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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는 보시니(눅22:47-71)

by 권또또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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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부인 / 칼 하인리히 블로흐 Carl Heinrich Bloch(1834~1890)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가셨죠. 당신이 마셔야 할 십자가 고난의 잔을 놓고 기도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돌 던질 만큼 떨어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괴롭고 슬픈 나머지 제자들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셨죠.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성도 지니셨지만, 인간의 연약한 인성도 지니신 분이셨기에, 처음 기도할 때만 해도 아버지 하나님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를 드리셨죠.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시다가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다가 간 모습을 어제 살펴봤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그래서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었죠. “너의 잔을 피하게 해 주는 것은 괜찮지만, 그렇게 한다면 저들은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말이죠. 저렇게 자기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제자들을 어떻게 해야 구원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었죠. 그것은 곧 우리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하다 말고, 제자들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세 번씩이나 찾아가면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나를 위해, 깨어 기도해 줄 수 없더냐?”하고 말씀하신 것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도저히 저들의 연약함을 볼 때,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재물이 되지 않고서는 저들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신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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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그렇게 주님께서 제자들을 살피는 가운데, 때마침 가롯 유다가 군졸들을 데리고 그 동산에 찾아온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47절에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가롯 유다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의 살과 피를 대했지만, 자기 탐욕과 사탄의 집요함에 이끌려 결국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군졸을 데리고 온 것이었죠. 여기에서 ‘입맞춤’이란 친근감의 표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배신의 입맞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체포하려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에서는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친 것으로 나오고 있죠. 그러나 주님은 그 말고의 귀까지 다시금 붙여주시면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른다는 것이죠. 만일 주님께서 폭력을 원하셨다면,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26:53) 하나님께 보내도록 해서 그들을 제압해버리셨겠죠. 주님은 결코 그런 방법을 취한 게 아니셨죠. 그래서 순순히 잡히셨는데, 그 모습을 일컬어 53절 하반절에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지금 이 세상의 때도 어둠의 때요, 마귀 권세의 때이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2장 2절에서도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때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어둠의 때일수록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주님의 복음증거자로 살아야 한다는 점이죠. 왜냐하면 그 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아무리 주님을 잡아가고 십자가에 처형시켜도 그 기간뿐이었고, 우리 주님은 궁극적으로 부활승리하셨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지금의 때도 아무리 마귀가 지배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지막이 있는 것이고, 그때 그들은 무저갱에 처해지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을 미혹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자기들의 하수인으로 부릴지라도, 저와 여러분들은 믿는 자들을 더 강하게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도록, 또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욱더 복음의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죠.

 

[전자책]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예스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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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54절부터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한 베드로였는데,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배반한 그죠. 왜 그가 실족하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그는 예수님 곁에 있지 않고, 주님과 거리를 두고 멀찍이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본문 54절에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 가니라.” 아마도 말고의 귀를 주님께서 붙여주실 때, 그때부터 그는 눈에 띠지 않게 하기 위해 안전거리를 유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정한 그 거리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믿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죠. 그런데 그런 자신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그 거리감은 더욱더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이유는 55-56절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하니”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집 안 뜰로 끌려 들어갔고, 그 집 뜰에 모인 이들이 그 밤에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상황입니다. 베드로도 하필 그때 그들 틈에 끼어서 그들의 일원인 것처럼 보이려고 어울렸다는 사실이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불의와 함께 하는 자들 속에 끼어들면 그렇게 주님을 부인하는 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그 집 사람들이 물을 때, 계속해서 더 강하게 부인할 수밖에 없고, 그때 본문 60-62절의 말씀처럼 “닭이 울더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연약한 베드로의 모습이나 사실 가롯 유다의 모습이나 도긴개긴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베드로가 정말로 그런 와중에도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은총을 받은 게 있죠. 그가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는 게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주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60절 후반부와 61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 장면이 이제는 이해가 되시죠. 나는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고, 그때 닭이 울었는데, 바로 그때 주님과 베드로의 눈빛이 마주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그 말씀,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때 주님께서 베드로를 묵인해 주지 않았다면, 네가 그렇게 하고서도 내 제자라고 할 수 있겠냐?”하고 핀잔을 주거나,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면, 결코 베드로는 통곡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배반하는 베드로를 부끄럽게 하거나 창피를 주지 않으시고, 꾸짖지 않으시고, 단지 눈길로 묵인해 주신 그 눈빛이 주님의 크신 사랑의 눈빛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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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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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마지막 단락인 63절부터는 대제사장의 종들이 예수님을 밤새도록 조롱하고, 때리며 고통을 주는 사건입니다. 무례하고 야만적인 종들이 밤새도록 쉴 틈을 주지 않고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자마자 백성의 장로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을 받았죠. 그들은 67절의 말씀처럼 한 가지 부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고 확인하려고 했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셨죠. 그것이 주님의 진리였지만, 그들은 신성모독죄로 몰아세웠죠. 심지어 주님께서는 69절을 통해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다”하고 심판의 주님이심을 천명하셨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신성모독으로 몰아세워 죽이려드는 모습이었죠. 왜죠? 탐욕과 욕망에 눈이 멀면 진리를 진리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가롯 유다도, 베드로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의 그 사랑의 눈빛을 통해 회개할 은혜를 얻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은혜조차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 얼마나 불쌍한 자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한 죄성을 인정하고, 베드로에게 베풀어주셨던 그 따뜻한 눈빛의 사랑을 우리에게도 부어주실 수 있도록, 그 은헤를 사모하면서 하루를 출발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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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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