앞두고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입니다.
그만큼 신명기는 레위기의 율법서를 바탕으로 모세가 상세하게 해석하면서 되풀이한 설교내용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40년을 통과해 지금 요단강 동편 땅에 도착해 설교한 것이죠.
광야 40년간 출애굽 1세대는 죽고 지금 1.5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를 향해 선포한 말씀입니다.
무엇을 강조하고자 레위기의 율법서를 토대로 모세가 힘주어서 설교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 분의 율례와 법도를 잘 지켜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죠.
그것이 너희가 짓지 않는 집을 얻고 심지 않는 과실을 먹고 자손이 복을 누리며 사는 길이라고 하죠.
만약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세상의 복잡하고 분주한 삶에 휩쓸려 하나님을 등지고 산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의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좇아 산다면 너희가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들어가는 가나안이라는 세상의 시선에 너희 심령을 빼앗긴다면 너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느냐 하는 것이죠.
총 34장으로 구성된 이 신명기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4장은 지나온 광야 40년의 삶을 회고하는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5-26장은 율법을 재해석하면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7-33장은 가나안 땅에서 받게 될 생사화복의 말씀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34장은 모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들어 있죠.
그와 같은 율례와 법도를 선포하는 말씀 중에 가장 많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는 법입니다.
그 말씀이 신명기에 16번 이상(4:15-40, 5:7, 7:16-26, 9:12-17, 12:1-3, 12:29-32, 13:1-10, 16:21-22, 17:1-7, 18:9-14, 20:18, 27:15, 29:14-29, 30:17-18, 31:14-18, 32:16-17) 나옵니다.
그만큼 그 무엇보다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하면 너희와 너희 자손이 잘되고 행복하게 될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깨달음)중요한 것은 모세의 설교를 그 세대만 듣고 새길 게 아니라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우리도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살 때 행복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죠.
물고기가 물이 없이는 살 수 없듯이 구원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없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오늘 본문 4-5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원해)히브리어 원문은 ‘쉐마’라는 말이 맨 먼저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쉐마’(שָׁמַע)라는 말은 ‘듣다’(to hear) ‘집중해서 듣다’(listen to) ‘복종하다’(obey)는 뜻입니다.
집중해서 들어야 그대로 실천하며 살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마음에 새겨야 삶 속에 그대로 실천해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그래서 ‘쉐마’하며 맨 먼저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이 ‘쉐마’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곳이 창세기 3장 8절에 나온다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수치를 안 뒤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로 가렸죠.
그때 ‘바람이 불 때’ 하나님께서 걸어오시는 소리를 아담과 하와가 듣게 되었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죄의 현장에 있을지라도 친히 찾아와 말씀하셔서 듣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이죠.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돼지를 치며 쥐염열매를 먹고 있는 그 현장에도 하나님은 찾아와 말씀하여 듣게 하고 돌이키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깨달음)지금 모세도 마찬가지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낯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면 그 땅의 문화와 종교에 영향받지 않을 수가 없죠.
실제 여호수가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타락한 문화와 우상종교에 빠져들어 살았죠.
그것을 모세가 내다보면서 ‘쉐마’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너희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설령 너희들이 가나안 땅의 죄악에 넘어질지라도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와 말씀하셨듯이 너희에게 찾아와 말씀하실 터니 듣고 순종하라고 말이죠.
(원해)모세가 그렇게 ‘쉐마 이스라엘’하면서 연이어 선포한 말씀은 ‘유일한 여호와’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야훼는 우리의 하나님이다 야훼는 하나다”( יהוה is our God יהוה alone)입니다.
‘유일한’이란 히브리어 ‘에하드’(אֶחָד)는 ‘하나’(one) ‘오직’(only) ‘첫번째’(first)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하드’가 구약에 976회 나오는데 ‘여호와는 하나시다’ ‘한 분이시다’는 모세오경에 한번 나옵니다.
모세오경 이외의 구절에서는 스가랴 15장 9절이 유일합니다.
‘에하드’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지만 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기록은 모세오경에 한 번만 쓰인 걸가요?
‘에하드’는 우리말 기수로는 ‘하나’이고 서수로는 ‘첫째’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향해 ‘하나’나 ‘첫번째’로 표기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 법이죠.
그나마 인간의 언어로 이해시키기 위해 ‘에하드’라는 단어를 써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알게 한 것입니다.
(깨달음)그렇기에 ‘여호와는 하나이시다’는 이 번역을 개역개정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잘 번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요 모든 정사와 권세의 통치자로서 이 세상에 그 어떤 신과는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분이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땅과 하늘과 땅 아래 모든 세계의 주권자이시니 누가 그분의 주권에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적용)그래서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구원의 길이 다양하다고 말을 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이슬람의 알라든 불교의 부처든 공자의 유교신이든 단군신이든 저마다 신을 믿으면 극락왕생한다고 말이죠.
만약 하나님께서 그런 길을 원하셨다면 왜 유일하신 하나님만 믿고 섬기도록 말씀하셨겠습니까?
만약 저마다의 신을 믿고 의지하게 하셨다면 애굽의 만 가지 신을 숭배하도록 허락하셨겠죠?
만약 다양한 신들을 인정하고 그 신들마다 구원이 있다고 한다면 가나안의 토착신을 믿게 하셨겠죠?
하지만 구원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기고 경배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애굽 사람들처럼 갖가지 신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섬길터인데 너희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형상으로 빚어 만든 조형물은 인간의 욕망이 담긴 것이기에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형상물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오직 너희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만이 너희들의 간구와 탄식을 듣고 응답하신다고 말입니다.
