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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천사가 하늘로부터 힘을 더하더라(눅22:39-46)

by 권또또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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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을 맞이해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욕심에 집착한 그들의 모습이었죠. 그때 또 한 사람의 집착한 자가 있었죠 가롯 유다가 그였습니다. 사람에 욕심에 집착하면 진리와 생명을 보지 못한 채, 오히려 짓밟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욕심과 탐욕에 집착한 자들과는 달리,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 놓고자 하신 분이셨죠. 마가의 다락방 성만찬 시간을 통해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일깨워주셨습니다. 떡과 잔을 베풀면서, “이것은 내 살이요 내 피라, 받아 먹고 마시라”하시면서 말이죠. 물론 제자들은 그와 같은 주님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의 높은 권좌만을 탐내는 그런 자리다툼을 하게 되었죠. 예수님께서 이제 왕으로 등극하시면 누가 영의정 자리에 오를지 누가 좌의정 자리에 오를지 그것으로 갑론을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거나 탐욕에 물든 자들과는 달리, 진정으로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임을 밝혀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눅22:45) 그 섬김이 다름 아닌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것을 제자들에게 요구할 때,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가 나서서 뭐라고 말합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설령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제가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죠. 하지만 그렇게 장담한 베드로였지만, 오히려 그는 닭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자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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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눈 주님께서 이제 감람산으로 제자들과 함께 올라가시는 모습입니다. 당신이 맞이해야 할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러 가기 위함이셨습니다. 본문 39-4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른바 겟세마네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기도를 드립니까?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하는 기도를 간절히 드린 것이죠. 본문 44절에서는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그 땀이 피방울 같이 되었다고 증언해 줍니다. 그만큼 탄식의 기도요 절규에 가까운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가복음 14장 32-42절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시다가 잠시 멈추고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오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런 내용이 없이, 한 번 정도만 그렇게 제자들에게 오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45-46절의 말씀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에는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찾아와 기도할 수 없느냐,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과연 왜 그렇게 기도하시다 말고 제자들을 찾아와 ‘기도할 수 없더냐?’하고 묻는 것이었을까요?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시다가 힘에 부쳐서 잠시 기도를 중단하기 위함이셨을까요? 아니면 더 이상 기도가 나오지 않아, 답답해서 그런 것일까요? 그도 아니라면 제자들이 기도를 하는지 안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그렇게 오신 것일까요? 도대체 왜 그렇게 세 번씩이나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을 찾으신 것이었을까요?

마가복음 14장 33-34절은 이렇게 증언해 줍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심히 슬퍼하신 상황입니다. 그래서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슬퍼하사’로 번역된 헬라어 ‘아데모네오’(ἀδημονέω)는 ‘낙담, 낙심, 마음의 무거움’(depressed)이란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왜 지금 고민하고 슬퍼하시는 것입니까? 왜 낙담하고 낙심하며 무거운 마음이신 것일까요? 아니 왜 예수께서는 그렇게 절박하게 절규하며 소리를 높여 기도하시는 것입니까? 솔직한 심정은 싫으신 것이죠. 십자가가 짊어지고 죽는 게 싫으신 것입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십자가의 잔입니다.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에게도 두려움과 불안, 낙심과 슬픔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마음입니다. 그런 무거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버지, 어떻게 안 될까요? 이 십자가의 잔을 제게서 옮겨주시면 안 될까요? 꼭 이 길밖에는 없는 걸까요? 아버지.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연약한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이셨기에, 기도하실 때에 천사들이 힘을 더하더라, 하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43절의 말씀이 그렇죠.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그만큼 예수님의 감정도 복잡하고, 그 심정도 무거움에 짓눌려,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픈 심정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그 곁에서 천사들이 내려와서 힘을 북돋아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격려하고 위로해주고 있는 모습이죠.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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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본문 45절을 보시기 바립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나아가서 보신 상황이죠.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표현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도 슬픔으로 인해 잠들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도대체 왜 제자들은 슬퍼하는 것입니까? 제자들의 그 슬픔은 예수의 슬픔과 같은 것일까요? 아니죠. 결코 아닙니다. 제자들의 슬픔은 못마땅한 슬픔이자, 불만족스러운 슬픔입니다. 그들의 슬픔은 한숨과 같은 것입니다. 본문 45절의 ‘슬픔’이란 헬라어 단어는 헬라어 ‘뤼페’(λύπη)로서, 비탄에 젖은 슬픔입니다. 왜 그렇게 비탄에 젖어드는 슬픔을 보인 채 잠에 빠져든 것입니까?

지난 시간 살펴 본대로 제자들은 여전히 ‘누가 크냐’는 다툼 중이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왕으로 등극하면 쟁취하게 될 자기 자리에 정신이 팔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는 소리를 들어보니까, 왠지 절규하시고, 힘이 없는 소리를 하시는 게 들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잔을 옮겨달라는 기도를 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절규하는 기도를 드리는 예수님을 못마땅해 하는 제자들이 뾰로통한 얼굴도 잠에 빠져들었던 것이죠.

그러면 왜 예수께서 그토록 애타게 기도하시다가 기도를 멈추고, 오늘 본문에는 한 번, 마가복음에는 세 번씩이나 제자들을 찾아갔는지 유추해볼 수 있죠. 예수님께서는 절규하듯이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죠. “그렇게 힘들겠느냐? 네 솔직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 그러면 저 제자들에게 가서 그들의 몰골을 한 번 보고 오면 좋겠구나. 저토록 슬픔으로 가득 찬 인생들말이야. 온갖 불만족과 못마땅함으로 가득한 저들을 보고서도 네가 싫다고 할지 말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도를 멈추고 제자들을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괜히 못마땅함과 불만족스러움에 취해 잠에 빠져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자 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얘들아, 너희는 그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할 텐데, 너희에게는 그럴 힘조차 없구나.” 하시면서 무슨 생각이 드셨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의 십자가 죽음이 아니면 정말로 저들에게는 소망이 없겠군요.” 그것을 세 차례나 확인하도록 하셨던 것이고, 그때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 가련하고 못난 제자들의 상태를 보시면서, 점점 더 주님께서는 더 확고하게 당신이 맞이해야 할 그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시기로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고 기도를 드렸던 것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그 제자들의 모습이라면, 우리도 더더욱 나를 부인하고 주님께서 부여하신 십자가 길을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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