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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63년에 나온 책인데 러시아의 강제수용소의 실체와 강제수용소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최초로 폭로한 소설입니다.
주인공 슈호프 곧 이반 데니소비치가 낮에 수용소 밖으로 나가 작업을 하던 중에 부러진 톱날 한 조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그 톱날 조각을 잘 갈아서 ‘구두 수선용 칼’을 만들면 수용소 안에서 꽤 짭짤한 ‘벌이’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그 톱날 한 조각을 장갑 속에 숨겨서 들어오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모든 죄수들은 다시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 앞에서 철저한 신체검사를 받게 되죠.
그때 간수에게 톱날 조각이 걸리면 슈호프는 영락없이 독방 신세를 면치 못하게 돼 있습니다.
얼음 같은 독방에서 열흘이나 살게 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슈호프는 간수의 손이 자기 장갑에 닿는 순간 어떻게 했겠습니까?
크리스천도 아닌 그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제발 중영창만은 면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런데 그 기도가 통했는지 간수는 톱날 조각이 숨겨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슈호프를 통과시켜 줬죠.
슈호프는 그야말로 날아갈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용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소설의 다음 문장이 이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또 한 번 기도를 올리면서 감사를 드리지는 않았다.”
“그럴 겨를도 없었거니와 이제는 약간 시기를 잃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까?
러시아의 교도소 출입문을 통과하는 길목에도 하나님의 은총은 임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인간은 감사의 타이밍을 종종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톱날 조각을 숨겨서 교도소 출입문 안으로 들어갈때는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정작 ‘통과’라고 간수가 말할 때는 감사기도를 놓쳐 버린다는 것이죠.
화장실 들어갈때의 마음과 화장실 밖으로 나올때의 심정이 다르다는 것이 과연 그럴 때 쓰이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은 그때그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적용)어린 시절 추석이나 설날에 할아버지를 찾아 뵐때도 마찬가지죠.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면 곁에 있던 아버지나 어머니가 뭐라고 말합니까?
자기 자식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죠.
“할아버지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야지. 할머니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말해야지.”
그 어떤 부모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용돈을 주실 때 1년에 한 번만 몰아서 “고맙습니다.”하고 말해라, 하지 않습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나 매번 주실때마다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올리는 습관을 길들이게 하는 것이죠.
그것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살게 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에 큰 고비를 넘길때는 물론이거니와 크고 작은 일에 감사할 일이 있을 때면 매번 감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024년 전반기 감사의 절기로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인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역배)하나님께서 400년간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400년이라는 종살이의 굴레는 모든 언어도 삶의 습관도 다 애굽 사람과 동일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애굽의 방식은 약육강식의 삶이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억압하고 굴종케 하는 문화였습니다.
애굽은 해와 달과 별들은 물론이고 온갖 것들을 다 숭배하는 잡신인 만연한 곳이어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태동됐지만 요셉 이후에 400년간 그 땅에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그 모든 것이 말살된 상태였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조상적부터 자손대대로 전해 내려온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구전으로 자손에까지 새겨왔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애굽의 정치 종교 문화 생활방식을 좇아 살아야 했으니 그 속에 하나님의 통치권을 따를 길이 없었죠.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일이요 마지막 장자와 초태생의 죽음 앞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땅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3시 무렵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고 그 피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죽음을 넘어가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넘을 유 넘을 월 그리고 마디 절, 해서 유월절이라고 부르고 히브리어로 ‘페사흐’ 영어로 패스오버라고 부르는 것이죠.
(깨달음)실은 그 유월절 사건을 신약시대에 세례요한이 외친 것처럼 유월절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구원을 받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사탄의 소굴에서 건짐받아 자유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전개)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빠져나왔다고 해서 모든 게 자유롭고 모든 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었습니까?
그들에게 국민이 있고 영토가 생겼고 주권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고 쌍방간에 언약식을 체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모세에게 율례와 법도의 지침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었죠.
그 십계명을 좇아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 너희 백성들을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하는 지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순종하며 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400년간 무거운 관습처럼 살아온 애굽 백성의 때를 다 벗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새롭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신명기를 보면 십계명만 있는 게 아니라 각종 규례와 법도가 나옵니다.
그것을 스페인 출신의 중세 유대 랍비 마이모네데스라는 사람이 하나 하나 분류했을 때 무려 613가지로 봤습니다.
모세오경의 율법을 총 613가지로 본 것인데 그것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죠.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관련된 ‘의식법’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민법’으로 묶은 것입니다.
세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결한 삶을 위한 ‘도덕법’으로 분류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음식에 관한 ‘식품위생법’ 곧 ‘음식법’으로 분류한 것이죠.
(깨달음)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는 물론이고 안식일 법과 희년법 그리고 각종 절기에 관한 법이 ‘의식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 쉬라’는 것도 안식일법이요 의식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때는 모든 일을 삼가고 쉬면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굽의 방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자녀다운 방식의 삶이기 때문이죠.
