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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부활을 얻기에 합당한 자들(눅20:19-47)

by 똑똑이채널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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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장사치들을 내 쫓으셨고, 그들을 향해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성전을 우상시하거나 성전을 통해 너희들의 욕심을 채우려 하지 말고, 너희들의 심령이 참된 성전이 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서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질문을 던졌죠. 누가 감히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느냐고 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세례요한의 권위를 빗대서 즉답을 피하셨죠. 대신에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들의 비유를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죽인 농부들은 다름 아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백성의 장로들을 칭한 것이요, 그것을 알아차린 그들이 예수님을 잡고자 했지만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잡을 수가 없었죠.

 

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사건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체포할 수 없었던 그들이 다시금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고자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아주 멋진 말로 포장을 하면서 질문을 던지죠.

본문 21-22절입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예수님을 한 껏 띄우는 말 아닙니까? 당신은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있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오직 진리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친다면서 말입니다. 이때 우리 같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뭘 그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하면서도 기분은 좋아했겠죠. 바로 그때 그들이 치고 나오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가이사에게 세금 곧 ‘인두세’를 바치는 게 옳은 것입니까? 아니면 옳지 않는 일입니까? 하고 말이죠.

예수님의 기분을 붕 뜨게 만들어 놓고, 이번에는 난처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모습이죠. 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우리 주님은 그들이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게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님을 알고 계셨던 것이죠. 어떤 속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품고 있는 속셈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주님께서 대답을 한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 있는 민중들을 선동하면서 매국노라고 비아냥거릴 심사였겠죠. 그런데 만약 가이사에게 세금을 납부하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로마의 황제에게 불복종하는 자로서 반역자라고 또 처단해야 한다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예수님에게 치명상을 입힐 심사였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처단코자 하는 그들의 의도였습니다. 그것이 간계를 갖고 있는 자들의 달콤한 언변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죠. 우리에게도 이렇게 달콤하게 나를 치켜세워주고, 나를 띄워주는 말을 할 때 그것이 사단의 속임수라는 것을 우리도 분별할 줄 아는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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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24-25절에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데나리온은 신약시대에 로마의 은전 주화입니다. 로마 황제의 형상과 로마 황제의 글귀가 거기에 새겨져 있는 은전이죠.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품꾼들에게 품삯으로 데나리온 하나씩을 준 일이 있는데, 1데나리온은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그 데나리온 하나를 보여 달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그러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로마에 대한 인두세도 정확하게 납부하고, 또 하나님께 대한 예물과 성전과 관련된 성전세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주문이죠.

주님의 말씀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진리의 말씀이죠. 이 세상의 현실 통치세계에 대한 로마의 속국 백성으로 사는 그 의무도 다하되,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도 다하라는 것이죠. 그러니 로마 당국자들도 흠잡을 데가 없고, 또 유대 군중들에게도 결코 흠잡을 데 없는 대답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26절의 “그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책잡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도 주님처럼 내 영혼을 넘어뜨리려는 달콤한 말들, 나를 교만하게 만들고 나를 이간질시키려는 그런 달콤한 말들을 분별할 수 있는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현실 세계에서 국민으로서의 의무도 다할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도 다하는 충성스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죠.

 

그리고 27절의 말씀으로 넘어가는데,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곧 주님과 부활논쟁이 이어가는 상황입니다. 사두개인은 유대종파 중 하나로 제사장 계열의 사람들이고 귀족적이었고, 부자였고, 유대 사회의 정치 상류층 사람들이죠. 사두개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신앙적으로 대립한 상태입니다. 현실세계를 쥐락펴락 하고 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부활이나 영생이나 천사나 영혼의 실재를 믿지 않는 자들, 믿지 않으려는 자들이었죠. 그런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와서 물은 것입니다.

그들의 질문 요지가 무엇입니까? 큰 형이 결혼해서 살다가 죽었는데, 신명기 25장의 율법조항을 따라 계대결혼법 곧 형수취수제를 받아들여 일곱 형제가 그 형수를 자기 아내로 삼았을 때, 부활 때에는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이죠. 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까? 사두개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들먹이며 주님께 부활 시비를 건 것이죠. 사두개인들은 만일 부활이 있다면 이런 난처하고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뜻이죠.

그러자 주님께서는 35-38절 말씀을 통해 부활 때에는 시집도 장가도 아니고 가고 천사들처럼 홀로 산다고 말씀해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곧 너희들도 부활신앙을 지니며 살라는 뜻이요, 이 땅의 것에 목매인 채 살지 말라는 주문 아니겠습니까? 그때에만 하나님을 참되게 섬길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와 같은 감동적인 말씀을 하실 때, 누가 그 곁에 있었습니까? 본문 39절에 보면 ‘서기관들이’ 있었죠.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아무런 질문도 할 수가 없었죠.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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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런 서기관들에게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죠. 본문 41-47절의 말씀은 그들 서기관에 대한 말씀입니다. 궁극적으로 요구하신 바가 무엇입니까? 46-47절입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당시의 서기관들은 구약의 율법을 연구하고 필사하고 또 백성들에게 그 율법을 가르치고 전수하던 자들이었죠. 문제는 그들이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 할지 모르지만, 그 삶은 온갖 욕심으로 뭉쳐있고 교만하여 외식하는 자의 삶을 스스로 살고 있던 자들입니다. 그야말로 바리새인들과 다르지 않는 자들인 셈이죠. 그래서 그들 서기관들이 있는 그들 앞에서 백성들과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요구하신 바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을 본받지 말라는 주문이죠.

주님께서 이와 같은 교훈들을 지금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참된 부활을 내다보며 사는 자라면 이 땅의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는 주문이시죠. 그야말로 부활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은혜로운 자녀들이 되라는 뜻이죠. 오늘도 그런 은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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