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행19:8-22)

by 똑똑이채널 2024. 8. 29.
728x90
반응형
SMALL

 

바울이 3차 전도여행때 수리아-길리기아 다소-갈라다아 남부의 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에 이어서 이제 아시아의 에베소 지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대언변가요 구약성경에 능통한 아볼로라는 자가 세례 요한을 통해 전해진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죠. 그로 인해 주님의 제자들도 생겼는데,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이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고, 안수했을 때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죠. 그 표증으로 방언과 예언을 했는데, 그 방언과 안수가 외적 은사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내적인 은사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했죠. 방언의 궁극적인 목적이 주님과 소통하고 또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소통력을 넓히는 데 있고,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과 감화를 받은 것처럼 그의 입술의 말과 삶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화를 줄 수 있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자의 표증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8-9절 상반절입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 제자들을 만나 세례를 베풀고 성령께서 임하신 그 표증을 본 이후에, 이제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복음을 전한 기간이 몇 달이었습니까? ‘석 달’이었습니다. 석 달 동안 복음을 강론하고 권면했던 거죠. 그런데 어떤 결과가 초래되고 있습니까? 그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도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죠. 오히려 어떤 유대인들은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어서 바울이 전한 주님의 복음을 비방하고 나서는 상황이었죠. ‘비방했다’는 것은 복음의 훼방꾼 노릇을 했다는 뜻입니다.

이때 바울이 느끼는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야말로 힘이 빠지는 상황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 지역을 떠나버립니까? 본문 9절 하반절에서 10절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바울은 훼방꾼들을 피해 ‘제자들을 따로 세워’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강론하는 상황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역대기서 읽고 묵상하기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

ebook-product.kyobobook.co.kr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제자들을 따로 세우다’ 할 때, 그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사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 누구를 데리고 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 시작점을 알리는 사도행전 18장 23절은 이전에 1차 전도여행 때처럼 바나바를 데려갔다거나 혹은 2차 전도여행 때처럼 실라와 함께 출발했다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바울이 혼자 떠난 격이지만, 본문 22절을 보면 디모데도 함께 했고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도 주치의로 함께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본문에서 말하는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킨 것일까요? 그들은 어제 읽은 사도행전 19장에서 만난 아볼로의 제자들, 곧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이들에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된, 바로 그 제자들이 이제 바울을 따른 주님의 제자들이 된 것이었죠. 물론 그들만 ‘따로 세운 것’은 아니었겠죠. 이미 바울이 오기 전에 에베소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던 브리스길리와 아굴라 부부에게 주님의 도를 전해 듣고 주님의 제자가 된 이들이 있었겠죠. 지금 그들도 바울이 ‘함께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3개월간 유대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는데,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훼방했지만 드러내놓고 복음을 찬성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중에는 주님의 복음을 따른 자들도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주님의 제자들을 합해 두란노 서원에 ‘따로 세워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두란노 서원’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우리말 ‘서원’은 헬라어로 ‘스콜레’입니다. 이 단어에서 바로 영어단어 school이 파생된 것이죠. 하지만 본래 ‘스콜레’는 토론이나 논쟁을 하기도 하고 강연도 하면서, 사람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는 다목적 공간입니다. 물론 고대 로마 제국시대에는 그런 ‘스콜레’가 흔했다고 전해지죠. 본문에 언급된 ‘두란노 서원’은 에베소에 살고 있던 ‘티란노스’라는 사람의 스콜레입니다. 그 스콜레 주인이 ‘티란노스’였다는 것이죠. 베자 사본에 따르면 오전에는 주인 티란노스가 자신의 스콜레를 사용했고 그가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바울이 빌려서 매일같이 이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시간대는 사람들이 한 낮의 일을 멈추고 잠시 낮잠을 즐기는 시간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바로 그런 시간대를 구별해서 그 스콜레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했던 것이죠. 그것도 2년 넘게 그 스콜레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놀랍게도 아시아 지역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이 일어났죠. 그런데 더 놀라운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바울이 2년 넘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쳤을 때 성령의 표적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여기서 말하는 손수건과 앞치마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텐트를 제작해서 먹고 살았던 바울이기에 천 조각을 허리에 묶어두었다가 땀 흘릴 때 닦았던 것이죠. 요즘 용어로 손수건이라 할 수 있죠. 또 허리에 작업복 대용으로 늘 걸쳤던 것이 있었죠. ‘앞치마’라 하는 거죠. 허드렛일로 사용하던 것들을 주의 도구로 사용하신 거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book-product.kyobobook.co.kr

 

그런데 본문 13-17절에서는 그런 바울의 모습을 보고 흉내를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마술사 유대인들, 이때의 마술사는 무당들을 일컫는 것인데, 그런 무당들이 바울처럼 귀신들린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고, 또 유대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도 바울처럼 귀신들린 자에게 명하는 일이 있었죠. 그런데 오히려 귀신들린 사람이 그들 위에 뛰어올라 그들을 누르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본문 17절에서 밝혀주듯이,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그 사실 앞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며 주님 앞에 자복하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일어났죠. 그 중에는 19절의 말씀처럼 유대인 ‘마술사’, 그 마술사는 무당과는 다른 사람들의 눈속임을 하는 마법사들인데, 그런 마법사들조차도 여태껏 모은 책들을 다 불살라 버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은 책값만 해도 ‘은전 오만’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은전 하나는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렇다면 오만 일에 해당하는 임금의 돈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한 사람이 1년 365일을 쉬지 않고 일한다면 무려 137년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실은 그렇게나 많은 돈을 모으면서 에베소 사람들을 현혹시켜왔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 그들이 주님의 도를 믿고 회개하면서 자신들의 책을 사람들 앞에서 불태워버렸던 것입니다. 왜 이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까? 복음의 능력은 주문을 외우거나 누군가를 따라 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그런 차원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마술의 힘에 의지해서 살고자 하는 자들과 전혀 다를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역사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과 감화를 받은 그 삶을 살아갈 때 성령님이 자연스럽게 일상의 도구처럼 역사해 주신다는 거죠. 본문 21-22절 말씀은 바울이 이제 그곳 에베소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다시 말해 2차 전도여행때 성령님께서 이끄셔서 복음을 전한 유럽 대륙과 고린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도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죠. 그러면서 자신을 돕는 주님 동역자 중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신은 아시아 곧 에베소에 더 남는 상황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말씀의 사람이 되면 성령님께서는 그 말씀 속에서 성령의 능력과 표적을 나타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2년 넘게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에 집중할 때 성령께서 손수건과 앞치마와 같은 일상의 도구로도 역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말씀의 역사, 성령님의 역사가 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book-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