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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묵상LifeBible

경험치

by 똑똑이채널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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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제 입으로 농사를 짓는다. 아흔한 살에 힘이 부친 탓이다. 지난주일 오후 늦게 엄마에게 찾아가 깨 비늘 씌운 일을 도왔다. 그날도 엄마는 유모차를 몰고 밭에 나와 앉아 있었다. 엄마보다 다섯 살 아래지만 같이 늙어가는 석호네 엄마랑 그 일을 함께 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49살 엄마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때부터 엄마는 홀로 논밭을 뒹굴었다. 새살림을 차려 편하게 살고 싶어도 병아리 같은 자식들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그 시절 약장수들이 동네에 찾아와 춤판을 벌일 때면 엄마도 흥을 즐겼다. 그땐 뾰로통한 얼굴로 엄마에게 눈을 흘겼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엄마도 그 젊은 날 여자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때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어떤 울타리가 돼야 하는지 소중한 경험치를 물려준 것이다.

 

김연수는 〈청춘의 문장들〉을 통해 자기 딸아이 열무가 두 번째 여름을 맞았을 때 자전거 앞에 아이용 의자를 만들어 태웠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가 저녁이면 퇴근한 친구들 집에 놀러 갈 때 어린 자신을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다녔던 경험을 딸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과 지망생이던 그가 영문학과에 들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재수를 준비하던 차에 서울에서 만난 한 시인의 격려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사흘째 되는 새벽 미명에 살아나셨다.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직접 보여주셨다. 사도들에게 그걸 알렸을 때 다들 ‘헛소리’(눅24:11, λῆρος, idle talk)로 여겼다. 베드로와 요한은 직접 찾아갔지만 세마포만 보이자 실망했다. 살아생전 주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과 나사로도 살려냈지만 정작 주님의 살아나심을 믿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피부에 와닿는 경험치가 없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37세 4월 하나님을 믿은 문준경은 38세 4월에 북교동성결교회 전성구 목사에게 세례받고 집사직을 받았다. 41세 2월경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에 입학해 매년 3개월 강의받고 6년 후 46세 6월경 졸업과 동시 전도부인으로 증동리교회와 임자진리교회를 맡아 전도했다. 53세의 그녀가 37살 정희열 목사와 40살 이성봉 목사가 ‘치안유지법위반피의사건’으로 광주지방법원 검사국 조선총독부검사 요다 카츠키에게 심문받을 때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재림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다만 죽으면 몸이 거룩해져 천국으로 간다고 말했다. 어쩌면 예수님의 육체재림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까닭에 그리 대답한 건 아니었을까?

 

사내 녀석들이 태어났을 때 목욕탕에 데려가 몸을 씻겨주는 것이 아버지 노릇을 다하는 것인 줄 알았다. 딸 아이가 자랄 때 가방 들어주고 눈싸움하는 게 그 역할인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어 품을 떠난 큰 딸과 둘째 아들 그리고 내년에 떠날 셋째 아들까지 생각하면 그 나이대의 아버지 경험치가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처럼 입으로 일할 때가 올지라도 그저 자식들에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아버지의 경험치를 물려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24년 5월 3일. 권성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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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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