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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하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더라(왕하23:24-37)

by 권또또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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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다 https://www.ibiblemaps.com/death-josiah/

 

남왕국 유다의 16대 왕 요시야는 히스기야 왕과 함께 더불어 근본적인 종교개혁을 대대적으로 일으킨 왕이었죠. 이제 17, 18, 19, 20대 왕을 마지막으로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는데, 그 네 명의 왕들은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못한 왕들이었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요시아는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을 수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살펴 본 것처럼 요시야는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토대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른바 성전 안에 있는 바알 신전과 그 우상의 그릇들까지 부숴트렸고, 성전 바깥의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신전과 제단들을 모두 허물게 했고, 성 바깥의 산을 비롯해 각종 신전들까지, 일월성신 곧 하늘과 달과 별과 해를 섬기는 신전들까지도, 이방 신들 곧 시돈의 아스다롯 신, 모압의 그모스 신, 암몬의 밀곰 신을 위해 세운 산당들을 완전히 허물어트렸고, 그 신전의 제사장들까지도 완전히 처단토록 했죠.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세운 황금송아지 신전과 같은 그 신전들까지 남유다 땅 모든 곳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척결했죠. 그만큼 성전중심에서부터 성전바깥으로 완전히 개혁을 일으켰죠. 그리고 행한 게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유월절, 사사시대로부터 왕들의 시대에 전심으로 지키지 못했던 유월절을 다시금 시행한 것이었죠.

그래서 우리가 새기게 된 게 무엇이었습니까? 그 당대의 성전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교회, 곧 교회인 우리 자신들의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우상과 탐욕과 세속주의와 성공주의와 온갖 맘몬들을 몰아내고,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생명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했죠.

 

오늘 본문 25절에서는 그런 요시야의 개혁에 대해 평가합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가히 극찬에 가깝죠. 이스라엘의 분열왕국의 역사속에서 그렇게 호평을 받은 왕은 다윗 이후에 없었습니다. 요시야는 그만큼 이스라엘 역사를 가로지르는 큰 획이죠.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인 26절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요시야의 철저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왕국 곧 유다를 향한 진노를 거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 앞에 매우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데 말이죠. 천하의 악한 왕 아합도 회개할 때에 그를 향한 심판를 보류하셨는데 말이죠. 그 뿐만이 아니라 그토록 악한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왕도 죄를 범하고 우상을 좇아 자기 아들까지 몰렉에게 바쳤는데도 곧장 중징계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셨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응당 요시야가 대대적인 개혁을 했다면, 이전에 어떤 왕도 하지 못한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면, 정말로 그 후대의 심판을 면하도록 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유다를 향한 진노를 돌이키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내용은 그 다음 구절 2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철저하게 우상숭배와 배교의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은 이미 B.C. 722, 다시 말해 요시야 왕이 통치하기 100년 전에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졌죠. 그런데 이제 하나 남은 유다마저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도, 그 성전까지도 완전히 버리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선언이 요시야의 개혁 이후에 선포되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죠.

이러한 충격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게 되죠. “요시야의 회개와 개혁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가?”, “요시야의 개혁이 무의미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패역한 시대를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는 질문들이 생겨나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훌다 선지자를 통해 요시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2장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접한 요시야 왕은, 즉시 자기 옷을 찢고 자신의 측근들을 선지자 훌다에게 보내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훌다가 전해준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였죠.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지 않겠다는 말씀 말이죠.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왕하22:16-17) 하나님은 훌다 선지자를 통해 우상숭배를 일삼아 온 유다 백성들을 향한 진노를 거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유다의 심판은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상관없이 성취된다는 뜻이죠. 나뭇가지에 내리는 눈송이가 그 가지를 부러뜨리기에는 가볍게 보이지만, 그 가벼워 보이는 눈도 어느 한계치까지 쌓이면 나뭇가지를 부러뜨린다는 것이죠.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한계점을 넘어선 상황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땅의 심판을 보류해 달라고 간청할 때, 그 성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하시겠다 한 것과 똑같은 격이죠. 그래서 본문 26절에서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요시야의 아버지 므낫세 왕 때부터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고, 대신에 그 아들 요시야가 하나님 앞에 겸비하자 그 당대에는 심판을 유보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 29-30절을 보면 그토록 전무후무한 종교개혁을 일구었던 요시야 왕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안타깝게 전사하고 말죠. 그만큼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왕이라도 하나님께 데려가시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게 인간의 모습임을 일깨워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이가 제17대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32절에서 증언합니다.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여호아하스는 아버지 요시야의 개혁 정신을 잇지 못하고 악한 왕들의 길을 답습했습니다. 그와 같은 여호아하스로 인해 이스라엘의 남은 왕국 유다의 멸망이 이제 시한폭탄처럼 시시각각 다가오죠. 만일 여호아하스가 아버지 요시야의 개혁 정신을 본받아 순종의 길을 걸어갔다면 어떻게 역사가 달라졌을까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 역시 그 당대에는 심판을 받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유다 왕국은 여호아하스 이후부터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17대왕 요호아하스, 18대 앙 여호야김, 19대 왕 여호야긴, 그리고 마지막 20대 왕 시드기야 왕까지 모두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악한 길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시야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다 왕국은 B.C. 586년 시드기야 왕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말죠.

 

그렇다면 요시야의 회개와 개혁이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적인 삶이 있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요시야는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그의 삶을 좇아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는 삶,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탐욕과 우상숭배의 것들을 몰아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생명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하죠.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미 하나님의 심판의 대접을 쏟아 부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것이 우주적인 종말이라면,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종말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루하루 주님과 더불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요시야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미 100년 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왕국 유다의 왕들과 온 백성들이 패역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 말씀과 규례를 힘을 다해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를 향한 심판은 보류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대대적인 심판의 대접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가지에 눈이 쌓이고 쌓이면 뚝 부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저희들의 심령 속에 있는 우상숭배의 것들을 부단히 몰아내게 해 주시옵소서.

오직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깊이 모셔 들이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심판이 임박하여 이 땅애 재림하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을 힘입어 영원히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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