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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전개)성공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성공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삶 자체가, 성공을 우상으로 여기는 삶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아니라 내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이죠.
유명한 팝 가수 마돈나는 자신에게 찾아온 성공의 유혹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강철 같은 의지를 갖고 있다.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끔찍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언제나 내 모든 의지를 쏟아 부었다.
그 순간을 한 차례 넘기고 나면 내가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지만, 그런 다음 또 다른 무대에 서면 내가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평범해질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공포심이 내 인생을 움직이는 힘이다.
언제나 그 공포가 나를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인다.
이미 대단한 사람이 되었건만 여전히 나는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런 나의 투쟁은 끝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성공이라는 우상에 휩싸이는 순간 잠시 쉬는 휴식조차 공포의 순간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연예인들이 인기가 추락할 때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도, 마약을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연예인들은 다 잘나가는데 자기 자신만 뒤처지고 연예계에서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말입니다.
(적용)우리도 실은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힘으로 성공하는 삶을 증명해보이려는 것 말입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어느 순간 나를 과시 모습으로 변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 자체가 나를 중심에 놓는 우상숭배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예화)엊그제 제가 다쳤다면서 위로차 방문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이 커피를 사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무릎이 아파서 서울에서 검진을 받고 왔고 이제 친구들과 모임을 위해 여수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수에서 밥을 먹는데 가장 잘 나가는 친구가 밥을 샀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밥을 먹은 후에 여러 친구들 앞에 위암이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하더라는 것이죠.
안타깝긴 했지만 다들 그 친구 덕에 좋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습니다.
이후에 목포로 돌아왔는데 그 친구가 목사님에게 자기 김 공장과 집이 있는 압해도로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갔더니 그 친구가 돈 봉투를 내 놓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여태껏 잘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지냈는데 위암에 걸리고 나니까 하나님이 보이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태껏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십일조를 모두 모아서 이 목사님께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이 목사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안수기도를 해 줬다고 하죠.
(깨달음)이게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도 평생 감사할 일인데 축복의 문을 열어주셔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게 하셨을때는 더더욱 겸손하게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된 채 하나님은 밖에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우상화한 모습이죠.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깨트리도록 위암을 주셨고 위를 잘라낼 때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예비하신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적용)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엮어나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저버린 채 내가 중심이 되고 내 성공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이 밀려나 있다면 우리도 나 중심의 우상을 섬기는 자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릇된 마음을 깨트리시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엮어나가길 원하시는 아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역배)에베소서는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의 가택연금 상태에 처해 있을 때 써 보낸 편지라고 했죠.
그때 바울은 본문 1절의 말씀처럼 주 안에서 갇힌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때문에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해 그렇게 감옥과도 같은 상태에 갇힌 것이었죠.
바울의 그 모습은 상처받은 치유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겪고 있는 그 아픔과 괴로움을 통해 누군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위로와 힘을 주신다고 말이죠.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굶주림에 처하고 파선당하고 강도떼를 만나고 돌팔매질로 죽음에서 살아난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지금은 가택연금 상태에 처했을 때 바울이 써 보낸 편지를 읽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큰 위로와 힘을 얻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죠.
지난 주에 살펴본 말씀은 ‘평안의 매는 줄’이었습니다.
줄은 ‘매듭’ 곧 ‘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헬라어 단어 ‘쉰데스모스’(σύνδεσμος)는 ‘본드’로도 쓰인다고 했습니다.
떨어진 실내화를 붙이는 게 본드이고 장맛비에 쓰러질지 모르는 고추를 지줏대에 묶는게 끈이라고 말입니다.
바울이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의 믿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바울은 교회의 핍박자요 그리스도인의 대적자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을 향해 체포조를 동원해 길을 떠난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그날 정오의 태양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주님이 찾아왔죠.
그때 말로만 듣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으니 얼마나 놀랍고 또 감격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그 빛으로 바울은 눈은 떴지만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다메섹의 아나니아를 보내 바울을 품도록 하셨는데 아나니아는 바울이 어떤 자인지 알기 때문에 거부했죠.
하지만 주님께서 재차 말씀하시자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갔고 바울을 ‘형제 사울아’하면서 형제로 품어줬죠.
그것이 바로 평안의 매는 줄 곧 바울을 주님께 붙어 있도록 한 본드와 같은 역할을 한 아나니아였지 않겠습니까?
그 후에 또 한 번 주님께서 바울을 평안의 매는 줄로 묶은 일이 있었죠.
바울이 다메섹을 거쳐 아라비아 3년간 경건 훈련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유대인들은 변절자 바울을 죽이려고 했죠.
그때 바나바가 바울을 고향 땅 다소로 보냈는데 그로부터 7년간 칩거하면서 기도생활과 삼층천세계를 체엄하죠.
그리고 7년이 지난 어느날 바나바가 다소로 와서 안디옥교회의 공동목회자로 섬기자고 초청을 하죠.
