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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하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옷을 찢으니라(왕하22:1-20)

by 권또또 2021.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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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왕이 율법 앞에서 옷을 찢고 회개하는 모습 https://bibleteachingnotes.blog/2019/04/24/2-kings-22/

 

열왕기상 12장에서 시작된 남북분열왕국의 역사 중에 북이스라엘의 역사가 열왕기하 17장에서 끝이났죠. 북이스라엘 멸망당한 이유는 앗수르 제국과 공조하지 못한 외교전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망각한 채 우상숭배와 이방신을 좇은 까닭이었죠. 19명의 왕들이 북이라엘을 다스렸죠. 그 중 8명의 왕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거머쥐었죠. 최초 솔로몬의 부하 장수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의 남쪽 벧엘과 북쪽 단에 황금송아지 신전을 세우고 백성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들었죠. 그의 악한 토대는 이후의 18명의 왕들이 모두 그 길을 좇아 행하는 계기가 되었죠. 무엇이든지 시작, 곧 토대를 어떻게 놓느냐는 그래서 중요한 법이죠. 그런 토대 위에 그 아들 나답이 왕권을 이어받지만, 부하 장수 바아사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거머쥐죠. 바아사는 그 아들 엘라에게 왕권을 넘겨주지만, 그 부하 장수 시므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쥐는데 7일천하로 끝나죠. 또 다른 부하 장수 오므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거머쥐기 때문이죠. 그 오므리는 수도 사마리아 성읍을 세운 이후에 아들 아합에게 왕위를 물려주는데, 7번째 왕이 된 아합은 여로보암보다 더 악한 토대를 놓죠. 시돈 왕 엣 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바알 숭배를 북이스라엘 전역에 퍼트렸죠. 그런 바알 숭배는 아들 아하시야에게 넘어가는데, 그는 2년 만에 병으로 죽고, 그 동생 여호람이 왕위를 잇는데, 그 역시 아버지 아합의 길을 좇다가 부하 장수 예후가 일으킨 쿠데타의 칼날에 맞아 비명횡사하고, 예후가 10번째 왕위에 오르죠.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척결하고 그 신전까지 허물어서 칙간으로 만들었는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4대까지 왕권을 잇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래서 예후의 왕위를 아들 여호아하스가, 여호아하스의 왕위를 아들 요아스가, 그리고 그 아들 여로보암2세까지 왕위를 이어받고, 그 아들 스가랴까지 왕위가 이어지죠.그 중에서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를 이끌었죠. 그런데 그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을 좇을 때, 부하 장수 살룸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잡는데, 그의 왕위는 한 달 만에 끝나버리죠. 그 부하장수였던 므나헴이 다시금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가로챘기 때문이죠. 그 므나헴 정권 시대에 앗수르 제국이 침략해왔는데 므나헴은 앗수르 제국에게 잘 보였지만 그의 왕권도 10년 만에 끝이 나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물려받죠. 하지만 브가히야는 2년만에 왕위가 끝나는데, 그 부하장수 베가가 쿠데타를 일으킨 까닭이죠. 그 베가 시절에 앗수르 제국이 침입해 사마리아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그런 외란에 휩싸여 있을 때 부하장수 호세아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잡죠. 하지만 그의 왕위는 9년 만에 막을 내리죠. 동시에 북이스라엘의 역사도 그와 함께 종언을 고하죠. 209년의 역사, 다시 말해 B.C.931년에 시작된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B.C.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것이죠. 그처럼 8명의 왕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역사였고, 19명의 왕들이 통치할 때 모두들 여로보암이 놓은 토대를 좇아 우상숭배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호세야, 미가, 이사야 선지자들을 보내 회개토록 했지만 그들이 끝내 거부하자, 19대 왕 호세아를 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었죠.

 

