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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착한 종이여(눅19:11-27)

by 똑똑이채널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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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베다니의 마르다 집을 거처삼아 예루살렘의 선교여행을 다니고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시점이죠. 이때 주님께서 어디를 가셨습니까? 누가복음 18장 35절에 보면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바꿔 말해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34km나 떨어진 여리고로 가시는 상황이죠.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습니까? 육신적인 소경 하나를 만나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그에게 영적인 구원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어서 어제 읽은 누가복음 19장 1절에서는 이제 여리고 안으로 들어가신 상황이었고,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습니까? 그렇죠. 세리장이자 부자인 삭개오를 만났습니다.

본래 순전함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자카리오스, 곧 그 삭개오는 주변의 오염된 죄의 환경으로 인해 불의한 자 곧 죄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스스로는 알고 있었죠. 같은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일부는 로마에 납부하고 일부는 자기 주머니에 착복해 왔던 토색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죄인’이라고, 그 당시에 3대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던 ‘세리’, ‘창녀’, 그리고 ‘이방인들’, 바로 그런 죄인과 같은 자기 자신임을 삭개오도 인정하며 살았던 것이죠. 그렇기에 속 마음으로는 그런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주님을 더욱 열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때마침 자기 동네에 그 주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니, 그로서는 너무나 갈망할 수밖에 없었고, 주님께서 그런 자신을 향해 ‘네 집에 들어가야 하겠다’고 하셨을 때에는, 그 “급히” 그 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왔고, 즐거운 마음으로주님을 영접했던 것이죠.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을 모신 그가 자신의 토색한 삶, 불의한 삶을 청산하겠다며,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눠주겠다는 자세가 그것이었죠. 그렇기에 우리 주님께서 그곳 여리고로 지나가신 것, 그 여리고에 들어가신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는 선교여행을 다니셨던 것이죠.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구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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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바로 그 현장에서 있었던, 그 삭개오의 집을 찾은 궁극적인 이유를 밝힌 말씀을 하신 이후에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삭개오를 향해, 그 집안에 모여든 사람들을 위해, 아니 그곳 여리고의 모든 동네 사람들을 향해 선포하신 말씀이 있지 않았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임을 말씀하신 것이죠. 바로 그 삭개오와 같이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을 구원코자 하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이 11절 말씀 아닙니까?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상황인데, 그 길목의 여리고에서 소경의 눈도 고쳐주시고, 또 죄인인 삭개오가 완전한 회심을 한 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정말로 하나님 나라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질 것으로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로부터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정치적인 해방을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 또 삭개오와 같이 불의한 자들이 재물을 내 놓을 정도라면 정말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 땅이 경제적인 해방도 가져오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이 꿈꾸며 생각했던 것이죠.

그것은 마치 우리가 앞선 누가복음 18장 31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에 관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셨어도, 제자들의 심령이 닫혀 있어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지 못했던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죠. 지금 여리고의 삭개오의 집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본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주님의 제자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와 똑같다는 점이죠. 그들 대부분이 꿈꾸며 생각하게 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해져서 이 땅에 먹고 마시기에 충분한 나라 말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펼치고 전하고자 하심 아닙니까? 그 분이 전하고 가르치고 펼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죄와 사망으로 물든 인류를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코자 하심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었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초림과 더불어 이 땅에 임하게 되었고, 오늘도 주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사는 자들에게 그 분의 말씀을 그 심령에 모시고 사는 자들에게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있는 것이고, 궁극적인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임하는 것임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곧 영원한 저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는 그 날에 완성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런데도 본문의 사람들, 삭개오의 집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이 땅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른바 왕위를 받으러 길을 떠나는 귀인이, 열 명의 종들에게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는 말과 함께 여행을 떠나죠. 12절에 보면 주인이 먼 나라를 여행했고, 그래서 여러 날이 흘러간 상황입니다. 그 종들에게는 지금 그 주인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런데 본문 14절을 보면 그 사회의 백성들이 어떤지 일깨워줍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그가 왕이 됨을 원치 않는 사회적인 상황이죠. 그러니 종들도 주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동일시되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런 고민이 깊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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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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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주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왔습니다. 다들 어떻게 장사했는지 묻죠. 그 중에 한 종은 16절의 말씀처럼 주인이 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밝힙니다. 또 한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다고 고백하죠. 그런데 다른 한 종은 20절의 마지막 부분처럼 “내가 수건으로 감싸 두었었나이다.” 왜죠 21절에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이고, 또 22절에서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만큼 그 종은 그 당대의 사회적인 관점에 깊이 치우쳐 주인의 진정한 면모를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한 가지 사실이 더 있습니다. 그렇게 감싸뒀다고 고백한 종이 있는가 하면, 나머지 7명은 그 자취마저 감춰 버렸다는 점이죠. 열 명의 종에게 각각 한 므나를 줬는데, 그 중에 세명 만 보고 했을 뿐, 나머지 7명은 다 사라져버렸던 것이죠.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자를 고치고, 삭개오를 새로운 사람이 되게하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하나님 나라가 눈 앞에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당장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 비유죠. 오히려 먼 길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종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분명코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분임을 일깨워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시간이 지연되는 상황속에서 너희들의 시선과 생각이 세상에 동조되지 말고, 눈 앞의 현실세계에 함몰되지 말고, 온전히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신실하게 깨어 준비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본문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종처럼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보면서,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는 자로 살 수 있는 은혜의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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