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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하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결박하여(왕하25:1-17)

by 권또또 202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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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 왕이 두 눈이 뽑히고 자기 자식들이 죽는 모습

 

 

히스기야 왕과 더불어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은 요시야였죠. 그런 요시야 왕과는 달리 그 아들 여호아하스는 악한 길을 좇아 행했죠. 그런 여호아하스를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쳐들어와 잡아갔고, 대신에 요시야 왕의 다른 아들인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아 그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칭하게 했죠. 그런데 갑작스레 왕이 된 여호야김은 바벨론과 손을 잡고 나가라는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무시한 채 애굽과 손을 잡으려다가 바벨론 군대에 함락당하고 포로로 끌려갔죠. 그리고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이 왕이 되는데, 그도 아버지를 좇아 악을 행했죠. 그 결과 아버지처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앉혀 그 이름을 시드기야로 칭하게 했죠. 그 시드기야가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20대 왕이었죠. 그의 통치와 더불어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는데, 그때 바로 B.C. 586년이었죠.

오늘 말씀은 마지막 시드기야 왕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본문은 특히 시드기야 왕을 향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성전붕괴'사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드기야 왕은 여호야긴 왕의 숙부 곧 작은 아버지였죠. 본래 이름은 맛다니야였습니다. 그런 그는 조카였던 여호야긴이 바벨론 왕에 의해 폐위 당한 뒤, 그를 대신해 시드기야라는 이름으로 개명당한 뒤 왕위에 올랐죠. 하지만 왕으로서의 출발 자체가 이전 왕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른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이전의 왕들처럼 다윗의 길이 아닌 패역한 길을 답습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유다 왕들의 선한 왕의 기준을 다윗에게 두고 있고, 악한 왕의 기준을 그들의 아버지에게 두고 있는데, 본문의 시드기야는 그 기준을 누구에게 두고 있는가? 어제 읽은 열왕기하 2419절을 보면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하고 돼 있습니다. 시드기야가 악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여호야김의 행위를 본받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자기 사촌 형의 동일한 악행을 그도 반복해서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를 통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죄는 분명히 모방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죠. 인간 안에 있는 죄 성을 외부의 행동으로 표출하는 순간, 그 행동은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누군가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죠. 그래서 그 주변인은 노출된 죄에 오염될 뿐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잠재돼 있던 죄성과 결탁하여 결국 모방적인 죄로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모방범죄들이 그런 경우인데, 그것을 본문의 시드기야가 사촌 형 여호야김처럼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죄의 모방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21-22절 말씀을 통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말씀하시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죄악도 본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죄의 모방성을 따라 행하는 시드기야를 향해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는가? 아닙니다. 예레미야 21장을 보면 그런 죄악 가운데 있는 시드기야를 향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죠. 그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끌려갈 것이라고 말이죠. 한 마디로 심판과 징계에 받는다는 사전경고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드기야가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바벨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들과 손을 잡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무시하고, 또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외면한 채,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좇아 바벨론 왕을 배반해 버립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죠.

 

그것이 오늘 본문 1-2절의 말씀입니다.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시드기야를 공략하려고 2년 넘게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 안에 있는 식량이 떨어지죠. 그때 어떻게 하는가? 시드기야 왕이 밤중에 아라비아 길로 몰래 빠져나가려고 하죠. 그 모습을 바라본 바벨론의 군대가 왕을 추격하여 생포하죠. 그래서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 끌고 가는데, 그때 어떤 일을 겪는지, 본문 7절에서 밝혀주죠.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시드기야 왕이 보는데서 아들들이 다 살해당하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결국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는 모습이죠.

과연 그와 같은 처참한 상황을 우리에게까지 알려주고자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심판자이신 하나님, 죄에 대해 분명하게 징계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분명코 두 눈이 뽑히는 치욕스런 비극의 심판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함이죠.

이를테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 않으셨습니까? ‘선악과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하고 말이죠. 그런데 아담의 아내 하와는 어떻게 바꿔서 말합니까? ‘죽을까 하노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경시했죠. 그로 인해 결국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지었는데, 그로 인해 그 말씀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야말로 설마하는 게 죽음의 심판을 당한 계기였죠. 오늘 본문 속에서 시드기야의 두 눈이 뽑힌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심판과 징계에 대해 하나님은 확실하게 성취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만을 붙잡고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말씀의 편식 현상이 그것이죠. 그것은 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주제와 관련된 말씀이죠. 그러나 그것을 역으로도 생각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분명코 심판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전도서 12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행하신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말씀은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설마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심판하시겠어하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오늘 본문 1-17절까지 읽은 말씀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그 심판을 분명히 이루시는 심판자이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어떻게 합니까? 시드기야 왕만 포로로 끌로 가는 게 아니라,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부자들의 집까지 불사라 버렸고, 성중에 남아 있는 자들까지 다 끌고 가죠. 그런데 12절은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죠.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바벨론 왕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 성읍의 비천한 자를 그 땅에 남겨둬서 포도원을 다스리도록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야말로 힘없고 돈 없고 능력 없는 그 당시의 무지렁이들을 그 땅에 남겨두어 그 땅을 일구게 했다는 것이죠. 그 당대의 관점으로 보면 완전히 역전의 인생 아닙니까? 정말로 잘 살고 잘 나가던 자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갔고, 힘없이 연약한 자들은 그 땅의 주인 노릇을 하는 신세로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이런 모습 속에서 성령님께서 무엇을 깨달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거국적으로, 곧 우주적으로 이루어지는 심판이라는 것이죠. 그때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떵떵거리며 호위호식하는 자들은 다 징계과 고통에 처하게 되죠. 대신에 뭔가 없는 자들,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은 심판 날에 역전된다는 뜻이죠. 오늘 시드기야와 그 성읍의 지도자들과 부한 자들을 보면서 우리가 새겨야 할 말씀이 바로 그것이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늘 생각하며 내 눈에 보기에 좋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택하며 사는 것 말입니다. 아울러 나의 지위나 능력을 자랑하기보다 오직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 수 있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유다에 대한 심판과 징계를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 만 아니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그동안 말씀을 편식한 채, 공의의 하나님보다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했던 부분들을 회개합니다.

영적인 안일, 도덕적인 안일에서 벗어나 말씀을 따라 신실하고 진실하고 충성된 하루하루를 살게 하시옵소서.

그때에만 주님의 심판과 수치가 아닌 상급과 면류관의 자리에 서게 하실 줄 믿사옵나이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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