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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결례를 행하고(행21:14-26)

by 똑똑이채널 202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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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과 빌립 집사와 네 딸들은 똑같이 주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결박과 환란의 길이 기다린다는 예루살렘 행을 향해 나가려할 때 바울의 일행과 빌립 집사와 네 딸들은 눈물로 막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본문 14절의 말씀처럼 자기 뜻을 꺾지 않자, 그 일행과 빌립 집사와 네 딸들도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더 이상 바울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 15절입니다.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00km 떨어진 곳입니다. 다만 해발 800m의 고지입니다. 인생 말년의 바울에게 사흘 길이었지만 무척이나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먼 길에 오른 바울 일행의 수는 더 늘었습니다. 몇 명이나 늘어났을까요? 본문 16절입니다.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본래 바울의 일행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와 디모데, 그리고 흉년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을 전달해 줄 고린도와 마게도냐의 각 지역 대표자들이었죠. 그런데 예루살렘을 향해 바울이 가이사랴를 출발할 때 가이샤라의 몇 명의 제자들도 합류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구브로 출신의 ‘나손’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그가 합류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본문은 “이는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나손은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 집에 바울과 그 일행을 묵게 해 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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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장 4절에 이르면,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매듭짓고 고린도를 떠날 때, 바울 일행은 바울을 포함해 8명이었습니다. 그 8명에 마게도냐에서 누가가 합류해서 총 9명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바울이 가이샤랴에서 떠날 때 가이샤라의 몇 제자들까지 합류했음으로 바울 일행은 최소한 10여명이 된 셈입니다. 그들이 모두 한 집에서 머물기에는 적지 않은 숫자요, 그들 모두 재워주고 먹여준다는 것은 나손이 집이 큰 집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이른바 나손은 부자였던 것입니다.

부자는 본래 따질 것도 많고, 눈치 볼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부자 나손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결박당하여 로마 군인에 의해 넘겨질 것을 알면서도 나손은 바울을 따라 가이샤라에서 함께 출발한 것입니다. 구브로 출신의 나손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본문의 시점에 왜 가이샤랴에 있었는지, 가이샤라에서 나손이 바울을 어떻게 만났는지, 왜 그가 바울 일행을 묶게 해 주려고 하는지, 그 동기나 과정은 전혀 없습니다. 본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을 주님께 내던지며 맡길 때, 바울과 그 일행의 숙소까지 책임져줄 정도로, 주님은 바울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우리 앞길을 책임져주신다는 사실이죠.

 

본문 17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마침내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바울 일행을 기쁘게 영접해 주었습니다.

18절입니다.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이튿날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 중에 야고보의 이름만 밝혀줍니다. 야고보란 이름은 사도행전 12장 2절에서 이미 참수형 당해 순교한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죠.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분이고, 예수님의 동생들은 마태복음 13장 55절에 따르면 요셉과 결혼해서 낳은 네 명의 아들을 중에 큰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동생들 중에 큰 동생이 야고보인 것이죠. 동정녀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야고보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태어난 인간이기에, 사실 유사성이 없죠. 하지만 한 배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야고보를 예수님의 동생으로 보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를 만나러 갔을 때,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야고보에게 ‘갔다’고 기록하지 않고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죠? 들어갔다면 차라리 예루살렘교회로 들어갔다고 하는 게 옳을텐데 말입니다. 왜 그렇게 기록했을까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이름은 처음 등장한 곳은 사도행전 12장입니다. 그때는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투옥된 베드로가 참수형 당하기 전, 천사에 의해 베드로가 풀려났고, 곧장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달려가서,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일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야고보와 형제들에게도” 전해 달라고 하죠. 이미 그때부터 야고보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수장’의 위치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야고보 이름이 등장한 곳은 사도행전 15장입니다. 그때는 역사적인 제1회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 때이고, 야고보는 의장이었습니다. 그때 논의한 문제는 이방인들이 주님에게 돌아올 때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교회가 분열될 수 있었는데,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 사람이 야고보였죠. 그만큼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야고보를 찾아갔을 때 “들어갔다”고 경의를 표한 것이죠. 이른바 청와대에 간다고 하지 않고 ‘들어간다’고 하는 격과 같은 것이죠.

사실 야고보는 다른 동생들과 더불어 예수님 살아생전에는 ‘미쳤다’고 할 정도로 예수님을 무시하던 동생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었을까요? 고린도전서 15장 3-8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신 대상이 누군지 나옵니다. 그 대상 가운데 단체가 아닌 개인은 단 세 사람 밖에 없는데,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자기 동생 야고보에게 직접 찾아가 자신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실 정도로, 예수님의 동생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덕분에 예수님께 미쳤다고 했던 동생들은 초대교회의 구심점이 되었고, 야고보는 초대교회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초대 감독이 된 것,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가 된 이유입니다. 누구보다 혈통을 중시하던 유대인들이었기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직계 제자는 아니었지만 초대교회의 우두머리로 모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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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바울과 그 일행이 예루살렘교회의 우두머리인 야고보와 함께 한 장로들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19절 말씀처럼 바울은, 3차 전도여행에 관한 모든 보고를 ‘낱낱이’ 올려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응당 기쁨과 환호성을 내면서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감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의 보고를 청취한 후 야고보가 한 이야기는 사뭇 긴장감이 흐를 정도입니다. 본문 20-21절입니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이른바 예루살렘교회 교인들 사이에 사도 바울에 관한 괴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 곳곳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고,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이죠. 물론 바울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죠. 할례에 대해서도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가르쳤을 뿐이죠. 오히려 디모데 같은 경우엔 할례를 행하게 한 후에 선교팀에 합류하게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헛소문과 괴소문이 바울을 괴롭히고 있었던 거죠.

 

그때 야고보가 어떻게 합니까? 야고보는 바울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바울에게 제안을 하죠. 나실인 서원을 한 네 사람이 있는데 그들과 함께 나실인의 결례를 행하라는 것이죠. 대신에 가난한 그들을 위해 그 비용을 납부해 주라고 권합니다. 그때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우리 같으면 무슨 소리냐고 따질 것 같은데, 바울은 수장인 야고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왜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는 말씀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화평을 위함입니다.

오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헛소문과 괴소문이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 곧 내 자유까지도 내려놓으면서 주님의 화평을 좇아, 일치와 연합을 위해 양보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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