그때부터 바울은 목회자가 되고 또 3년 이후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주님께 완전히 붙어 있는 삶, 주님의 자녀들과 한 몸으로 묶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바나바가 바로 그와 같은 주님의 끈이자 주님의 본드로 보냄을 받은 자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인생길에 그런 본드와 같은 사람, 끈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주님 안에서 살 수 있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에베소교회를 세울 때 그와 같이 주님의 본드요 주님의 끈으로 서로를 위해 살라고 당부하는 것이죠.
(깨달음)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우리가 홀로 설 수 있겠습니까?
내 믿음 하나 지키기에 버거운 세상 아닙니까?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님께 붙어 있도록 본드가 되어 주고 서로를 주님께 묶는 끈이 되어 줄 때 온전한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이죠.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부르신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본문)오늘 읽은 본문 4-6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원해)여기에 강조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강조하는 단어는 계속 반복되는 단어죠.
바로 ‘하나’ ‘한 분’ ‘하나’입니다.
몸도 ‘하나’ 성령도 ‘한 분’ ‘한 소망’ 주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하나님도 ‘한 분’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를 가리키는 헬라어 ‘에이스’(εἷς)는 영어로 ‘one’입니다.
4-6절까지 그 단어가 무려 7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깨달음)왜 바울이 에이스라는 단어 곧 ‘하나’라는 단어를 계속 강조하는 것이겠습니까?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세울 때 에베소 사람들이 어떤 우상을 좇아 섬기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름하여 아데미 신입니다.
에베소는 당시 인구 30만명 목포시보다 10만은 더 되는 사람들이 2만5천명을 수용하는 원형기장에 모이기도 했고 거대한 목욕탕과 시장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에베소 사람들은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데미신을 숭배했는데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더 큰 신전입니다.
이 아데미 신은 몸에 24개의 가슴을 지니고 있는데 그만큼 다산과 풍요를 좇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입니다.
그러니 해외에서 온 장사들은 다들 그 신전 앞에서 빌었고 그 장사치들을 위한 숙박업이 성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바울이 그런 에베소에 들어가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평일에는 천막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데 3개월 가량 전할 때 믿는 이들도 있었지만 거부한 이들도 많았죠.
그 후에 티란노스 스콜레 곧 두란노 서원을 빌려서 2년 넘게 복음을 전하는데 바울이 일할 때 쓰던 거덕데기와 천조각으로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에게 놓으면 다 고침받고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죠.
그때 마술 책으로 마술을 펼치던 이들조차 자기 마술책을 다 불태우고 주님을 믿겠다고 바울에게 나온 이들도 있었죠.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그 좋은 일 이후에 에베소의 데메드리오라는 구리세공업자가 나서서 무리를 선동해서 연극장으로 달려갔죠.
바울이란 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아데미신상을 구리로 만들어 파는 그 장사가 막혀버리기 때문에 괜히 민중을 선동한 것이었죠.
그렇게 에베소 시민들을 불러모아 2만5천명이 모이는 연극장에 달려가 ‘아데미여 위대한 신이시여’하고 2시간 가량 열광하는 것이죠.
다행히 에베소의 행정관이 그 모임을 해체시켰는데 바울은 그때 그들의 위협을 느끼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되죠.
그러니 왜 바울이 지금 로마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편지를 쓰면서 ‘하나’를 강조하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자기 욕망을 좇아 에데미 신을 숭배하고 또 갖가지 신을 숭배했던 그 마음에서 이제는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가슴이 24개나 되는 아데미신을 숭배하면서 자신의 풍요와 성공을 빌고 빌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 친밀하도록 원하는 것입니다.
(적용)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짐나 자기 욕망이나 자기 성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절을 찾고 무당을 찾아 굿을 하는 크리스천 말입니다.
불교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뉴진스님이란 분 곧 옛날 개그맨 윤성호도 실은 신학대학을 다니다가 그만 두고 개그맨이 됐고 중생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자기 인기를 위해 스님 흉내를 내며 공연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거기에 현혹된 젊은 크리스천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두가 자기 욕망 자기 성공을 위해 하나님은 제쳐놓고 엉뚱한 신을 향해 빌고 비는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도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내가 욕망하는 것이 있고 내 성공을 위한 길이라면 하나님을 제쳐놓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아데미의 여신은 가슴이 24개나 있어서 다산과 풍요로 나에게 복을 줄 것만 같은 그런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살고 있지 않는가?
(원성)하지만 시편 115편 4-8절에서 우상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는지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4-8)
(깨달음)본래 아브라함도 우상을 만들어서 팔던 우상장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우상이란 인간이 욕망하는 것을 형상으로 만든 것이죠.
그러니 산에 나무로 빚어 만들거나 돌로 만들거나 구리세공업자가 만든 작은 아데미 형상의 모형이라거나 그 모든 신상들은 실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들이죠.
