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느니라(눅22:24-38)

by 권또또 2024. 4. 24.
728x90
반응형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 자신이 가진 직위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고, 휘하에 더 많은 부하 직원을 거느리는 그런 자리를 원하죠. 그래서 힘든 일이나 허드렛일을 하지 않고도 쉽게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좇습니다. 평소에 누리지 못하는 여유도 부리고,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죠.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렇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게 되면 자신들이 예수님의 핵심 측근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것으로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투고 있는 겁니다. 기존의 가난하고 고생하고 무시당했던 시절과는 다르게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부리고 여유를 즐기고 인생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욕망으로 가득차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28-30절에 귀가 번쩍이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이 본문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좀 더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왕권을 주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준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나라에 들어와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고,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나라 전권을 위임받은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 나라 왕권과 권세를 시련당하며 애쓴 제자들에게 위임해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의 마음은 심히 크게 동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으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왕권을 행사하시며 통치하시는데 있어서 사람을 부리고 지시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오히려 종처럼 시중을 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7절 후반부에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하신 말씀이 그것이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왕권과 통치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통치의 형태는 지배와 다스림이 아니었습니다. 섬김과 봉사의 방법이었습니다. 통치자라면, 권세자라면 사람을 부리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때로 훌륭한 업적을 남기게 되면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되는 것도 당연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26절에서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젊고 어린 자가 심부름을 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을 섬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일인데도 예수님은 왕권을 가진 자가 오히려 섬기고 봉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product.kyobobook.co.kr

이것은 마가복음 10장 42-45에서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 왕권을 지닌 예수님의 통치방법은 섬기는 종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부리고 지시하는 권력자의 꿈을 꾸던 제자들에게, ‘참된 지도자는 종처럼, 노예처럼 사람을 섬기는 자'라는 말씀이죠. 예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 마치 종과 노예처럼 다른 이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구세주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바로 그런 이치 아닙니까?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멋진 통치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큰 충격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꿈꾸고 있는 방식과 제자들이 꿈꾸고 있는 방식의 차원이 전적을 달랐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제자들의 수제자 격인 베드로도 그런 모습을 드러내주고 있음을 본문이 증언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 33절에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왜 그가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같이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할지라도 주니의 권능으로 충분히 왕좌에 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큰 권세의 자리에 앉을 것이란 엉뚱한 기대감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그 진실을 일깨워주십니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결국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십자가의 종된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는 베드로, 그 제자들은 끝내 다 부인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들에서 계집 종 하나가 “너도 그 도당이다”하고 말할 때, “나는 네가 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주님을 부인하고 나서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제자들의 실상이요, 실은 우리들의 실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주님을 모시는 게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게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권성권 - 교보문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저주인가 | 성경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7가지 패턴이 있다는 게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찾아와 주시고, 그 인간과 관계를 맺어 진리

product.kyobobook.co.kr

사무엘하 6장을 보면 다윗이 3만 명을 뽑아서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려고 합니다. 그때까지 그 법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오랜 세월 동안 머물러 있었죠. 이른바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에, 그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그 법궤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각종 재앙과 전염병이 들끓게 되자, 그 법궤를 다시금 이스라엘의 벳세메스로 보냈고,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그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 20년 넘게 모셨던 것이죠. 그 사이 사무엘 선지자도 죽고, 사울 왕도 죽고, 이제 다윗이 왕이 되었는데, 그때 다윗이 맨 먼저 무엇을 하는가 하면, 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려고 하죠.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0년 넘게 법궤가 머물러 있던 그 아비나답의 집에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모셔 가려고 하는데, 그 맨 앞에 누가 앞장섰습니까?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에 법궤를 모시고 맨 앞장을 섰죠. 그리고 그 소들이 뛸 때 웃사가 그 법궤를 붙잡았죠. 그런데 그 일로 웃사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3달을 모시도록 하게 하죠. 그랬더니, 그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셨다고, 성경은 증언하죠.

과연 무슨 차이이겠습니까? 아비나답의 집의 웃사와 아효는 그 법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입니다. 법궤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데, 그들은 말씀을 받드는 자가 아니라 말씀의 집행자처럼 으스대고 거드름을 피우려다가 그렇게 말씀을 모셨어도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오벧에돔의 집 사람들은 말씀을 모실 때 진정으로 모시는 그런 삶을 살았기에, 다시 말해 말씀 아래에서 말씀을 받들고 순종하는 종의 자세로 살았기에 그 집이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하신 말씀 그대로를 받드는 주님의 종들, 말씀의 종들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book-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