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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요한복음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요20:1-18)

by 똑똑이채널 202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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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분의 무덤을 누가 먼저 찾아갔습니까?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니고데모였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11명의 제자였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맨 먼저 찾아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죠.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주님께 치유를 받은 여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전도여행때 함께 하면서 주님과 제자들의 식사를 공궤한 여인이었습니다. 또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본 여인이었죠. 그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어두운 새벽녘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가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본 것이죠.

여기에서 “아직 어두운 때라는 것은 육안으로 잘 분별하기 어려운 시간적인 때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제자들의 영적 상태가 아직 어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를 암시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 말씀처럼 막달라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말을 하는 것이죠. 그 소식을 들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그들 두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으로 향하죠.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표현을 썼죠. 사실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부모가 자식 가운데에 더 사랑하는 것은 막내에 대한 애정과 연약함 때문이죠.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이 어떻게 합니까? 본문 4절에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둘이 달음질할 정도로 더 빨리 달려가 확인하고픈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함께 사역할 때에 열 두 제자들을 괴롭히던 것은 경쟁심이었습니다. 그 집요한 경쟁 심리는 예수님의 무덤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물론 예수님의 애제자 요한의 승리로 끝납니다. 수제자 베드로보다 더 젊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무덤에 먼저 도착한 요한은 그 무덤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그 몸을 구부려 봅니다. 여기에서 요한의 조심스러운 성품 그리고 수제자요 연장자인 베드로에게 먼저 양보하는 마음을 읽어볼 수 있겠죠. 반면 6절의 베드로를 보면 어떻습니까? 무덤에 도착하자마자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베드로죠. 베드로의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행동이 먼저 앞서는 성격의 소유자죠.

베드로가 주님의 동굴 무덤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빈 무덤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때서야 요한도 들어가서 빈 무덤임을 확인하게 되죠. 그 모습을 본문 8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때서야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게 사실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보고 믿더라”하는 말은 주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게 아닙니다. 단지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는 빈 무덤을 부활의 믿음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이나 베드로나 막달라 마리아는 마찬가지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수차례 걸쳐, 적어도 세 번에 걸쳐,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연거푸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때까지도 그 사실을 깨닫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요, 그때까지 설마 주님께서 죽으신다는 것은 상상치조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 ‘빈 무덤을 보고 믿긴 믿었지만’ 그것을 부활의 믿음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던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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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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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본문 10-11절입니다.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베드로와 요한은 그렇게 비어 있는 무덤을 확인한 후에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며 그 무덤 안을 들여다 본 것이죠. 과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이 열두 제자들의 사랑보다 더 깊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 두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죠. 마리아가 그 천사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사람들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고 말하죠. 그리고 14절이 이렇게 증언해 줍니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그 천사들을 천사가 아닌 어떤 사람들로 생각한 마리아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로 옮겨두었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물어 본 상황이죠. 혹시 예수님의 시신을 옮겨간 사람들을 보지 않았느냐는 뜻이었죠. 그렇게 하고 우연히 뒤를 돌아봤는데, 거기에 바로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이 예수님인 줄 몰랐다고 증언하죠. 마리아가 이전에 예수님을 본 게 한 두 번도 아닌데 말입니다. 왜 그녀가 예수님을 그때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을까요? 주님께서 이전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나타나셨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마리아가 몰라본 것입니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리아의 머리속에는 온통 예수님의 시신 때문에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고, 그 까닭에 그녀의 시선은 무덤 안에만 고정돼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누가 말을 해도 온통 신경은 무덤 안을 향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어도 관심이 없었던 것이죠.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을 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왜 울고 있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마리아의 시선은 주님을 향한 게 아니었죠. 여전히 무덤 안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자신의 등 뒤에 두고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가 대화를 나누는 곳은 무덤 안이 아니라 무덤 밖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온통 주님의 죽으심과 무덤 안에만 관심을 두면 부활과 무덤 밖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고통과 괴로움만 바라보면 고통과 괴로움 밖에서 역사하시려는 주님의 소망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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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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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것은 믿음 없는 제자들, 믿음 없는 막달라 마리아를 주님은 책망치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16절 말씀처럼 오히려 주님께서 “마리아야”하고 다정하고 불러주셨습니다. 나는 연약할지라도, 이삭처럼 연약하여 그랄에 머물고 있을지도, 주님께서 먼저 찾아와 소망을 주신 것과 똑같은 거죠.

그때 마리아가 주님을 붙들었는지,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우리 말 ‘붙들다’로 번역된 헬라어 ‘합토마이’는 손을 대서 잡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주님은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부여하시죠.

그만큼 주님의 부활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으로서의 사명이 있다는 것이고, 너는 너대로의 사명의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부활신앙의 일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부활 신앙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두 눈을 가진 신앙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한 눈으로는 이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며 사는 시선 말입니다. 그를 통해 우리의 일상이 부활신앙의 삶을 증거하는 삶이 되는 것 말입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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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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