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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수의 아들이 친구들을 목공소에 데려갔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접한 기계톱 소리와 통나무가 잘려나가는 광경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한 소년이 목수가 책상 위에 풀어놓은 손목시계를 만지다가 그만 톱밥 속에 떨어뜨렸습니다. 톱밥을 뒤졌지만 시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년들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계를 찾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서로에 대해 공격하느라 핏대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목격한 목수는 전기톱을 끄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급할수록 마음을 가라앉혀라. 일단 무릎을 꿇어보렴. 그리고 귀를 마룻바닥에 대 보아라. 무슨 소리가 들리니?” 목공소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침묵을 뚫고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죠. “째깍 째깍”
오늘 우리 상황이 이와 같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이 온통 통나무가 잘려나가고 기계톱이 돌아가는 상황과 같지 않습니까? 거기에 무언가 잘못을 했을 때 온통 ‘니 탓이다’ ‘네 탓이다’ 하면서 싸우는 모습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핏대를 높이면서 소리치는 바람에 조용히 들려오는 시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 말이죠.
진리의 소리도, 하나님의 음성도, 꼭 그와 똑같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우상에게 마음이 빼앗겨 살던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음성으로 찾아와 믿음의 길에 들어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지친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그의 심령을 흔들어 깨우셨고 새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땅에서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영혼이 사는 것이요 그들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자기 죽음을 앞두고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입니다. 설교로 가득찬 신명기는 히브리어로 ‘드바림’(דְּבָרִים, Devarim)이라고 부릅니다. 신명기 1장 1절에 나오는 “이것들은 그 말씀들이니라”하는 것을 그대로 신명기의 명칭으로 부른 것입니다. 한자로는 ‘신명기’가 ‘申’(되풀이 할 신)자에 ‘命’(명령 명)자에 ‘記’(기록 기)자를 씁니다. 영어로는 ‘Deuteronomy’(듀터로노미)인데, ‘Deutero’가 ‘두번째’라는 말이고 ‘Nomy’가 율법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만큼 신명기는 레위기의 율법서를 바탕으로 모세가 상세하게 해석하면서 되풀이한 설교내용입니다.
모세는 이 신명기 설교를 저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요단강 동편 모압 땅에서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40년을 통과해서 지금 요단강 동편 땅에 도착해서 설교한 것입니다. 광야 40년 세월 동안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죽었고 지금은 1.5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를 향해 선포한 말씀입니다.
무엇을 강조하고자 레위기의 율법서를 토대로 모세가 힘주어서 설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여기에 ‘들으라’하는 히브리어 ‘쉐마’(שָׁמַע)는 ‘듣다’(to hear) ‘집중해서 듣다’(listen to) ‘복종하다’(obey)는 뜻입니다. 이 ‘쉐마’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곳이 창세기 3장 8절에 나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뱀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 앞에 함께 따먹고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이전과는 달리 벗은 몸을 알게 되었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바로 그때 ‘바람이 불 때’ 하나님께서 걸어오시는 소리를 아담과 하와가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에 처음으로 ‘듣다’라는 쉐마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과연 무엇을 환기시키는 말씀입니까?
옛날 ‘신의’라 하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습니다. ‘제환공’이라는 사람을 보고 그가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병이 지금 피부에 있으니 곧 치료하라”하고 말이죠. 그러나 제환공은 듣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다시 말했습니다. “당신의 병이 혈액으로 들어갔으니 곧 치료하자” 그래도 제환공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병이 위장에까지 갔으니 곧 치료하시오.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하오.” 그래도 제환공은 그 명의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만났는데 그때는 신의가 제환공을 보고 그냥 지나치자 이번에는 제환공이 이상히 여겨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의는 혀를 차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당신의 병은 골수에까지 박혀 도저히 고칠 수가 없소.” 결국 제환공은 그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걸을 때 성령님께서 돌아서도록 감동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계속 이 세상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채 죄와 탐욕과 우상을 좇아간다면 결국 지옥을 향해 치닫고 말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를 향해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도록 감동을 주실 때 그때 내가 듣고 순종하는 것이 내 영혼이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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