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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열왕기하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왕하25:18-30)

by 권또또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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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풀어주다

일제강점기 36년 후에 광복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광복의 기쁨을 갖는 것도 잠시, 곧바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 극심한 내분을 겪었죠. 그 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을 나누어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주둔하여 군정을 실시했죠. 그것이 고착화되어 남한과 북한 내에 독자 정부가 들어섰는데, 후에 북한은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이루고자 남한을 쳐들어왔고, 그와 같은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죠. 그처럼 우리나라의 역사만 봐도 우리의 자주적인 의지보다는 주변 강대국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던 때가 더 많았죠.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남왕국 유다도 마찬가지였죠. 오늘이열왕기하 마지막 시간인데, 우리가 계속 살펴본 북이스라엘도, 그리고 남유다도 그랬죠. 통일왕국 시대에는 블레셋이란 나라의 침략에 골머리를 앓았고, 도 분열왕국시대에는 애굽, 그리고 앗수르 제국, 또 바벨론 제국에 박해와 환란을 겪었죠. 그런 강대국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이스라엘의 역사였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그런 강대국들의 눈치를 잘못 살폈고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는 이유도 없지 않았지만, 더 큰 원인이 있었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지 않는 불순종이 가장 큰 원인이었죠. 북이스라엘이 B.C.722년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죠.

그렇다면 남유다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북이스라엘처럼 완전히 멸망당하는구나, 하는 사실을 목격했다면, 그들은 정말로 타산지석삼아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야만 했죠. 이른바 다윗 왕이 걸어갔던 여호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선을 행하며 살았어야 했죠. 하지만 요시야 왕 이후에 그 아들 여호아하스도, 또 여호야김도, 그 아들 여호야긴도, 그리고 그 조카 시드기야도 결코 선이 아닌 악한 길만 좇을 뿐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이 아닌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길을 취하려했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하기보다 주변 강대국의 힘을 더 의지하려다가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 사이에서, 애굽과 바벨론 제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한 후 150년이 지나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것이었죠.

그때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어떻게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켰습니까? 예루살렘 성벽을 파괴하고,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은 물론 예루살렘의 모든 대관들의 집을 불살라버렸죠. 특히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도 무참히 파괴시켰는데, 그 모습은 온 국민들에게는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바벨론 제국은 예루살렘의 각각의 성읍의 도시만 파괴한 게 아니라, 그들의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적 지도자들을 립나로 데리고 가 처형해 버렸죠. 그것이 본문 17-21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뿐만 아니라 바벨론 왕은 3차 포로로 사로잡은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 제국의 각처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유다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인도해주신 그 약속의 땅에서 추방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죠. 하나님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충수를 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엄중한 심판을 내리신 것이었죠. 그와 같은 심판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겠죠.

 

바로 그런 와중에 일어난 사건이 오늘 본문 22-26절에 기록돼 있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은 점령국가에 자신들의 통치자를 파견한 게 아니라, 점령지 자국민으로 하여금 직접 자치제를 실시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을 걷어 바벨론 제국에게 조공을 받치게 한 것이죠. 그것이 본문 23절 말씀입니다.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그달리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 활동을 도운 아히감의 아들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시드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죠. 애굽과 손을 잡지 말고 바벨론 제국과 손을 잡으라고 말이죠. 그런데도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애굽과 결탁하려다가 그만 바벨론 제국의 침략을 당하고 또 포로로 끌려가 죽게 된 것 아닙니까? 그때 예레미야를 도운 이가 바로 아히감인데, 그달리야가 바로 그 아히감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달리야가 바벨론 제국의 신임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래서 그를 유다의 지도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달리야도 바벨론 제국을 섬기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길만이 우선은 살 길임을 천명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바벨론의 그런 처사, 또 그 바벨론 제국과 결탁하려는 그달리야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그달리야를 몰아내려고 시도를 한 것입니다. 그 주동자는 왕족 이스마엘이었죠. 그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시기에 암몬 왕 바알리스에게 피신해 있었죠. 그러다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이제 그달리야가 유다를 통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그달리야를 죽인 채 반란을 꾀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 23-25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벨론과 손을 잡으려던 그달리야를 처단한 신흥 반란세력들은 바벨론 제국을 두려워한 나머지, 애굽과 손을 잡고 결탁하려고 애굽으로 피신해 도망치기에 바빴죠.

어찌 보면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는 당대의 기준치 아니겠습니까?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나라의 위기, 외환위기의 상황만 바라본 채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들 말입니다. 정말로 이스마엘이 예레미야나 그달리야처럼 영적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가 멸망당한 게 하나님의 진노요 심판임을 직시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막무가내로 그달리야를 처단하고 나라의 정권을 잡으려고 할 게 아니라, 또 그도 안 되니까 애굽으로 피신하려고 했는데, 그런 인간적인 제스쳐를 보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세상 권력에만 눈이 먼 이스마엘은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 앞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 사건을 통해 자기 욕망과 자기 권력만을 취하려 할 뿐입니다.

 

열왕기하 마지막 부분인 본문 27-30절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25년이 지난 시점, 다시 말해, 2차포로가 된 지 37년이 되는 B.C. 561년의 상황을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새로운 왕 에윌므로닥 즉위 원년에 대사면령이 내렸고, 그래서 여호야긴 왕이 옥에서 풀려난 상황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들게 하고’, ‘좋게 말하고’, ‘지위를 높이고’,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왕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고’, 그가 쓸 것을 종신토록 공급한모습이죠. 그것은 여호야긴이 유다 왕으로 사면복권된 모습을 의미한 것이죠.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처럼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비록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러 다시금 회복되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은 70년이 지난 후,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페르시아 곧 바사의 고레스 대왕이 정권을 잡을 때 왕명을 내려 유다 백성들을 다시금 예루살렘 고토로 돌아가도록 하죠.

결국 열왕기하의 끝부분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무엇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입니까?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다를 절망에 빠트렸지만, 유다는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된다는 것, 바꿔 말해 역사의 주관자는 당대의 왕이 하는 것 같지만 그 모든 왕들 너머에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이시오, 그 하나님을 갈망하고 의지하라는 교훈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죠. 이 모든 상황의 주관자이신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열왕기상12장부터 오늘 열왕기하 25장까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사와 그 당대의 왕들의 역사를 봤고,

그 속에서 열강을 지배하던 블레셋, 애굽, 앗수르, 바벨론, 또 바사제국도 봤습니다.

세상은 힘과 권력있는 자들이 다스리고 주무르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너머에 모든 역사의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지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때에 새롭게 하실 역사를 바라보며 살게 하시옵소서.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이 속에서도 미래와 희망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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