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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바울이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28:16-31)

by 똑똑이채널 202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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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에서 보여준 행적으로, 사도행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법정에서 심문받고 감금된 바울에게 그날 밤 주님께서 찾아와 “로마에서도 네가 증언해야 할 것이다.”(행23:11)고 말씀하신 그 말씀이 지금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사실 사도행전 27장에서 보여주듯이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가는 배를 타고 출항할 때만 해도 바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유라굴라 광풍 속에서 14일을 지낼 때의 모습과 해도 달도 별도 보이지 않던 그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그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도 다치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이라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모습, 그리고 배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276명 모두가 멜리데 섬에 헤엄쳐 살아남은 것, 그리고 그 섬에서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고 그 추장의 아버지도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고침을 받고, 그 섬의 모든 병든 자들도 바울이 기도해서 고침을 받자, 다들 어떻게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저 볼품없는 죄수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모두가 존경을 했겠죠. 그것은 바울의 신분이나 지위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바울의 모습 때문이었죠.

그러나 그렇게 존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혹여라도 바울이 교만해지 않을까 싶은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초심을 경계하게 만드십니다. 그곳 멜리데 섬에서 곧장 로마로 출발하도록 하면 될 것을 무려 3개월가량 그곳에 머물게 하신 뒤에 ‘디오스구로’라고 하는 머리장식을 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출발을 한 점도 그렇고, 그 배가 ‘수라구사’에 도착해 3일을 지내고, ‘레기온’에 당도해 1일을 보낸 뒤에 드디어 이탈리아 로마의 외항인 ‘보디올’에 당도를 하는데, 그 보디올 항구에서도 7일을 보낸 뒤에, 드디어 로마의 내륙으로 걸어가게 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왜 그렇게 주님께서는 멜리데 섬에서 로마의 내륙으로 가는 길목을 단숨에 이끌지 않고 3개월하고도 11일이 걸리게 한 것입니까? 60세로서 인생의 모든 경륜과 연륜이 깊은 바울이 275명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신분이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복음을 향한 초심을 잃지 않고 굳게 지키도록 하기 위해 그 길목에서 그렇게 뜸을 들이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나이를 먹고 인생 분야에서 연륜과 경륜이 깊어질 때, 그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초심을 재확인하도록 하나님께서 뭔가 결과에 뜸을 들이고 지체하게 하실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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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울은 자기 심령에 뜸을 들이며 초심을 재확인하도록 이끄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면서, 드디어 로마의 내륙에 당도했습니다. 그야말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그 땅 끝에 이른 것입니다. 본문 15-16절이 이렇게 증언해 줍니다.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 16장 16절부터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듣고 바울의 주치의로서 동행한 누가는, 바울이 경비병 한 사람만 딸린 채 영외의 가택에 연금되는 관대한 조치를 받은 것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관례로 본다면 바울은 먼저 황제근위대의 대장에게 인계되었을 것이고, 근위대장은 죄수인 바울을 황제의 시위대 감옥인 ‘프레토리움’에 감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시간이 지난 후에 바울을 다른 죄수들과 분리하여 ‘프레토리움’ 밖에 있는 일반 가옥에 따로 살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군인에 의해 따로 감시받으면서 군영 밖에 있는 셋집을 얻어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게 한 것은 매우 관대한 처우였습니다.

과연 바울이 이렇게 선처를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바울이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에게 상소한다고 할 때 그 상소문을 써내려가기 위해 조사한 총독 베스도의 호의적인 조서도 한 몫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바울을 호송하면서 4개월 10일 동안 곁에서 지켜본 율리오 백부장의 보고서 내용도 한 몫 했겠죠. 그런 일들로 인해 다른 죄수들과는 달리 바울은 영내 바깥의 셋집을 얻어 살게 됐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삶이라 할지라도 죄수의 신분은 제한적이고 힘든 삶입니다. 바울은 군영 주위에서 일정한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고, 언제나 죄수와 간수를 하나로 묶는 삶이었기에 간수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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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21절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은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자기 셋집에 유대인 중에서 높은 사람들을 청합니다. 그래서 왜 상소를 해서 로마에 오게 됐는지 밝힙니다. 자신은 유대의 관습을 어겼기 때문에 체포된 것도 아니고, 죄가 없음이 드러나 석방되고자 했지만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반대해서 황제에게 상소를 한 것이지, 결코 자기민족을 고발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20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다시 말해 ‘메시야’ 때문에 지금 이곳까지 온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 속에 있기 때문에 메시야가 유대인들의 유일한 소망이죠. 그 메시야가 바로 자신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소망임을 알리기 위해, 지금 쇠사슬에 매여 왔다는 것이죠.

그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21-22절의 새번역성경이 이렇습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아직 유대로부터 당신에 관한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동포들 가운데서 아무도, 여기에 와서 당신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거나 소문을 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서 당신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종파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어디서나 이 종파를 반대하는 소리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전부터 그리스도교에 대해 들어왔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 종파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바울에게 말해줍니다.

 

그러자 본문 23절에서, 그들은 바울과 함께 날짜를 정해 다시금 그 집으로 옵니다. 그때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곧 구약성경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 중에는 믿는 사람도 있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죠. 그 생활을 얼마 동안 했습니까? 본문 30절입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만 2년 동안 자신을 지키는 병사와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한 것이죠.

물론 그 2년 동안 그것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옥중서신으로 알려진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그 기간 동안 써서 보냈던 것이죠.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는가? 그렇지 않죠. 그 2년이 지나는 동안 바울은 죄가 없음이 판명되어 풀려납니다. 그리고 이제 나이든 제자 ‘디도’를 크레타 섬의 담임목회자로 세우고, 젊은 제자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세우죠. 자신은 또 다시 자유롭게 이전에 복음을 전한 곳들을 누비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네로 황제가 다시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게 되는데, 그때 바울이 붙잡혀 로마의 지하 메마르틴 감옥에 감금되고 곧장 참수형을 당합니다. 바로 그 직전에 마지막으로 써 보낸 편지가 디모데후서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본문의 30-31절 곧 사도행전의 마지막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0-31) 하고 끝맺는데, ‘전파하다’와 ‘가르치더라’가 실은 현재분사라는 점입니다. 현재분사란 누군가의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사도행전의 기록은 여기에서 끝이 나지만 바울과 다른 제자들의 행적은 결코 끝이 아님을 잠잠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 아닙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무엇을 하든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우선순위죠. 그런 우리의 삶도 언제나 ‘현재분사형’이라는 점입니다. 때로 실패와 난관이 있고, 실망과 불편함이 있고, 고난과 어려움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과거분사’로 만들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주님의 은혜 안에서 주님의 뜻을 좇는 현재분사형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땅에서 바울처럼 사라져도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써 내려간 복음의 터 위에 누군가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현재분사형의 삶을 써내려가는 남은 인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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