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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2023년 12월에 개봉한 영화를 보면 나폴레옹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것은 그 전날 밤에 내린 호우 때문이었습니다.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그 땅에서 대포를 이동하는 게 어려웠고 공격 개시 시간도 늦어진 탓이었죠.
그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는 모습도 영화에 나옵니다.
지난날 세계를 제패했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갇힌 몸이 된 것입니다.
그는 남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는데 어느 한 기자가 그를 어렵게 인터뷰를 했죠.
“폐하. 지난 날을 회상할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백발을 날리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지. 잠시 전투가 그친 어느 주일 아침이었어.”
“그때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왔지.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갔다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며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봤다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까?
천하의 나폴레옹도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적용)우리도 이 세상에 주어진 일을 하다가 주님 안에서 예배할 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죠.
6일 동안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 일곱째날, 주님 안에서 예배하며 안식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지금도 평안을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역배)하나님께서 400년간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400년이라는 종살이의 굴레는 모든 언어도 삶의 습관도 다 애굽 사람과 동일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애굽의 방식은 약육강식의 삶이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억압하고 굴종케 하는 문화였습니다.
애굽은 해와 달과 별들은 물론이고 온갖 것들을 다 숭배하는 잡신인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태동됐지만 요셉 이후에 400년간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모두 말살된 상태였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조상적부터 자손대대로 전해 내려온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구전으로 전해내려온 것이었죠.
물론실제 삶 속에서는 애굽의 정치 종교 문화 방식을 좇아 살았으니 그 속에 하나님의 통치권을 따를 수가 없었죠.
그걸 해결코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땅에서 해방시켜주셨고 자유를 주신 것이죠.
그 일은 애굽 땅에 내린 10가지 재앙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마지막 10번째 장자의 죽음과 짐승의 초태생의 죽음 앞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땅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3시 무렵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 피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죽음의 재앙을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없는 애굽의 모든 집은 죽음의 재앙을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그때 애굽의 집집마다 통곡이 들끓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유유히 빠져나갔던 것입니다.
그 날을 기념하도록 ‘넘을 유’ ‘넘을 월’ ‘마디 절’ 해서 유월절이라 부르는 것이죠.
히브리어로 ‘페사흐’ 영어로 히브리 음가를 그대로 사용해서 ‘패스오버’라고 부르는 것이죠.
(깨달음)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화돼 있는 그 땅에서 몸만 빠져나오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한국에 수십년 살던 사람이 미국에 가서 살면 바로 미국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성준이가 지난 주에 군입대했는데, 김임선 권사님도 우셨겠지만, 청년이 군대에 들어가면 곧바로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병의 시절을 거쳐야 군인다운 군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산다면 미국의 언어와 문화와 직업을 갖고 살 때 영주권과 시민권이 나오죠.
중국 사람이 제주도 땅을 사서 5년 만에 영주권이 나온다고 해서 금방 한국 사람이 되는 건 아니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갔다고 해서 곧바로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국토와 국민과 주권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율례와 법도가 필요한 것이었죠.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쌍방간에 언약식을 체결한 것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자’하면서 짐승의 피로 언약식을 체결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율례와 법도를 주셨죠.
그것의 핵심이 하나님께서 친수로 써 주신 두 돌판의 ‘열마디 말씀’ 곧 ‘십계명’이었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도록 한 지침이죠.
그 십계명을 확대한 게 중세 스페인 출신의 유대 랍비 마이모네데스가 정리한 613가지 계명입니다.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온 모든 율례와 법도와 조항을 하나씩 정리한 거죠.
물론 거기에는 중복된 조항도 없잖아 있죠.
그 613가지 조항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네 가가지 항목으로 묶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관련된 법들을 묶은 ‘의식법’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들을 묶은 ‘시민법’이 그것이죠.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결한 삶을 위해 묶은 ‘도덕법’이 그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는 음식에 관한 ‘식품위생법’을 묶은 ‘음식법’이 그것이죠.
(적용)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의식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가 의식법에 해당되는 것이죠.
번제란 인간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켜 짐승을 바치는 제사죠.
소제는 가난한 사람이 곡식을 빻아서 지금의 피자처럼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죠.
속죄제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람이 그것이 생각이 났을 경우 즉시 소나 양이나 가난한 경우 비둘기를 잡아 드리면서 회개하는 제사죠.
속건제는 사람 사이에 잘못한 것이나 배상해야 할 게 있을 때 하나님께 일정부분은 드리고 나머지는 그 사람에게 배상하는 것이죠.
화목제란 이웃은 물론 원수 맺은 사람까지도 초청해서 모두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고 그 음식을 나눠 먹는 제사죠.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제사법을 주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 제사법은 애굽 땅에서 없었습니다.
