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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18세기에 독일에서 훌륭한 목회를 했던 진 프레드릭 오버린 목사가 모처럼 겨울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도중 심한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꼼짝없이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마차를 타고 가던 어떤 사람이 오버린 목사를 발견하고는 마차에 태워 인근 마을까지 데려다줬습니다.
게다가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방까지 마련해 줬습니다.
오버린 목사는 무척 고마워하면서 그 사람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목사님이시죠? 목사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름을 아시나요?”
“저는 목사님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름을 아실 때까지 제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깨달음)진 프레드릭 오버린 목사를 구한 그 분은 정말로 가슴이 따뜻한 분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자기 의나 자기 공적을 밝히지 않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분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 할지라도, 진 프레드릭 오버린 목사는 평생토록 그 분을 잊지 못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기 때문이죠.
(적용)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찾아와주지 않았던들 나는 죄악 속에서 해메다가 지옥에 떨어졌을 테니 말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찌 우리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건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잊지 않고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는 동안 교회를 세우고자 헌신하신 분들 역시 저도 잊지 않고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하나님께서 400년간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400년이라는 종살이의 굴레는 모든 언어도 삶의 습관도 다 애굽 사람과 동일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애굽의 방식은 약육강식의 삶이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억압하고 굴종케 하는 문화였습니다.
애굽은 해와 달과 별들은 물론이고 온갖 것들을 다 숭배하는 잡신인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태동됐지만 요셉 이후에 400년간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모두 말살된 상태였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조상적부터 자손대대로 전해 내려온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구전으로 전해내려온 것이었죠.
물론 실제 삶 속에서는 애굽의 정치 종교 문화 방식을 좇아 살았으니 그 속에 하나님의 통치권을 따를 수가 없었죠.
그걸 해결코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땅에서 해방시켜주셨고 자유를 주신 것이죠.
그 일은 애굽 땅에 내린 10가지 재앙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마지막 10번째 장자의 죽음과 짐승의 초태생의 죽음 앞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땅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3시 무렵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 피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죽음의 재앙을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없는 애굽의 모든 집은 죽음의 재앙을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그때 애굽의 집집마다 통곡이 들끓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유유히 빠져나갔던 것입니다.
그 날을 기념하도록 ‘넘을 유’ ‘넘을 월’ ‘마디 절’ 해서 유월절이라 부르는 것이죠.
(깨달음)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화돼 있는 그 땅에서 몸만 빠져나오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군인도 훈련병의 시절을 거쳐야 군인다운 군인이 될 수 있죠.
직장인도 수습기간을 거친 후에야 직장인 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언약식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율례와 법도가 필요한 것이었죠.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주셨죠.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라 레위기서 율법서도 주셨는데 모세 오경에 나오는 율법을 세분화하면 613가지나 되죠.
중세 스페인 출신의 유대 랍비 마이모네데스가 정리한 계명의 수가 613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613가지 조항은 네 가지 항목으로 분류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관련된 법들을 묶은 ‘의식법’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들을 묶은 ‘시민법’이 그것이죠.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결한 삶을 위해 묶은 ‘도덕법’이 그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는 음식에 관한 ‘식품위생법’을 묶은 ‘음식법’이 그것이죠.
(적용)우리가 지난 2주간 동안 살펴본 맥추절과 안식일법은 의식법에 해당하는 율법 조항이었습니다.
왜 맥추절을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까?
맥추절은 유월절로부터 5일째 되는 날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리를 처음 추수하는 때로 한 해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한 해의 첫날로 감사드리고 맥추절은 중간으로 그리고 수장절은 가을걷이를 거둬들인 다음 감사의 절기로 지키는 것이었죠.
그만큼 한 해의 중간지점을 점검하면서 복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도록 맥추절을 지키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주일에 살펴본 안식일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안식일법은 애굽에 살 때는 지킬 수가 없었죠.
애굽은 약육강식이 판을 치고 애굽 사람들은 노예로 삼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도 없이 일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라면 마땅히 당신이 행한 모습처럼 살기를 바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까지 창조사역을 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살라는 것이죠.
다만 너희만 안식하지 말고 너희와 종들과 자녀들까지 그리고 짐승들까지도 안식하게 하셨죠.
그런데 ‘안식하다’ 곧 ‘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바트’(שָׁבַת)를 한자처럼 파자하면 깊은 영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고 했습니다.
‘샤바트’(שָׁבַת)라는 단어는 ‘슈브’(שׁוּב)와 ‘타브’(ת)의 합성어죠.
