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행26:1-32)

by 똑똑이채널 2024. 9. 19.
728x90
반응형
SMALL

신임총독 베스도는 자신에게 문안하러 온 아그립바 왕과 여동생 버니게에게 바울의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어떤 도움을 받고자, 동시에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픈 생각 때문이었죠. 물론 아그립바 왕도 바울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했고, 그래서 베스도 총독은 바울을 청문회장으로 불러세웠죠. 그 자리에는 바울을 고발한 유대 지도자들과 장로들, 가이샤라의 권력층들, 아그립바 왕과 여동생 버니게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때 베스도 총독은 지금까지 있었던 논쟁들을 말하면서도, 바울을 처단할 죄목이 없고, 더욱이 그가 로마 황제 카이사르, 곧 제5대 황제 네로에게 상소한 상황이라, 지금은 그를 상소할 자료를 얻고자 불러 세운 것이라고, 아그립바 왕에게 이야기를 하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내용입니다. 베스도 총독의 소개를 받은 아그립바 왕은 본문 1절 말씀처럼 바울에게 곧장 변론할 기회를 줍니다.

바울은 2-3절을 통해 아그립바 왕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4-12절을 통해 자신이 이전에 주님을 만나기 전 예루살렘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명확하게 증언을 합니다. 고향 땅 길리기아 다소를 떠나 10대 시절 예루살렘에 유학을 온 일,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들어가 율법을 수학한 일들 말이죠. 자신이 젊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생활한 삶을 “유대인들이 다 아는 바”라고 4절 마지막 부분에 증언하죠. 더욱이 5절에서는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 중에서도 가장 엄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의 생활”을 따라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노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만큼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 곧 구약의 하나님을 열심히 받들어 섬기던 자였고, 그 까닭에 같은 유대인들처럼, 같은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있는 일로 알았고,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을 색출해 감옥에 처넣고자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의 ‘권한’까지 받아서 활동했고, 그들을 죽일 때 찬성표를 던진 자였다고, 10절에서 증언을 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11-12절은 이런 이야기도 증언합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이른바 이방 지역들까지 들어가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잔멸코자 했던 지난날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아 다메섹으로까지 갔다고 또다시 언급하는 상황입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이어서 본문 13-18절 말씀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빛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완전히 변화된 상황을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13절의 말씀처럼 정오의 태양빛 보다 더 밝은 빛이 자신을 비추는 모습, 14절 말씀처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시는 그 음성, 그래서 바울이 “주여 뉘시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하시는 음성을 자신에게 다가와 주신 주님을 이야기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이전에 모든 것들이 허상이요, 주님 안에서 진정한 실상에 눈을 떴고, 비로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진정한 삶의 목적과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어떻게요? 16-18절의 말씀처럼 너를 내가 부른 것은 너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서 나를 증언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눈을 뜨게 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죄 사함의 은혜를 덧입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셨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변론하는 이 이야기, 다시 말해 그 청문회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에게 간증하는 이 내용은 우리가 어디서 들어본 내용 아닙니까? 맨 처음 사도행전 9장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찾아와 주신 말씀 말이죠. 그때는 오늘 본문처럼 자신이 변론하는 게 아니라 직접 주님께서 찾아와서 대화한 내용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거꾸러지고, 두 눈이 멀고,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에 의해 눈을 뜨고, 곧장 주님의 복음을 증언하는 그런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 말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주님을 만났다는 내용이 어디에 나옵니까? 사도행전 22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하고 유대인들 앞에서 환란을 당할 때, 그때 천부장의 호위를 받아가면서 히브리말로 자신을 찾아와 주신 주님을 간증했죠. 그래서 자신이 달라졌고,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 번째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아그립바 왕을 비롯한 청문회장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변론하는 이 내용을 통해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은 자기 자신을 변론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님을 만난 복음을 증언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에는 그것이 세 번 기록돼 있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도 없이 증언했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다니던 그 13년의 세월 동안에 걸쳐서 말입니다.

다만 사도행전 22장에서 유대인들에게 증언했던 부분이나, 오늘 본문의 청문회장에서 변론한 내용은 공식적인 상황에서 증언한 내용입니다. 더욱이 사도행전 22장의 증언보다 오늘 본문의 변론 내용은 더 길고, 그 의미도 더 깊다는 사실이죠. 특별히 본문 12절을 보시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바울이 자신에게 주님께서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대제사자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이 세상의 권세를 위임받은 이 ‘세상의 개’처럼 살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난 뒤에는 어떻게 변화되었다는 것입니까? 그때부터는 주님의 종으로 ‘위임’받은 ‘주님의 종’이었다는 사실이죠.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나오죠.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하고 말이죠. 그 전까지는 대제사장의 부름받은 사자(使者)로 살았지만 주님을 만난 뒤에는 예수 그리스도 ‘사도’(使徒)가 되었다는 사실이죠.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product.kyobobook.co.kr

 

어떻습니까? 이 정도로 변화되었다고 변론한다면 청문회장에 있던 그들은 모두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의 자녀로 돌아올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본문 24절에서 베스도 총독은 바울에게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하고 비아냥 거립니다. 그때 바울은 아랑곳 하지 않고 베스도 총독을 넘어 아그립바 왕에게 “선지자를 믿습니까?”하고 끌어들이죠. 그러자 아그립바 왕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된이 되게 하려고 하느냐?하면서 역시 비아냥거립니다. 그때 바울은 29절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덧붙이죠.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새번역)그러자 청문회장에 있던 이들이 이구동성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 자는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만한 행위가 하나도 없고, 만일 로마 황제 카이사르 곧 네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석방되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말씀이 끝을 맺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지금 석방 되느냐 되지 않느냐보다, 그 청문회장에 있는 이들이 주님의 복음 안에서 ‘빛의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도 때로 복음과 주님 때문에 결박과 환란을, 우겨쌈과 답답한 일을 당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죠. 그때 우리도 바울처럼 몸이 묶이고 환경에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빛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은혜 속에 거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은혜와 감사의 고백은 모든 영적인 원수들을 물리치는 영적인 창이요 검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899457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