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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눅21:1-6)

by 권또또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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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왕으로서 입성하셨지만 무력이나 정치력을 갖춘 그런 왕의 입성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평화의 왕을 위한 입성이셨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내다보신 입성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 정화작업을 벌이셨죠.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기도하는 집 되어야 함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도 먼저 주님을 알아봐야 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오히려 주님을 죽이려고 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 그 권위를 바르게 사용했어야 했는데도, 그렇지 못한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겉모습은 대제사장들이고 서기관들이고 백성의 장로였지만 실은 강도로 변질돼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눅10:30) 등장하는 그런 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시는 그 권위를 자신들의 소유로 여기며 짓밟으려는 그런 강도 말입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누가복음 20장에서 우리가 읽어봤습니다. 그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행사하고 있는 성전에 대한 권위를 철저히 자기들의 것인양 착각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포도원 주인이 그 아들을 보냈을 때 그 아들을 때리고 죽인 포도원 농부들과 다름 없는 모습이었죠.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의 권위와 신분을 부여하신 하나님 앞에 청지기로 사는 모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남아 있는 것은 심판뿐이요, 하루 속이 하나님 앞에 참회하며 주님을 온전히 모시는 길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내게 부여하신 삶의 자리, 믿음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고 있는가 말입니다. 그분 앞에 내 삶의 주도권을 매일매일 내어드리며 그 분의 은혜를 갈망하며 살아가는가 말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는 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룰 수 없기에, 오직 썩지 아니한 생명의 씨앗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안에 거하는 자로 살고 있는가 말입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 청지기로 사는 은혜의 자리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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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누가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성전의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모습을 보신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당시 예루살렘의 성전은 재건 공사와 운용비를 위해 모금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주전 20년경에 시작해 주후63-64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거의 46년간 진행된 보수공사였죠. 지금 상황은 3분의 2가 진척된 주후 33년경의 상황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금을 하기 위해 여인들의 뜰에 13개의 나팔 모양으로 된 헌금 궤를 만들어 배치했습니다. 지금 그곳에 부자들과 어떤 가난한 과부가 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계신 예수님이시죠. 부자들은 많은 돈을 넣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큰 소리로 서서 기도하는 모습처럼, 부자들은 나팔 소리를 내듯이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거기에 누가 또 헌금함에 헌금을 넣습니까? 가난한 과부입니다. 2절에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난한 과부란 어느 정도의 소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녀가 넣은 헌금액수가 ‘두 렙돈’입니다. 렙돈이란 로마의 가장 작은 화폐단위입니다. 1.7g 정도의 구리동전입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드라크마였습니다. 1렙돈의 가치는 1드라크마의 128분의 1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동전 400원 정도의 가치입니다. 그 나팔 모양의 헌금함에 구리 동전 두 개를 넣었고, 그러면서 그 동전 소리가 쨍그랭했을텐데, 그때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었을지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그곳에 있던 부자들, 으스대고 떵떵거리는 부자들은 그 가난한 과부를 어떤 눈초리로 봤을 때 능히 짐작이 가죠.

그런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3-4절에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어쩌면 그녀는 부자들과 그 행색이 달랐을 것입니다. 옷도, 장신구도, 머리 모양도, 그야말로 부자들과는 전혀 다른 냄새까지도 났던 그런 과부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와중에도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증언해줍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상태요,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내 몰린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자기 삶을 소진하고 있는 과부였죠. 그녀에게 남은 그 두 렙돈이란 실은 참새 두 마리를 살 수도 없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을 두고서 그녀는 그 마지막 돈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의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칭찬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한 없이 처절함 속에서 하나님께 원망하기보다 더욱더 의탁하는 그 마음의 자세 말입니다.

오늘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 얼마가 되었든지 간에, 우리가 우리의 소유와 힘을 의지하기보다, 그 가난한 과부처럼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심정으로, 주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하는 마음과 자세로 살 수 있다면, 우리 역시도 본문의 가난한 과부와 다를 바 없이 주님께 인정받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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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본문 5절 이하를 통해 그토록 46년간 짓고 꾸미고 있는 아름다운 돌과 그 헌물로 꾸민 건축물을 보고서 자랑하는 말을 하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그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시간에도 살펴봤듯이 그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각자의 직임과 소임에 대해 선한 청지기로 살기보다, 선한 주님의 종으로 섬기기보다 그것을 권력과 부와 명예를 지니려고 하는 그 병든 심령들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아주기 위함이셨습니다.

과연 언제 그토록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성전이 무너지고 말았습니까?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처들어왔을 때, 주님의 말씀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6절) 무너졌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정욕과 탐욕을 상징하는 것들은 결코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죠.

바꿔 말해 참된 성전은 너희의 심령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모시고 사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말씀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쇠하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말씀은 예수님 당신 자의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신 말씀을 전하셨기에 언제나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말씀을 모시고 사는 자가, 말씀대로 사는 자가, 주님의 청지기요, 그때 그 심령이 참된 성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뜻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 심령에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어떤 단체든지, 어떤 교회이든지, 외형에 집착하는 순간부터 더 큰 동전 소리를 찾게 된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속에는 그 큰 동전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들의 괜한 죄책감의 탄식 소리를 자아내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외형이 결국은 모든 이들을 죄의 소굴로 만드는 꼴과 다르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심령을 큰 동전소리가 아닌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가득 채우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청지기들이 될 때, 가난한 과부처럼 주님께 인정받는 성전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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