‘슈브’(שׁוּב)는 ‘돌아가다’(turn back)는 뜻이고 ‘타브’(ת)는 ‘십자가’와 ‘언약’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안식하라는 뜻은 너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라는 의미죠.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땅에서 죄와 싸우기 위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안고 있는 너희들은 주님께로 나아갈 때 참된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쉼’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아나파오’(ἀναπαύω)이고 히브리어로 ‘샤바트’(שָׁבַת)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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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은 본문 13절 말씀을 주목해서 보시는데,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원해)여기에 ‘부르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자카르’(זָכַר)입니다.
영어로 ‘기억하다’( to remember) ‘부르다’(recall) ‘과거의 일을 떠올리다’(call to mind)는 뜻입니다.
그것도 단순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암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의 깊게 묵상하고 회상하라는 것이죠.
(원성)성경에서 ‘자카르’(זָכַר)란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창세기 8장 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깨달음)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들어간 식구들과 모든 짐승을 기억해 주셨다는 뜻이죠.
그들이 1년 17일간 방주 속에 들어가 살았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향해 사람들은 구원의 방주라고 하지만 짐승들이 싸는 똥오줌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죠.
그러니 방주 속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 삶은 온전한 사람도 정신병에 걸릴 수 있는 환경이었죠.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노아와 그 가족 그리고 그 짐승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한순간도 그 식구들과 짐승들을 잊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년이 넘어갈 즈음 물이 줄어들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었죠.
(적용)내가 누군가를 기억한다, 누군가 행한 일을 기억한다, 단순한 사람이요 단순한 사건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이나 그 사건이 내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줄 때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 그 방주에 들어간 짐승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히 복종해 방주로 들어간 사람들이요 짐승들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빛낼 주역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억되는 은혜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원성2)그런데 이 ‘자카르’라는 단어로부터 ‘스가랴’(zkarya)는 이름이 파생됩니다.
스가랴는 구약의 성전재건 공사를 독려하여 성전재건을 완성케 한 선지자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하는 의미죠.
스가랴란 ‘기억하다’는 뜻의 ‘자카르’와 ‘여호와’의 줄임말인 ‘야’의 합성어입니다.
스가랴란 이름이 성경에 29명이나 나오는데 특별히 스가랴 선지자는 우리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귀환자들이 B.C.538년에 성전재건공사를 시작했다가 방해꾼들에 의해 2년간 중단하는데 그 중단된 성전재건을 독려한 선지자입니다.
그 재건공사를 독려한 사람이 나이 70이 넘은 학개 선지자와 30대 전후의 스가랴 선지자가 있었죠.
그로 인해 15년만인 B.C.515년에 성전재건 공사가 완공이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개건 공사를 독려할 때 선포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1:3)
(깨달음)스가랴 선지자는 성전재건을 독려했지만 그것이 왜 중요한 지 일깨워준 것입니다.
성전재건의 진정한 목적은 ‘여호와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영적인 구심점이 성전이고,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할 수 있는 토대였던 것입니다.
(적용)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런 스가랴 선지자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예배당 청소를 하고, 화장실을 만들고, 에어컨을 달고, 내부를 수리하는 분들, 그렇게 헌신하는 분들을, 어찌 하나님께서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처럼, 노아와 그 가족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순종하고 헌신하는 분들을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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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그런데 오늘 본문의 ‘자카르’ 곧 ‘기억하다’는 말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의 의미로 쓰인 단어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본문을 다시 읽으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깨달음)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되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말라는 것입니다.
‘부르다’는 말이 ‘기억하다’ ‘자카르’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신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도 말라는 거죠.
왜 그렇게 명령하신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전답이 생기고 소출이 생길 것입니다.
한 해의 시작점인 유월절에 감사제사를 드리며 중간기에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또 한 해의 가을걷이때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죠.
그리고 매 7일째 되는 안식일에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쉼을 얻도록 하겠죠.
그런데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괴롭고 힘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과거 400년 넘게 애굽에서 살아온 삶의 방식을 좇아 다른 신들을 좇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예)예전에 제가 알던 몇몇 분들도 그랬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기도를 하는데 자녀의 결혼을 앞두고 기독교 무당을 찾는 분이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방언기도도 하는데 힘든 일만 생기면 기도원을 찾아가 응답받으러 가는 분도 있었죠.
정치인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당을 찾아가 점을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다가도 세상의 다른 신을 따르는 것과 같다는 점입니다.
(적용)바로 그런 모습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을까 봐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말라, 기억하지도 말라, 하고 명령한 것입니다.
더욱이 본문의 마지막은 “그 신들의 이름을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라”하고 명령하십니다.