(원성)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구원해 대해 말씀하실 때 친히 선포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깨달음)무슨 말씀입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원성2)이 사실을 알고 있는 베드로와 요한도 제사장과 산헤드린 앞에서 그렇게 선포한 것 아닙니까?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깨달음)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다른 이로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죠.그것이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말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여러 길을 주신 분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누리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웨슬리의 신학사상이나 칼빈의 신학사상이나 칼 라너의 신학으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니지 않느냐?”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생의 길이지 않느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주신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으니 말이다.”
“모세가 출애굽 1.5세대와 2세대를 향해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고 홍해를 가르고 생수를 공급하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40년간 인도하신 분도 유일하신 하나님이지 않더냐?”
“그러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섬기도록 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서울을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한 길뿐이지 않더냐?”
“이슬람교나 불교나 단군교나 웨슬리의 신학이나 칼빈의 신학이나 칼 라너의 신학에 달려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길이 없으니 말이다.”
“너에게 그 길 외에 다른 길을 제시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소리이니 오직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느냐?”
(찬양)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게 준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웃에게 전하여라
그러면 네가 짓지 않은 큰 집을 주리라 네가 심지 않은 과실을 먹게 하리라
그러나 한 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예화)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고 싶어합니다.
저도 옛날에 전주태평교회 전도사로 섬기고 있을 때 성지순례차 그 사원에 가본 일이 있습니다.
그 사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오래돼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평범한 건물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사원에 어느 미국의 방문객단이 방문했을 때 안내자는 장황하게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 사원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그 사원의 무덤에는 어떤 영웅들이 묻혀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 사원의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아주 장황하게 설명해줬습니다.
그 안내자의 설명이 끝나고 더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미국의 오하이오주에서 온 한 성도가 안내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해서 여러 가지 내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뜻밖의 질문에 답을 준비하지 못한 안내자는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까?
구원은 건물의 웅장함이나 사원의 화려한 역사를 통해 얻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예배당 건물 자체가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친다면 가우디가 설계해서 지금껏 짓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나 일본의 건축가 다다오 안도가 지은 ‘빛의 교회’ 건물에 구원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구원은 예배당 건물의 화려함 속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용)2017년 9월에 우리 지방회 교역자회 수련회에서 홍도교회를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10명 안팎에 성도들만 예배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의 예배당이었고 산에서 캔 돌로 지은 예배당이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모여 예배하는 성도들은 정말로 사랑으로 화평을 좇아 섬기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모임 속에 주님의 영이 거하시고 천군 천사가 임재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겠습니까?
(성화)수요일밤에 고린도전서 12장을 읽는데 성령의 은사에 관한 바울의 목회적인 답변이 나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것에 대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알라고 했죠.
왜냐하면 그들이 주님을 믿기 전에 이방 신전에서 행하던 습관을 교회 안에서도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기 전 이교도의 신전에서 제사하고 기도할 때 괴성을 지르는 일이 있었는데 교회 안에서 방언을 한다면서 무질서하게 소리치고 자기를 과시하는 성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은사는 ‘카리스마’(χάρισμα)요 영어로는 ‘선물’(gift)이지 않냐는 것이었죠.
주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어지 너희들의 것인양 소리치고 과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뱉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들을 하는 자이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고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는 주님의 영광과 성도들의 화평을 위해 그 은사를 섬기는 도구로 사용하는 하지 않겠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성)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깨달음)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좇고 많은 은사와 능력을 발휘해도 주님은 모른다는 거죠.
주님이 주신 은사라면서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갖가지 기적을 하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라는 겁니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보여도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뜻이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신 뜻입니다.
아무리 유창한 방언을 하고 심오한 예언을 하고 병든 자를 고쳐도 평소 성품이 성도간에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자랑과 교만 속에 산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이교도의 신전 앞에서 행하는 무질서와 다툼만 야기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적용)화려한 예배당이 성도의 자부심은 될지 모르지만 구원의 필요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멋진 방언이나 능력있는 기도가 성도의 자부심은 될지 모르지만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배당이 초라해도, 방언을 못하고 특별한 은사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발을 씻기고 연약한 이들을 품듯이, 그런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이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줄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화려한 예배당은 성도들의 자부심은 될지라도 영원한 생명과는 무관한 것이네요.”
“비록 내세울 게 없는 작고 낡은 예배당일지라도 서로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화평으로 섬긴다면 그들에게 구원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유창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갖가지 기적을 해도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에게 해를 끼쳐 선한 열매가 없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네요.”
“비록 제가 방언을 못하고 예언도 못하고 내세울 만한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묵묵히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성도들을 섬긴다면 그것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길인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준 자들에게 목마를 때 마시게 한 자들에게 헐벗었을 대 입힌 자들에게 병들었을 때 돌본 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영원한 생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님의 방식을 좇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길인 줄 믿어요.”
“제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의 뜻을 좇아 살게 하시고 제 영혼을 부르시는 그날 천국에 입성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어요.”
(찬양)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시어서 나의 주가 되셨네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의 목자 되시어서 나를 항상 인도하니 주만 따라가리라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서 나의 주가 되셨네
고마우신 주의 사랑 내 어이 다 노래하리 나의 사는 그 날까지 주만 위해 살리라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길 그 영원한 생명의 길 천국의 길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길은 알라나 부처나 공자나 단군을 믿는다고, 웨슬리의 신학이나 칼빈의 신학을 믿는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길인 줄 믿습니다.
영생은 예배당의 화려함 때문에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은사로 인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교만하거나 무질서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좇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방언을 못해도 예언을 못해도 특별한 은사가 없어도 주님께서 연약한 자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셨듯이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 천국을 열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더 낮은 곳 더 연약한 이들이 있는 곳에 마음을 쏟아붓고 산담녀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영생의 나라를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총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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