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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두로에 상륙하니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행21:1-6)

by 똑똑이채널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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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전도여행을 매듭짓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3년동안 밤낮 눈물로 주님의 복음을 가르치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주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세워가십시오, 하는 당부였죠. 그래서 살아생전에 다시는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은 에베소 장로들은 엉엉 울면서 차례로 목을 안고 작별의 입맞춤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1절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여기에서 ‘작별하다’는 헬라어 동사 ‘아포스파오’는 ‘떼어내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분리시키는 의미죠. 왜죠?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 밀레도 항구에서 바울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떼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서야 바울은 겨우 배에 오르는데,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겨우 작별한 바울 일행은 밀레도에서 남쪽으로 70km 지점에 위치한 ‘고스’로 갑니다. 무역의 중심지였던 고스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출생지죠. 바울 당시에도 질병을 고치기 원하는 병자들이 원근 각처에서 그 섬을 찾았습니다. 고스 섬이 의학으로 명성을 떨쳤던 만큼 그리스 신화에 의술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도 있었습니다. 그 신전의 벽에 붙어 있는 그림, 곧 바다에서 올라온 아프로디테의 그림은 고대 세계의 걸작으로 꼽힌 작품입니다. 바울이 고스를 도착했을 때 그 걸작이 그 신전에 그대로 걸려 있었는데, 그만큼 고스 섬은 예술이 성행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날이 밝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동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로도’로 갔습니다. 헬라어로 ‘로도스’로 불리는 섬인데 화려한 장미꽃이 피어 있는 곳입니다. 더욱이 ‘로도스’는 웅변과 수사학으로 당시에 유명한 대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도스를 유명하게 한 것은 ‘헬리오스 콜로서스’입니다. ‘헬리오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이고, ‘콜로서스’는 거대한 조각상인데 그것을 줄여서 ‘거상’으로 부릅니다. 주전 305년에 마게도냐 군이 로도스를 침범했을 때 시민들이 힘을 합쳐 마게도냐 군을 몰아냈습니다. 로스드 시민들은 그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청동으로 높이 36m에 이르는 헬리오스 거상을 만들었습니다. 사람 모양을 청동으로 36m높이로 만든다는 것은 당시 기술이나 장비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도스 시민들은 주전 280년 경 12년 만에 헬리오스 거상을 완공했습니다. 헬리오스 거상은 완공과 함께 에베소의 아르테미 신전과 함께 고대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56년이 지난 주전 224년에 지진으로 헬리오스 거상은 무너지고 말았죠. 그런데 그 청동 잔해들이 그 섬의 명물이 되었죠.

이제 로도스에서 배를 탄 바울은 일행과 함께 동쪽으로 85km떨어진 소아시아 반도남쪽 항구 ‘바다라’로 갔습니다. 바다라는 해상 무역 항구 도시로서, 그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수백 척의 상선들이 경유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본토의 델피 신전에 필적할만한 아폴로 신탁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일행과 함께 밀레도를 출발해서 거처간 곳은 그저 그렇고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소아시아 반도 연안의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빼어난 곳들이었습니다. 평생 지병에 시달렸던 바울은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이자 유명한 의학교가 있는 모든 병자들의 이상향인 고스 섬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질병을 고치면서 육체적으로 편안한 노후를 지낼 수도 있었고, 뛰어난 설교자였던 바울은 웅변과 수사학이 발달한 장미의 섬 로도스에서 웅변과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보다 안정된 노후를 살아갈 수도 있었고,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항상 수백 척의 상선들이 경유하는 바다라에서 천막제조업으로 큰 돈을 벌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육체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는 그 섬들을 경유지로만 삼을 뿐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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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절입니다.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바울 일행은 목적지인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바다라에서 베니게로 직행하는 배를 탔습니다. 베니게는 오늘날 ‘레바논 지역’으로서 당시 로마 지역의 행정 구역상 ‘수리아’에 속해 있는 항구입니다. 바다라에서 지중해를 건너 베니게까지는 해로로 약 650km였습니다. 당시 선박으로 1주일이 소요되는 거리였죠. 그 먼 거리를 한 번에 직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상선이어야만 했습니다. 작은 연안선을 타고 밀레도를 출발해서 고스와 로도스를 거쳤던 바울 일행은 해상 교통의 요충지인 바다라에 이르러서야 베니게로 가는 큰 상선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절을 통해 조명해 주는 곳이 있죠.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바울 일행인 탄 배는 지중해를 횡단해서 화물을 풀기 위해 베니게의 ‘두로’ 항에 정박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탄 배가 지중해를 횡당하는 동안 바울이 ‘구브로 섬’을 바라봤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말 ‘바라보다’는 동사는 ‘나타나다’는 뜻입니다. 배를 타고 여행하다보면 앞에 나타난 섬이 서서히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모습이죠. 바울이 탄 배 앞에 200km 북동쪽으로 뻗어 있는 구브로 섬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그 해로에서 최소한 만 하루 이상의 밤낮으로 그 구브로 섬을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터키 대륙을 일컫는 소아시아 반도의 연안에는 수 없이 많은 섬들이 있었을텐데 왜 하필 ‘구브로 섬’을 조명한 것일까요? 길이 200km에 달하는 구브로 섬이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컸기 때문일까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구브로 섬은 바울의 첫 전도지였습니다. 지금은 약 13년에 걸쳐 세 차례 지중해 세계를 전도 여행의 끝지점에 그 구브로 섬이 바울 앞에 나타난 것이죠. 약 13년 만에 바울이 전도여행의 원점을 지금 스쳐지나가고 있는 셈이죠. 그렇기에 구브로 섬을 보면서 바울은 13년의 세월 동안 자신을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는 화면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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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울이 탄 배는 약 1주일 동안에 지중해를 횡단해서 베니게의 ‘두로 항’에 화물을 풀기 위해 정박합니다. 구약성경에서부터 등장하는 두로는 팔레스타인에서 고대세계 최대의 해운 도시였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왕궁과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백향목 일체와 기술자들을 지원한 도시였죠. 주전 65년부터 로마제국의 자유무역도시로 편입된 두로는 로마 제국의 번영과 함께 더 큰 부를 누렸지만, 그와 정비례해서 극심한 타락의 도시였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바울 일행은 그곳에 주님의 제자들을 찾아 7일을 머뭅니다. 과연 그 제자들은 어떤 제자들일까요? 마가복음 7장은 예수님께서 두로를 직접 방문하셔서, 귀신들린 소녀로부터 귀신을 좇아주셨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두로에는 주님을 영접한 제자들이 있었던 것이죠. 또 사도행전 15장 3절에 의하면 1차 전도여행을 끝낸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베니게의 ‘두로’에 들러 그곳의 제자들을 찾아 믿음을 굳건하게 한 일이 있죠. 이후 만 10년 만에 다시금 그때 그 제자들을 7일 동안 머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에베소 장로들처럼 바울에게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의 환란과 결박의 길로 나가지 말라고 만류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하면서 주님의 사명이기에 가야 한다고 밝혔겠죠.

그때 본문 5-6절에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과 밀레도 항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위 사람들은 전혀 게의치 않고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두로의 제자들과 함께, 그들의 처자와 함께,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대체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두로의 제자들은 바울이 결박과 환란의 길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바울은 두로의 제자들이 타락의 도시 두로에서 끝가지 믿음을 지킬 수 있기를, 서로 기도해 주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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