그 말씀을 새번역 성경은 “그 신들의 이름을 입 밖에 내서도 안 된다.”하고 번역하고 있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울 때 다른 신을 찾기보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진 프레드릭 오버린 목사가 눈보라에 길을 잃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 그를 구해주지 않았더냐?”
“그런데 그 사람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오버린 목사는 평생 그를 잊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겠느냐?”
“노아가 그 가족들과 짐승들을 데리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 1년 17일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간 내내 노아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지 않았겠느냐?”
“짐승들이 싸지르는 똥오줌 냄새를 맡으며 짐승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한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그들을 어찌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지 않겠느냐?”
“스바냐 선지자가 성전재건이 중단된 것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려하여 15년만에 성전재건을 완공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신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성전재건도 중요하지만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가 관계를 회복하도록 그 토대를 마련했으니 어찌 스바냐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과거의 애굽의 신이나 가나안 원주민이 섬기는 신들을 기억하지도 말고 부르지도 말라고 한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들이 섬기는 신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목석에 불과하니, 오직 너희들을 애굽에서 건져낸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왜 없겠느냐?”
“때로는 네 인생에 눈보라가 치고 태풍이 몰아치기도 하지 않겠느냐?”
“그때 너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세상의 무당이나 굿을 하러 다닌다면, 기독교 무당을 찾아 기도원만 찾아다닌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너를 기억하시겠느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어렵고 힘들 때 찾아와주고 힘이 되어 준 사람을 평생 잊을 수 없듯이, 네가 어려움 중에도 꿋꿋하게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결코 너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지 않겠느냐?”
“온갖 세상의 유혹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고자 하는 너라면 분명코 하나님의 때에 선한 길을 열어주지 않겠느냐?”
(찬양)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깊이 이해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절대 포기 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너를 쉬지 않고 지켜보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하나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이 세상 그 무엇 그 누구보다
하나님은 너를 원하시는 분 너와 같이 있고 싶어 하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광야에서도 고통중에도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는 분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신단다
그의 생각 셀 수 없고 그의 자비 무궁하며
그의 성심 날마다 새롭고 그의 사랑 끝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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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떨어지는 사과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그 이전에도 유명한 과학자였습니다.
뉴턴이 나이가 들자 치매 현상이 심해 그 많던 지식은 고사하고 누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죠.
심지어 자기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뉴턴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네.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은 압니다.”
뉴턴은 다른 말은 못해도 오직 그 한마디 대답은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깨달음)혹시 나에게도 치매가 찾아온다해도, 기억력이 감퇴하여 다른 건 다 잊어버린다해도, 오직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어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 말입니다.
(예화2)‘적극적 사고 방식’이란 책으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가 닉슨 대통령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은 필 목사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는 용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필 목사는 특별히 주문하실 메시지라도 있느냐고 닉슨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닉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평소 교회에서 하시는 설교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빈센트 필 목사님은 월남으로 떠났습니다.
여러 곳의 진지를 방문하며 그때마다 그 병사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해병대 진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설교 중에 흑인 병사 한 명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찬양을 부르는 것이었죠.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빈신트 필 목사님은 이제 설교를 마치고 헬리콥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감격해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좌석에 앉은 기장도 눈물을 흘린 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까?
월남전에 파병 간 미군 병사들은 여러 늪지대를 다녀야 하는 지옥의 현장에 처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빈센트 필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그 병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찬양을 뜨겁게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그 진지를 찾은 빈센트 필 목사님은 도리어 더 큰 은혜와 감동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적용)그렇습니다.
우리도 다른 모든 것은 잊을지라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눈보라가 몰아치고 태풍이 몰아치는 현장에서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우리 주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아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어떤 환경에 처해도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다른 신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기억하며 의지하길 원합니다.”
“그 똑독한 과학자 뉴튼도 치매로 인해 자기 이름조차 잊어버렸지만 주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신 것은 평생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빈센트 필 목사님이 월남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그곳을 찾아 설교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처한 환경에서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신뢰하고 찬양한 병사의 찬양을 통해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 제 인생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제 삶에 폭풍이 몰아쳐와도 끝까지 주님만 신뢰하고 의지하게 해 주세요.”
“막다른 골목에 처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신뢰할 때 주님께서 놀라운 새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를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주만 바라볼지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잊어버릴지라도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내 삶이 어렵고 힘들 때 나를 도와준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과 짐승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신 것도, 스바냐 선지자를 기억하신 것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다른 신을 찾고 무당을 찾아 굿을 할 게 아니라 월남전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한 병사처럼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기 바랍니다.
인생의 눈보라가 몰아치고 태풍이 몰아쳐와도 다른 신을 찾기보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억하셔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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