그렇다면 남왕국 유다는 어떤 흐름을 잇고 있습니까? 열왕기상 12장에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으로 등극하는데, 그는 다윗과 달리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들었죠. 그의 왕위는 17년 만에 끝이 나고, 그 아들 아비얌이 왕위를 잇는데, 그도 아버지처럼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3년 만에 왕권이 끝나죠. 그 뒤를 아들 아사가 이어받는데, 아사는 남색하는 자들을 좇아냈고 우상의 제단까지 불태울 정도로 개혁했죠. 그래서 41년간 통치했는데, 말년에 인간적인 힘을 의지하다가 발에 병이 들어 죽게 되죠. 그 뒤를 4대 왕 여호사밧이 있는데 25년간 통치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걸 허용했던 왕이죠. 5대 왕은 여호람인데 그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딸과 결혼을 했고, 그로인해 바알 신을 유다 전역에 퍼트린 장본인이고, 그것은 그가 죽자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아하시야도 마찬가지로 바알 신앙을 좇았는데, 그런 아하시야를 하나님께서는 예후의 칼에 맞아 죽도록 했죠. 그가 갑작스레 죽자 그 어머니 아달랴가 여왕으로 등극해 6년간 통치하죠. 그녀는 왕이 되어 모든 친손자들을 처단했는데,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난 요아스가 6년 동안 성전에서 숨어 살다가 7살 때에 제사장의 도움으로 제8대 왕으로 등극하죠. 요아스는 40년간 재위하면서 바알 신전들을 허물어트리고 성전도 수리하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만들 정도로 종교개혁을 일으켰죠. 물론 그의 임기 말년에는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신복의 칼에 맞아 죽고 말죠. 그리고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제 9대 왕이 되는데, 그는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아버지의 정적들만 제거할 뿐 3족까지는 멸하지 않았죠.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에돔 국가를 정벌한 후에 자기 교만에 빠져 북이스라엘까지 치려고하다가 완전히 대패했고 결국 아버지처럼 신복의 칼날에 비명횡사하죠. 그 뒤를 아들 아사랴웃시아10대 왕으로 등극하는데, 그는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길을 좇았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고, 52년간 문둥병에 걸려 별실에 머무르면서 아들 요담으로 대리청정케 했죠. 그가 죽자 아들 요담이 11번째 왕이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죠. 그리고 그 아들 아하스가 12대 왕이 되는데 그는 우상숭배를 좇았고, 아람 나라의 신전 구조와 제도까지 그려와 제사장에게 만들도록 했고, 자기 아들까지 그 신에게 불태워 바쳤고, 성전 문까지 폐쇄해버린 악한 왕이었죠. 그리고 그 뒤를 이은 13대 왕이, 우리가 열왕기하 18-20장까지 살펴 본 히스기야였죠. 앗수르 대왕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기도하던 왕이었고, 하나님께서 185천명을 하루저녁에 송장으로 만들어주셨고, 산헤립도 수도 니느웨 성읍에서 신복의 칼에 맞아 죽게 하셨고, 후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병들어 죽게 하실 때 그가 다시 기도하자 15년간의 생명연장을 허락해 주셨는데, 후에 건강을 되찾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바벨론을 의지하려다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받은 왕이었죠. 나라도 멸망당하고, 그 후손도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말이죠. 그때 히스기야는 자기 시대에만 평안하면 족하다고 했던 왕이었죠. 그리고 14대 왕은 망각하다는 뜻을 지닌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였는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아버지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웠고, 바알 신앙도 다시 퍼트렸고, 아세라 목상도 다시 만들었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했고, 자기 아들도 불로 태웠고, 점치는 자들과 박수무당들을 신임한 왕이었죠. 그야말로 악에 관한 한 종합선물세트였죠. 그리고 그 아들 아몬이 15대 왕이 되어 2년을 다스렸지만, 그도 악한 길을 좇아 그 신복의 칼에 맞아 죽고 말죠. 그처럼 제 1대 르호보암부터 제15대 아몬까지 살펴봤는데, 20명의 왕들이 통치하는 남왕국 유다의 왕들에 대한 평가는 하나입니다. 다윗의 길을 좇아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더라, 하는 그 한 마디 말이죠. 그러나 20명의 왕들 가운데 진정한 왕은 두 명 뿐이었습니다. 13대 왕 히스기야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16대 왕 요시야입니다. 왜 히스기야와 본문의 요시야 왕을 진정한 왕으로 평가하는가? 남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그래도 다윗의 길을 좇아 선을 행한 왕이 8명인데, 8명 중에서도 2명만 진정한 종교개혁까지 완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던 그 산당까지 완전히 허물터 뜨린 왕이 히스기야와 본문의 요시야 왕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과연 그 요시야가 무엇 때문에 그런 종교개혁을,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던 그 산당까지 허물어트렸는지,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 토대가 무엇인가? 본문 5절에 보면 요시야가 서기관 사반을 통해 제사장 힐기야에게 성전을 수리케 하죠. 그런데 그 제사장이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서기관 사반에게 주는데, 그가 그 율법책을 받아서 요시야 왕 앞에서 읽는데, 11절 말씀에 요시야 왕이 그 율법책의 말씀을 들을 때 옷을 찢죠. 그러면서 13절에 요시아는 우리가 이렇게 화를 당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 곧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결과라고 하면서, 회개를 하죠. 그리고 23장에 가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고 모든 산당까지 허물어트리죠. 히스기야 왕과 함께 완전한 종교개혁을 일으킨 왕이 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전의 왕들은 말씀을 좇아 선을 행하긴 했지만 완전한 개혁, 근본적인 개혁까지는 못 미쳤던 것이고, 히스기야와 더불어 본문의 요시야 왕은 진정한 개혁, 근본적인 개혁까지 행했던 왕입니다. 그 토대가 바로 말씀의 진정한 순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희들에게 성경 말씀을 주셔서, 아버지의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형식적인 개혁보다도 완전한 개혁, 근본적인 개혁까지 행할 수 있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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