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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행20:13-38)

by 똑똑이채널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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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이 드로아에 도착해서 한 일은 다음날 곧장 예루살렘을 향해 가야 했기 때문에 곧바로 성찬식을 거행했고, 다음날 새벽까지 말씀을 강론했죠. 우리식으로 말하면 부흥회 곧 말씀 사경회를 한 것이죠. 그때 젊은 노예 유두고가 말씀을 피곤을 못 이겨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그가 다시 살아났고, 교회와 성도들은 더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이제 바울은 날이 새자마자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장 예루살렘을 향해 서둘렀습니다. 그 모습을 본문 13-15절에 이렇게 증언하죠.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바울은 드로아에서 일행을 배를 태워 앗소로 보냈고, 자신은 걸어서 앗소까지 간 것입니다. 앗소는 드로아에서 해안가를 따라 33km 정도의 거리입니다. 그곳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겠죠. 그리고 이제 앗소의 항구에서 일행과 만나 배를 타고 ‘미둘레네’로 가고, 미둘레네를 떠나 다음날 ‘기오’앞을 지나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그리고 그 다음날 ‘밀레도’ 항구에 도착을 합니다.

어떻습니까? 무척이나 숨 가쁘게 가는 상황 아닙니까?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드로아-앗소-미둘레네-기오-사모 그리고 밀레도까지는 약 300km에 달하는 먼 거리입니다. 바울 일행은 그 먼 거리를 숨 쉴 틈도 없이 이동해 온 것입니다.

왜 바울 일행이 그렇게 서두르는 것입니까? 본문 16절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는 최종 목적지를 예루살렘으로 정했고, 그곳을 오순절 전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그렇게 급히 서둘렀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인 교회들이 모은 연보 곧 헌금을 전해주기 위함이었고,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목적 때문에 숨 가쁜 여정길을 나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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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7절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까지는 45km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까지 사람을 보내 교회 장로들을 청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오고가면 적어도 이틀이나 많게는 나흘은 더 지체되는 상황이죠. 그런데도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굳이 청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지난 3년 동안 사역했던 에베소 교회를 다시는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25절에서 그 사실을 고백하죠.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래서 바울은 그 교회를 향한 마지막 설교를 하며 당부하고자 빠듯한 그 시간을 잠시 멈춰세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루살렘으로 향해 달려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뒤에 남겨진 교회를 견고히 세우는 일 역시 소중한 사역이었기 때문이죠.

본문 18절 이하의 말씀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들려주는 바울의 고별설교입니다. 먼저 바울은 19-21절을 통해 이렇게 설교합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은 에베소에서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19절과 20절과 21절에 각각 ‘섬기다’, ‘가르치다’, ‘증언하다’는 동사가 나옵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 동사들이 병렬식 같지만 원문은 20절과 21절이 19절에 종속돼 있습니다. 19절에서 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고 하는데, 20절과 21절이 구체적인 예라는 것이죠. 유익한 것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믿음을 증언한 그 모든 것들이 실은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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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9-30절은 에베소 교회에 이단들이 일어날 것을 경고해 줍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이단들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도록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을 따르게 하고자 하는 무리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자신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가르치고 믿음을 증언한 게 아니라는 것이죠. 오직 주님을 섬기기 위해 유익한 것을 가르쳤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 나오는 ‘섬기다’는 원어 ‘둘류오’는 주님의 ‘노예가 되어 섬기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핍박이나 음해도 인내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주님의 노예라는 신분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만큼 바울은 잘 갖추어진 조건에서 편하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비방과 방해와 모욕과 위협이 뒤따랐죠. 그런데도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노예로 그 모든 어려움과 환란을 겸손과 눈물로 감내해 내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이토록 자신의 삶과 사역을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위함입니까? 아니죠. 이제 자신이 떠나면 앞으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 에베소 교회를 지켜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자신의 삶과 목회를 에베소 장로들에게 롤모델로 제시한 것이죠. 본문 31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자신이 3년 동안 주님의 노예가 되어 눈물로 섬긴 것을 여러분들도 아시듯이, 이제는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과 자세로 에베소 교회를 잘 보살펴주기를 바랍니다, 하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더 부탁을 합니까? 본문 32절을 보면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성도들에게 부탁한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에베소 교회를 세워나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죠? 바울이 개척한 에베소 교회에 향후 이단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뒤흔들어 놓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왜곡하지만, 그런 이단들의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데 있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교회를 세워가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건강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다들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 곧 교회의 지도자를 보는 경향이 강하죠. 교회의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교회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교회의 지도자를 절대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교회를 잘 세워가길 당부했지만 그 초점은 오직 은혜의 말씀에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는 한계가 있고, 또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주님의 말씀은 세세무궁토록 존재하기 때문이요, 교회는 말씀의 터 위에 세워져야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에도 그런 은혜가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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