애굽 땅은 해와 달과 별은 물론이고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과 같은 모든 것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곳이죠.
심지어 사람의 자식까지 잡아 신에게 제사하는 인신공양도 암암리에 성행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애굽의 종교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만이 취할 제사법 다섯가지를 알려준 것입니다.
그 제사법 역시 하나님께만 드리는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법입니다.
애굽 땅에서는 일방적으로 신에게만 드렸지만 속죄제와 화목제처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위한 제사도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었죠.
그러니 제사법 역시도 십계명처럼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 사람 사이의 화평을 위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3613992
(본문)오늘 본문 10-11절을 먼저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깨달음)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거든 그땅의 농작물을 거둘 때 6년 동안은 파종해서 거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을 갈지 말고 묵혀 두라는 것이죠.
이른바 7년 안식년 제도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그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의 소유권자이니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7년 안식년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백성 중에 가난한 자들이 먹고 살도록 하라는 것이죠.
더욱이 그 남은 곡식들을 들짐승도 먹고 살아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7년째되는 해에 쉬게 되면 그 전년도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면 작은 소출을 거둘 수 있는 법이죠.
그걸 너희들이 거두지 말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가난한 이들이 거둬서 먹게 하라는 거죠.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취할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아래로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본문2)오늘 우리가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말씀은 12절인데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너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원해)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살게 되면 6일 동안 네게 주어진 일을 하고 7일째 되는 날 쉬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물론 너희들만 쉬지 말고 소와 나귀도 또 여종과 그 자식들과 나그네도 숨을 돌리게 하라고 하죠.
왜 하나님께서 7일째 되는 날에 쉬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말로 ‘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바트’(שָׁבַת)는 최초 창세기 2장 2절에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깨달음)하나님께서 6일 동안의 창조사역을 마치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죠.’
그 단어가 ‘샤바트’인데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 하신 방식을 따라 사는 건 당연한 거죠.
하나님께서 7일째 안식하셨듯이 너희들도 안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만 너희 짐승은 물론이고 남종과 여종과 자식들까지, 나그네까지도 그렇게 안식하게 하라는 것이죠.
왜죠?
애굽에서는 너희들이 노예로 살아봐서 알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는 애굽의 주인들이 너희들을 마음대로 일을 시켰고 심지어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하게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7일째 되는 날에는 꼭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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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그런데 이 ‘샤바트’라는 단어를 한자처럼 파자하면 영적인 의미가 숨어 있는 단어입니다.
‘샤바트’(שָׁבַת)라는 단어는 ‘슈브’(שׁוּב)와 ‘타브’(ת)의 합성어입니다.
‘슈브’(שׁוּב)는 ‘돌아가다’(turn back)는 뜻입니다.
‘타브’(ת)는 ‘십자가’와 ‘언약’을 뜻하는 단어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향해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레26:12)고 하셨죠.
그것은 시내산에서 피의 언약식을 통해 체결했듯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길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이 땅 위에 사는 날 동안 죄와 고통과 괴로움의 짐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려놓을 때 쉼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때의 ‘쉼’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아나파오’(ἀναπαύω)요 히브리어로 ‘샤바트’(שָׁבַת)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가는 것, 그때 비로소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것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주일날 주님께 예배할 때 주님께서 참된 평강과 안식을 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날이요 짐승은 물론 남종과 여종과 외국인들까지도 주님께 나아할 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일곱째 날에 쉬라, 는 참된 의미입니다.
너희들이 멋대로 세상의 쾌락을 좇아 흥청망청 즐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구원받은 언약백성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 날을 기념하여 주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이, 참된 안식일의 의미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 경배하는 참된 안식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세계를 정복하던 나폴레옹이 온갖 불안과 두려움에 떨 때 알프스 산맥의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릴 때 주님께서 참된 안식을 주신 것 아니더냐?”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네게 주어진 일을 하되 일곱째 날에 안식하라고 명령하신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함이지 않더냐?”
“하나님의 자녀라면 애굽의 방식과 달리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로 안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 말이다.”
“‘안식’의 참 뜻이 ‘십자가’와 ‘언약’으로 ‘돌아가는 것’이듯이 십자가에 피흘려 대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참된 안식이지 않더냐?”
“오늘 너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예배할 때 영원한 평강의 안식을 주시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대속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십자가와 언약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된 안식의 의미이듯 고통과 괴로움의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갈 때 참된 안식을 주지 않겠느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서 약속하셨듯이 오늘도 안식일에 주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 평강을 불어넣어주신다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6일동안 네게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7일째 되는 안식일에 너에게 구원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때 주님께서 영원한 평강을 주지 않겠느냐?”
