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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향해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에는 총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배의 선장과 선주는 바닷길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고, 그 당시 봉급제가 아니라 할당제로서 그 어떤 화물이든, 그 어떤 사람들이든, 돈이 된다면 모든 바닷길을 헤치고 다니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때가 유대인들의 속죄일이 지난 10월을 넘어서 이제 11월달로 접어드는 때요, 그때는 지중해 선박의 모든 배들이 전면통제되는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11월 중순부터 1월까지는 파도와 풍랑에 의해 모든 배들이 좌초되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게 이번 항해길은 피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그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라 미항에서 뵈닉스로 뱃머리를 돌렸죠. 뵈닉스나 미항이나 두 항구는 구브로 섬에 자리잡은 항구들입니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배가 이동한 꼴입니다. 그런데 그곳 뵈닉스에 당도했을 때 바람이 잦아드는 것 같아서, 드디어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를 시작하는데,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아서 갑자기 유라굴라 광풍이 몰아닥쳤습니다. 그로 인해 ‘가우다’라는 작은 섬을 끼고 간신히 지나가는데, ‘스르디스’라는 암초에 걸릴까 해서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죠. 그런데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을 때 그들은 바다에 자신들의 짐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풍랑에 그 짐이 무거우면 잠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이제는 배의 기구들까지 다 손으로 버립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짐들, 다른 기구들은 아무 것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풍랑 속에서 여러 날이 지나가는데도 해도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살 수 있다는 소망마저 다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때 바울이 275명 앞에 일어서서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자신에게 말씀해 주신 것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어젯밤에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네가 로마에 가야 하듯이, 너와 함께 하는 무리들도 다 너와 같이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안심하십시오. 반드시 한 섬에 우리의 배가 거릴 것입니다. 나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276명이 탄 그 배의 통제권은 율리오 백부장에게 있었고, 그 배의 모든 주권은 선장과 선주에게 있었죠. 하지만 율리오도, 선장과 선주도 276명, 그들 모두의 목숨을 지켜줄 수는 없었죠. 오직 바울이 사명을 다할 때까지 책임져주시는 주님께서 276명의 목숨을 붙잡고 계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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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27절입니다.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뵈닉스에서 출발하자마자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가우다라는 작은 해안을 떠밀려왔고, 이제는 아드리아 바다에 떠밀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 날들이 14일이나 계속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배를 젓는 사공들이 보기에 자신들이 탄 배가 육지에 가까워지는 게 보였던 것이죠. 그래서 물을 재어보니까 ‘스무길’ 곧 36m였고, 조금 더 지나가서 살펴보니까 ‘열다섯길’ 곧 27m였습니다. 그만큼 수심이 얕아진 것이었죠. 하지만 29절 말씀처럼 밤에 혹시 모를 암초 때문에, 후미의 닻 네 개를 조금씩 내리면서 천천히 해변가로 나가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두가 안심하고 날이 새기만을 함께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정 무렵부터 동이 트는 새벽 시간까지, 그 배에 탄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깁니다. 어떤 균열입니까? 누구보다 배를 책임지고 노를 젓는 사공들이 도망을 치려고 하는 것이죠. 30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그때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죠. 이들이 있어야만 우리 모두의 생명이 안전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그들이 바다에 띄우고자 했던 ‘작은 배’의 줄을 잘랐다고 32절에 전하죠.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도망칠 작은 배도 없고, 각자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소망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만큼 그들 모두가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하는 입장이죠. 그때 바울이 이제 나서서 말을 합니다. 본문 33-37절까지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열나흘 동안이나 마음을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목숨을 유지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떡을 떼어서 나누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함께 떡을 먹었죠. 본문 37절에서는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276명이더라”하고 밝혀줍니다. 왜 누가는 276명의 사람들을 굳이 “우리의 수”라고 강조하는 것이겠습니까? 바울과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에 반해 로마 사람 백부장 율리오나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더욱이 선장과 선주도 바울을 말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죠. 오직 돈이 되는 대로 움직이는 세속의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배의 노를 젓는 사공들 역시 자기 목숨만 건지고자 작은 뗏목과 같은 배를 이용해 달아나고자 했던 사람들이죠. 그만큼 276명의 사람들은 함께 할 수 없는 이질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가의 관점, 아니 그 배 안에서 주님의 역사와 소망의 복음을 전한 바울의 관점은, 그들 모두가 주님의 섭리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우리의 수”라고 증언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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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9절입니다.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이제 날이 새었고, 눈에 띄는 곳에 경사진 해안의 항만이었죠. 그곳에 배를 정박하고자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는 모습이죠. 닻을 끊어버리고, 키를 풀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춰서 해안가로 들어가려고 말이죠.
그런데 41절을 보면 그 해안가는 두 물이 흐르는 곳이라 쉽게 정박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오히려 배 앞쪽의 이물은 부딪히는 상황이라 움직이지 못하고, 배의 뒤쪽 고물은 큰 물결에 부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이라 군인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본문 42절에 보면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하는 상황이죠.
그때 백부장 율리오가 어떻게 명령합니까? 43절에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군사들이 죄수들이 도망칠 것을 생각해서 미리서 죽인다면, 그 자리에 있던 죄수 바울도 죽임을 당할게 뻔했기 때문에, 백부장 율리오는 막은 것이었죠. 그래서 헤엄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육지로 나가게 했고, 헤엄을 못 치는 사람들은 널빤지나 배의 물건을 이용해 육지로 나가게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모두가 상륙하여 구조됐다고 증언해주죠. 이른바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그들 모두가 죽거나 다친 것 없이, 무사히 구조된 모습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이란 자기만을 위한 삶을 버리는 것이요, 나와 관계 맺은 세상의 일부만을 취하려는 행동방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배에는 신앙의 사람 바울과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로마를 목적지로만 삼았다면 사공들과 함께 짜고 달아났을지 모릅니다. 우리라도 목숨을 건져야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걸 정당성으로 내세워 달아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사람은 그 과정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놓치지 않게 하십니다. 바울은 그 배에 타고 있는 백부장 율리오와 자신들을 지키는 모든 군사들까지 함께 해야 할 사람들임을,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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