(적용)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곱째 날이 쉴 때 소와 나귀는 물론이고 여종과 그 자식들과 나그네까지도 쉬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애굽에서는 약육강식이 판을 쳤고 애굽 땅에서는 주인이 종을 맘대로 부렸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러지 말라는 거죠.
하나님의 자녀가 안식일인 주일날 하나님께 나가 예배하고 기도한다면 너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사원들도 그렇게 쉼을 얻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60924
(본문)오늘 본문 14-16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깨달음)이 말씀은 애굽 땅을 빠져나가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살거든 1년 세 차례 절기예배를 지키라는 의식법 말씀입니다.
맨 처음 나온 게 무교병의 절기입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유월절 절기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발라 그 피를 보신 하나님께서 죽음의 재앙을 넘어가셨는데, 그 날 신속히 빠져나가도록 무교병을 준비해서 먹도록 했습니다.
그날 너희들의 능력으로 그 땅을 빠져나온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나온 것임을 기억하도록 무교병 빵을 준비해서 먹도록 하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그 절기를 지킬 때 빈 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말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적용)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의 땅, 고통의 땅, 지옥의 땅과 같은 곳에서 100년간 종살이한 그 백성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얻었다면 평생토록 감사할 일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평생 기억하며 살도록 1년에 한 번 유월절을 지키도록 했고 그때마다 감사의 예물을 잊지 말도록 한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가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는 세상의 자식이요 마귀의 자식으로 지옥갈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시고 십자가 대속을 통해 영원한 천국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으니 어찌 그 은혜에 매주일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2)그리고 두 번째 절기를 지키도록 한 말씀이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7주 후에 보리를 처음 수확해서 그 수확물을 주님께 드리며 감사하는 절기죠.
흔히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도 부르고 또 유월절로부터 50일 후라고 해서 ‘오순절’이라고 부르죠.
그 오순절날 모세가 시내산에 율법을 수여받은 날이고 그 오순절날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신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성령강림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은 그 땅의 첫 수확물인 보리를 수확해 하나님께 감사절로 지키는 날이었습니다.
이것은 1년 단위로 생각한다면 오순절은 1년 중 첫 번째 절기로 모든 시작점을 하나님께 감사로 시작하게 하는 것이죠.
그 중간에 있는 맥추절은 1년의 중간기 곧 전반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제 후반기의 삶도 감사로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나오는 절기가 수장절이자 초막절인데 광야 나그네 삶 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인데 가을걷이 때 하나님께 감사로 화답하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추수감사절로 지키면서 한 해의 결실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죠.
그만큼 맥추절은 보리를 거둬들이는 시기요 1년의 중간시기를 점검하면서 전반기의 삶 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날 어떤 크리스천은 1년에 한번 추수감사절 때 감사절로 지키면 되지 무슨 맥추감사절을 또 지키냐면서 허물어뜨리려는 이들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하나 허물어뜨려도 누구하나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만 하나를 허물어뜨리면 다른 하나님의 계명들도 다 무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화)금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선사라고 불리는 성철 스님이 있지 않았습니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 水是水)라는 법어로 유명해진 분이죠.
물론 그 말은 중국 송나라 때 청원유신(靑原惟信)이라는 선사가 남긴 법어를 차용한 것이죠.
산과 내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과 내가 관계를 맺으면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실은 유기적으로 다 관계가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산이 내 안에 있고 산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그런 의미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이 살아 있을 때 젊은 스님들이 합천 해인사까지 그 분을 찾아가서 질문했습니다.
“스님. 중이 고기를 먹으면 안 됩니까?”
“이제는 세상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도 고기를 먹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때 성철 스님이 뭐라고 대답을 했겠습니까?
“그래. 이제는 때가 됐다. 다 먹도록 해라.”하고 말했을까요?
“안 된다. 중이 고기 먹는 것은 고기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중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모든 계율을 어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으면 안 된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고기 먹는 것 무슨 대수냐 하면서 그때부터 먹기 시작했다면 부처의 다른 계율도 하나 둘 허물어뜨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이 있습니다.
안식일법 곧 주일을 지키며 예배하며 영적인 쉼을 얻는 것, 그 법도 무시한다면 다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죠.
맥추감사절 그 절기도 1년에 한 번 추수감사절로 대처해서 한 번만 지킵시다, 한다면, 그래서 그걸 허물어뜨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다음에 추수감사절 무슨 의미가 있어요, 하고 그것도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용)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슈호프가 부러진 톱날 조각을 하나 갖고 교도소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교도관의 눈을 한 번만 감게 해 달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막상 ‘통과’하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을 잊어버렸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놓치고 살까 봐 맥추감사절을 둬서 지키도록 한 것 아니겠습니까?
너희들이 애굽 땅을 빠져나가 가나안 땅에 정착해 수확을 거두는데 너희들의 능력으로 된 것마냥 착각할까봐 맥추감사절을 둬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말입니다.
