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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바울이 전한 복음 때문에 자기 수입원이 끊길 것을 염려하여 여러 동업자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러자 군중심리에 이끌린 에베소 시민들도 동참했는데, 그들은 바울과 함께 다니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죠. 그때 바울이 들어가고자 했지만 들어갔다가는 죽임을 당할 게 뻔했기에 동료들은 말렸죠. 연극장 안에 있던 유대인 출신 알렉산더, 데메드리오처럼 은장색이었던 그는 유대인들의 뜻을 변론하려고 했지만 에베소 시민들이 유대인이라 그를 거부했고, 대신에 그 군중들은 “위대한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여!”하며 두 시간 동안이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때 무장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런 군중들의 무분별한 시위와 선동질을 정리해준 사람이 있었죠. 바로 그곳의 서기장이 그였습니다. 그는 바울의 동료였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아데미 신전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데미 신을 모독한 것도 아니니 이쯤 해서 그만두라고 말했죠. 만일 고소할 거리가 있으면 재판 날이나 총독에게 직접 하라고 하면서 말이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총독과 내가 로마 정부로부터 문책을 받을 수 있으니, 이런 불법 집회는 이제 그만 두고 각자 흩어지도록 명했습니다. 한 사람은 선동질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선동질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 셈이죠. 저와 여러분들의 삶도 후자의 삶이 되는 그런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일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이른바 에베소에서 자기 사명을 다한 바울이 일행을 불러 이제 에베소를 떠나기로 작별을 고하는 상황이죠. 그리고 2차 전도여행때 처음 밟았던 마게도냐 곧 유럽을 향해 나아가는 상황입니다. 이른바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까지 건너갔고, 그래서 도착한 항구 도시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에 들어갔던 그 길목 말이죠.
그리고 본문 2-3절 상반절입니다.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이른바 2차 전도여행 때 처음 들러서 복음을 전했던 마게도냐의 지역들을 돌아다닌 것이었죠. ‘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 지방 말입니다. 그 지방들을 다니며 교회 성도들을 믿음에 굳세 서도록 권면한 이후에 이제 ‘헬라’에 이르렀죠. 여기에서 말하는 ‘헬라’란 곧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는 2차 전도여행 때 베뢰아를 떠나 배를 타고 아테네에 갔다가 내려간 곳이 바로 고린도였죠. 바로 그 노선을 따라 헬라 곧 고린도에 이르러 3개월 가량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 3개월 동안에 걸쳐서 바울은 로마서를 써 보냈던 것이죠. 고린도에서 서쪽으로 아드리아해를 건너면 곧장 로마에 당도할 수 있는 위치였으니, 그래서 로마서를 써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냈던 것이죠.
그 뒤 바울은 배를 타고 ‘수리아’ 곧 최초목회지인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이것은 3차 전도여행의 목적지였던 에베소에서 자기 사명을 다한 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2차 전도여행지들을 순회한 후에 마지막에 고린도에 외항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로 왔다가 가이샤라로 왔던 그 길목, 곧 2차 전도여행의 코스대로 돌아보며 안디옥교회로 올 계획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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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본문 3절 하반절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곳 고린도의 외항 겐그레아까지 가서 배를 타고 에베소에 갔다가 가이샤라에 상륙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공모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죠. 그래서 그 길목을 다시 틀게 됩니다. 어떻게요? 처음 왔던 길목들으로 가죠. 고린도-베뢰아-데살로니가-빌립보로 말이죠. 그래서 빌립보에서 항구도시 네압볼리로 나가 배를 타고 드로아로 오는 길을 택하죠. 그런데 바울은 그곳 빌립보에 잠시 남아 있고, 몇 몇 동역자들을 먼저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게 한 상황입니다.
거기에 누가 동행했습니까?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 사람 ‘가이오’, ‘디모데’,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죠. 여기에서 소바더와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는 마게도냐 사람이고, 가이오와 디모데는 갈라디아 지역 사람이죠. 그리고 두기오와 드로비모는 아시아 사람들이니다. 뭐랄까요? 유럽대륙과 갈라디아와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연합한 것입니다. 이질적인 그들이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것이죠. 물론 그들 뿐만 아니라 줄곧 전도여행을 같이한 실라도, 바울의 주치의요 사도행전을 쓴 누가도 합류했겠죠.
그 중에 7명은 먼저 아시아의 드로아로 보낸 것이고, 실라와 누가를 포함한 바울 일행은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닷새만에 드로아에 당도했다고 본문 6절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왜 5일이나 걸렸을까요? 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고 유럽 대륙의 빌립보로 건너갈 때는 하루나 이틀 정도 걸렸습니다. 그때는 중간에 있는 ‘사모드라게’라는 섬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사모드라게라는 섬을 거쳐서 되돌아 왔기에 5일이나 걸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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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울과 실라와 누가까지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을 합니까? 본문 7절입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바울 일행은 유월절이 지난 그 첫주간의 날에 ‘떡을 떼려고’ 했습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예배와 성찬식을 거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음날 떠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늦게까지 강론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본문 9절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서 복음을 듣다가, 그만 졸음을 이기지 못해 3층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유두고’라는 이름은 ‘복되다' 혹은 ‘다행하다'는 이름의 뜻을 지닌 그 당시의 노예들의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노예로서 낮에 일하고 나서 다음날 떠나야 하는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찾았다가 그만 피곤해서 떨어져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다가, 설교 말씀을 듣다가, 오늘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야말로 모두가 놀라 당황하게 되겠죠. 교회의 큰 시험거리가 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어떤 요동도 없이 바울은 떨어진 유두고라는 청년에게 갔고, 그 청년위에 엎드려 그의 몸을 안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죠. 이것은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방법(왕상17:21-22,왕하4:34-35,마9:23-25,막5:39)이자,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릴 때(행9:36-42) 행한 모습과 같은 격입니다.
바울이 그때 사람들에게 말하죠. 본문 10절 중반부처럼 “소란을 피우지 마십시오. 아직 목숨이 붙어 있습니다”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가 살아났고, 바울과 그 모인 무리들은 주님의 성찬을 떼면서 새벽까지 말씀을 나눈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살아난 그 유두고를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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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을 좇아 살 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딱드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로 건너와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는데, 자객들이 죽이려는 일이 발생한 것처럼 말이죠. 또 드로아에 건너와 열심히 밤늦게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에서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죠. 그렇게 우리의 예상과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당할 수 있는데, 그때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거나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도와주실 역사가 분명코 있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죠. 오늘도 그런 은총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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