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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왕이여(눅19:28-48)

by 똑똑이채널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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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셨죠. 너희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당장 나타는 게 아니라 왕권을 가지고 오는 그 때에 완성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분이 언제 왕권을 가지고 올지 모를 것이기 때문에 각각 부여받은 재능과 달란트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깨어 있는 자로 살도록 주님께서 일깨워주셨죠. 주님이 눈 앞에 없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현실에 함몰되지 않는 믿음으로 살도록 말이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가셔서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장사치들을 내쫓으면서 진정한 성전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신 내용입니다.

본문 28-2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른바 여리고에서 동쪽으로 36km 떨어진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중인데, 그 길목에서 감람원 곧 감람산이라고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마을로 가까이 가신 상황입니다. 이른바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의 집이 있는 그곳으로 가신 것이죠.

그곳에서 제자 둘을 보내십니다. 왜죠? 30절에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주님께서 타고 가실 나귀 새끼를 풀어오도록 하기 위함에서, 제자 둘을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왜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필요로 하신 것입니까? 바로 이때가 이제 예루살렘을 향해 본격적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이죠. 이른바 예수님께서 왕으로 입성하시는 모습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신의 뜻으로 그렇게 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모든 행적들은 구약의 예언된 말씀을 응답해 드리고 성취해드리는 모습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가신 것은 스가랴 14장 4절의 말씀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하신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또 어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도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신 그 말씀을 이루고자 하심이죠.

그처럼 예수님의 모든 삶의 행적은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도록 응답해드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그 분의 행적만이 아니죠. 그 분의 행적과 더불어서 그 분이 하신 모든 말씀들도 자의로 하신 말씀이 결코 아니었죠. 요한복음 12장 49-50절을 통해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이 땅에 살면서 하신 모든 교훈과 가르침들은, 그 모든 말씀들은 주님께서 자의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전해주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모든 말씀들이 영생과 직결되는 말씀이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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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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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성취하기 위해, 지금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한 번 머리 속에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 우리나라 사극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된 사람은 큰 말을 타고 왕궁에 입성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모두가 그 왕이 지나가는 말 아래에서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숙이지 않습니까? 감히 함부로 쳐다보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다고 하는데, 큰 말이 아니라 나귀요 나귀 중에서도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35b-39절에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다들 자신들의 겉옷을 그 나귀 새끼 등에 걸치고 예수님을 태우고, 또 길바닥에 자기들의 겉옷을 펴죠. 그리고는 감람산 내리막길에서는 다들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호산나 찬양합니다. 주님 어서 왕으로 입성하소서.”하고 말입니다.

누가 봐도 이 모습은 코메디와 같은 진풍경 아닙니까? 예수님이 탄 나귀 새끼 뒤뚱뒤뚱 걷고 있고, 그 뒤에 수많은 무리들이 ‘호산나 호산나 찬양합니다. 우리들의 왕이시여’하고 있으니 말이죠.

왜 이런 진풍경을 자아내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그 왕의 입성을 이루는 그 나라는 무력이나 정치권력으로 제압하는 그런 세상적인 힘의 나라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이십니다. 무력과 권력으로 쟁취하는 나라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일 수가 없고, 너희들이 꿈꾸는 나라도 그런 나라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력과 권력으로 쟁취하는 나라가 아니라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말입니다.

이것이 실은 종려주일에 보여준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열광했던 이 군중들이 불과 닷새만에 변질되고 맙니다. 눈앞에 그들이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 줄 알았던 주님이 힘없이 가야바와 안나스와 빌라도와 헤롯과 또 다시 빌라도 법정에 끌려가 심문받을 때,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들 지금은 호산나 찬송합니다. 우리의 왕이십니다”했던 그들,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열광했던 그들, 5일 뒤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19:15)하고 소리치고 난동을 부리는 모습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왜죠? 눈에 보이는 자기들의 만족감을 채워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초반에는 60%대 후반까지 치솟다가 최근에는 50%대 아래로 내려앉았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모습이 나의 내면속에도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 기도 제목에 응답해주시면 그토록 주님을 열렬히 찬양하다가도, 내 기도의 바람대로 응답해주지 않으면 주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 말입니다. 어떤 형편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와 찬양의 고백이 터져나와야 하는데도, 연약한 우리의 본성과 내면에서는 불평과 원망이 뒤섞여 터져 나오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저들을 비난 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이 연약한 저에게 주님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 주님을 주님으로 모실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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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와 같은 심령 상태를 갖추도록, 본문 45-48절의 상황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가셨고, 그곳의 장사치들의 상을 엎고 좇으면서, 하신 말씀이 있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그러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고 47절에서 증언해 줍니다. 왜 그렇게 성전을 정화하시고, 왜 그렇게 성전에 오는 자들에게 그렇게 날마다 가르치셨겠습니까? 외적인 건물 자체를 신성시하거나, 그것 자체를 허영심으로 채우려거나, 눈에 보이는 그것을 우월시하지 말고, 너희들의 심령 상태가 진정한 성전이 되도록, 너희들의 심령속에 진정한 구원자이신 주님을 신실하게 모실 수 있는 심령의 그릇이 되도록 가르치신 것이죠. 이른바 그들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주님을 ‘왕으로 모시려’했다가 또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우리에겐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변해버리는 그런 자들이 아니라, 한결같이 주님을 참된 주님으로 모시는 그런 성전의 심령들이 되도록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이 그런 심령의 그릇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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