연초와 연말에라도 또 특별한 날이라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뵈었을 때 손주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죠.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기에 오늘의 네가 존재할 수 있는 거야,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해, 하고 말이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9805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도록 하셔서 전반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는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그 죄수가 부러진 톱날을 주워 교소도 안에서 구두 수선용 칼로 쓰면 돈벌이가 될 수 있겠다고 해서 들어갈 때 교도관 앞에서는 간절히 기도했지만 ‘통과’라는 말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 아니었더냐?”
“400년간 애굽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서 안식일 법을 주신 것도,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주신 것도 같은 이치이지 않더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년초에 유월절을 지키도록 한 것도, 중간에 맥추절을 지키도록 한 것도, 가을걷이 때 수장절을 지키도록 한 것도 감사를 잊지 말고 살라는 것 아니더냐?”
“성철 스님이 그 젊은 중들에게 이제부터 고기를 먹도록 해라, 하고 말했다면 지금쯤 모든 석가의 법도가 다 무너지지 않았겠느냐?”
“하나님께서 법으로 제정하신 것을 하나씩 허물어트리면 다른 모든 계명들도 다 무너뜨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에게 맥추감사절을 지키도록 한 참 뜻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걸 기뻐하지 않겠느냐?”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명절때마다 인사를 드리는 것도 매번 그 감사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평생도록 잊지 말고 기억하며 살도록 말이다.”
“2024년 전반기에 네가 어떤 삶의 과정을 겪었든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기까지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더냐?”
“2024년 전반기의 삶에 어려운 순간과 위기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그걸 넘어왔으니 그또한 감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
(찬양)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 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 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예화)술을 좋아하던 분이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때마침 교회에서 맥추감사절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맥추감사절을 잘못 알아듣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맥주감사절이 있다면서요? 그 날은 교회에서 맥주 파티라도 있습니까?”
“교회에 나오면 술을 먹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웬 맥주감사절입니까?”
그때 어느 성도가 이렇게 답변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맥주감사절이 아니라 맥추감사절입니다.”
(깨달음)그 성도님이 맥추감사절을 맥주감사절로 오해한 것도 큰 무리가 아니겠죠.
맥주도 실은 보리로 만들기 때문에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방식을 그대로 갖고 실은 애굽의 방식을 좇아 사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녀라면 하나님의 방식을 좇아 사는 자녀를 기뻐하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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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2)독일 재무장관을 지낸 마르티 바덴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말할 수 없이 궁핍했습니다.
어느 날 지방 여행 중 싸구려 여관에 투숙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의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치며 투덜댔습니다.
“어떤 죽일 놈이 내 신발을 훔쳐갔냐!”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도둑질해가게 그냥 놔두시다니”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여관 주인은 창고에서 헌 구두를 꺼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주일인데 나와 같이 교회에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마지못해 여관 주인을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옆자리는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부르고 또 감사의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 장면을 본 바덴은 혼자 말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두 다리를 잃었구나.”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는 것을.”
그렇게 고백하면서 조금전에 자신이 소리치고 화내고 하나님을 행해 원망한 행동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마르티 바덴의 삶에 변화가 왔습니다.
그는 삶의 상황에 따라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삶 자체로서 매순간 순간 감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독일의 명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와 국민에게 크게 봉사했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까?
감사하며 사는 생활이 올바른 삶이며 축복을 받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원성)성경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 할지어다”(시100:4)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2024년 전반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원망도 불평도 탄식도 많이 했어요.”
“일이 잘 풀릴 때나 일이 꼬일 때도, 낙심과 고통속에서도, 언제나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삶이었어요.”
“신발을 잃은 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던 바덴도 있었지만 그 옆에 다리가 없으면서도 감사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주님. 2024년 전반기의 삶에 나보다 훨씬 어려움과 고통을 당한 하나님의 자녀들도 많고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2024년 남은 한 해의 삶을 감사하므로 그 문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2024년 하반기의 삶에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향해 감사의 문으로 들어가며 매 순간 주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열어주세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맥추감사절을 통해 전반기를 돌아보게 하시고 하반기 추수감사절 때 더 큰 감사의 고백을 올릴 수 있도록 역사해 주세요”
(찬양)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론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심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 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2024년 전반기 감사주일로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2024년 전반기의 삶 가운데 기쁨도 슬픔도 어려움도 눈물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의 땅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해방과 자유를 주셨고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며 살돌고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024년 초 유월절의 은혜를 통해 내게 감사하게 하셨고, 전반기 맥추감사주일을 통해 내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수용소 안에 부러진 톱날 조각을 가지고 가면서 기도했던 그가 ‘통과’라는 말 앞에 감사의 고백을 잊어버렸는데 저와 여러분들은 들어갈 때와 나올때도 동일하게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령 내 발이 없어지고 모자가 없어지고 삶에 한 부분이 떨어져나가도 남은 걸 보면서 주님앞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반기도 감사의 문으로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하반기의 삶도 감사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고백의 기도를 드리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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