“그것이 애굽의 방식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취할 자세임을 오늘도 하나님께서 너에게 명령하고 있지 않느냐?”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라 너를 위함임을 네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찬양)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사랑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9805
(예화)서두에서 말한 나폴레옹이 1813년 10월 17일 영국을 침략했다가 웰링턴 장군에게 패망했습니다.
그 날은 주일날이었습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을 침공했다가 원자폭탄의 세례를 받고 원전히 무너져내렸습니다.
그 날도 주일날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도 주일이었습니다.
그 날 김일성이 남침하다가 북한은 지금의 저 모양 저 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하는데, 그 어린날의 주일날을 기억했더라면 결코 그런 악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요, 북한은 저 모습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깨달음)신호등을 보면 파랑 불은 가라는 신호요 빨강 불은 정지하라는 신호입니다.
빨강 불의 신호등 앞에서 가게 된다면 사고에 직면하고 말 것입니다.
정남철 집사님이 지난주에 5번 척추 디스크 파열로 시술을 했습니다.
시술을 통해 몸을 신경과 흐름을 교정하고 안식을 취하는 재충전을 통해 다시금 열심히 뛰게 하신 하나님의 사인이죠.
운전자라면 적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할 때 오는 비극이 얼마나 큰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주일날의 예배와 안식을 무시한 채 자기 욕망만 좇는 자라면 주님은 그릇된 일임을 역사를 통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예화2)물론 그 반대편의 일도 있습니다.
1924년 5월에 올림픽 경기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2024년 7월 26일부터 열리는 올림픽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립니다.
100년만에 다시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라고 하죠.
그런데 1924년에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중에 스코틀랜드의 육상 스타 에릭 리델(Eric Liddel)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1백 미터 육상경기의 우승 후보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선수였습니다.
그 경기를 위해 여러 달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쌓아 온 그였죠.
그런데 그가 출전하는 경기 일정이 공교롭게도 주일날 짜여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 좋은 크리스천으로서 마음에 심한 갈등이 일기 시작했죠.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는 주일을 범하고 경기에 참가해야 옳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 양심은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주일에 운동장을 달려 우승한다면 자신에게 크나큰 영광이 몰려오겠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었죠.
결국 그는 그 경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팬들은 크게 실망했고 그를 격찬하던 사람들도 모두 바보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주간에 출전하게 돼 있던 스코틀랜드의 4백 미터 경기 선수가 부득이한 일로 뛸 수 없게 됐습니다.
리델은 자기가 훈련한 종목의 4배나 되는 힘든 경기였지만 그 자리를 메꾸겠노라고 신청했죠.
그런데 리델이 4백 미터 경기에서 47.6초의 기록을 세우며 당당히 우승하게 된 것입니다.
후에 리델은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돼 평생 헌신하다가 1945년 중국의 군인 캠프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주일날 세상의 자기 욕망보다도 주님께 예배하며 안식을 누리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심을 알고 경기 출전을 포기한 것이었죠.
하지만 주님은 그런 그를 포기하지 않고 평일에 4백미터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또 다른 영광의 길을 준비해두신 것이었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나폴레옹이 영국을 침략한 날도 주일이요 일본이 미국을 침공한 날도 주일이요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온 날도 주일이었네요.”
“주일인 주인이신 주님을 무시할 때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제가 잊지 않게 해 주세요.”
“주일날 1백미터 경기에 출전하면 그 올림픽 매달은 리델의 것이었지만 그는 주일의 주인이신 주님께 예배하고자 경기에 출전치 않았네요.”
“하지만 주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그에게 4백미터 경기에 출전하는 길을 열어주셨고 우승이라는 영광을 누리게 하셨네요.”
“저도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 예배하고 경배할 때 창조적인 지혜를 주셔서 6일 동안의 일도 승리하게 해 주세요.”
“주님.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주님의 피흘리심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사는 자녀로 살게 해 주세요.”
(찬양)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세상 그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 은혜로 나를 돌보시며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네
주 사랑이 나를 이끄시네 내가 갈 수 없는 그 곳으로
주의 사랑 나를 붙드시며 세상 끝날까지 인도하시네
주님만이 내 아픔 아시며 주님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주님만이 내 능력이시며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속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이 땅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운 방식을 따르도록 안식년과 안식일 법을 주셨습니다.
참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가는 것,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려놓을 때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을 짓밟을 때 역사적으로 망했지만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주님은 영광의 길을 예비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경배하며 참된 안식을 누릴 때 6일의 삶도 승리케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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