엄밀히 따지면 우상은 없는 것이고 인간의 욕망이 실은 우상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의 말씀을 받고 있을 때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을 만드는데, 그때 금붙이를 모아 불에 넣고 만든 게 황금송아지였죠.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 형상으로 빚어만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그들이 영향받은 형상의 신이 황금송아지였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들의 욕망하는 마음에서 빚어낸 것이었죠.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황금송아지를 숭배하는 크리스천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적용)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과 소아시아 7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서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만 섬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내가 땅에 있든 하늘에 떠 있든 바다에 있든 땅 속 지하에 있든 어느 곳에 함께 하는 분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부르면 말씀하시고 감동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듯 여러분들의 마음도 하나가 되고 몸도 하나처럼 하나님의교회를 세워나가길 바랍니다, 하고 쓴 것이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60924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내 마음의 우상을 떠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게 섬기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마돈나가 자기 유명세와 성공을 내려놓지 못하면 쉬는 시간에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 아니더냐?”
“많은 연예인들이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것도 그 유명세가 시들까봐 자기 인기와 성공이 끝날까봐 두렵기 때문이지 않더냐?”
“바울이 지금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24개 가슴이 달린 풍요와 번영의 신 아데미를 좇아 숭배하지 말고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도록 권면한 것도 그런 이치이지 않더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자기 욕망과 성공이라면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산과 들과 절간에 만들어서 세운 돌탑이나 나무 형상이나 금속으로 만든 신상들이 우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지 알 수 있지 않느냐?”
“인간이 만든 형상으로 된 우상들은 모두가 인간의 탐욕과 욕망으로부터 나온 것들이지 않더냐?”
“너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너의 성공과 너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다면 진정으로 회개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목사님의 친구도 처음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지만 김공장이 잘 되고 성공하고 출세하자 하나님을 저 멀리 제쳐둔 것 아니었더냐?”
“그러다 지금은 위암에 걸려 다시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며 그동안 숨긴 십일조까지 다 드린 것 아니더냐?”
“하나님은 지금도 네 영혼이 욕망에 사로잡히지 말고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께 사로잡히길 원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는 분 아니겠느냐?”
“이 땅의 우상은 인간의 마음에서 만든 거짓 것이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 참되게 섬기는 네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찬양)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 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하나님 주의 길로 인도하소서
(성화)고린도전서 10장 7절에 바울이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깨달음)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들은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하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서 행한 그 모습을 상기시켜 준 것입니다.
그들이 황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노는 모습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상숭배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그들의 조급증을 일컫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율례와 법도는 물론이고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게 되죠.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한 채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서 그 앞에서 춤추면서 광란의 굿판을 벌인 것입니다.
그만큼 우상이란 그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요, 그때 그들의 마음에는 조급함과 서두름이라는 우상숭배의 마음이 깃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음성을 주실때까지, 나에게 깨닫게 하실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는 내가 정해 놓은 기간과 시간만큼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채 내 욕심이 앞설때가 많지 않았습니까?
조금만 더 인내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성공만 바라보다 실패한 경우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한 우리의 예배는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우상 숭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고 하지만 내가 바라던 명예와 돈과 자식의 미래를 얻지 못한다고 불평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욕망이라는 우상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상숭배자의 마음이요 우리 주님은 내 속에 있는 그런 욕망의 우상을 비워내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의 성도들처럼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또 다신과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아데미 신상을 숭배할 게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잠잠히 기다리면 분명코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지나온 인생 속에서 숱하게 경험하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확신가운데 지금 한 분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고 신뢰하락 권면하는 것이죠.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우상은 본래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욕망이 우상이었네요.”
“이스라엘 백성도 홍해를 건넌 체험을 했는데도 그들 마음 속의 욕망이 황금송아지 우상을 빚어 만들었네요.”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나의 성공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해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잠잠히 기다리면 말씀하실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조급증과 서두룸의 우상을 앞세우고 있음을 용서해 주세요.”
“이 세상 모든 우상들은 다 거짓이요 인간의 탐욕과 성공주의가 우상이듯 나에게 그런 마음을 비워내고 오직 하나님을 친밀하게 섬기길 원합니다.”
“압해도 그 사장처럼 내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뒷전으로 제쳐놓지 말게 하시고 어떤 성공에도 하나님 중심으로 신실하게 섬기길 원합니다”
“내게 아픔이 와도 주님의 은혜요 내게 성공이 다가와도 더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친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찬양)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수많은 우상의 형상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우상이 아니라 내 욕망의 마음이 우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한 채 황금송아지 하나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압해도 그 사장처럼 내가 성공하면 하나님을 저 멀리 제쳐두고 내 성공의 우상에 휩쌓아지 않았습니까?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바울이 그래서 여러 신을 숭배하고 아데미 신 앞에 빌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친밀하라고 권면한 이유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내가 어려움에 처할때에도, 내가 성공에 이르게 될 때에도, 모든 상황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엮어나가는 은혜의 주인공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16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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